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14. 2022

FLOW

                  - 어느 후원자가 남긴 말

  ‘flow’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액체 따위가) 흐르다, (… 로) 흘러들다, (피·전기 따위가) 통하다, 순환하다, 돌다 라는 뜻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이 단어를 기가 막힌 상황에서 들었다. 앞이 캄캄하고 살 소망이 없을 때, 'flow'라는 단어를 듣고 용기를 얻은 적이 있다.

  생때같던 아들이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 3학년 때 자전거 사고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때 남편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가 길바닥에 나앉아도 좋으니 아들만 살려주옵소서.’


  뇌를 심하게 다친 아들은 두개골을 열고 뇌혈관을 잇는 대수술을 했다. 수술 일주일 만에 패혈 증세가 보여 포항에서 서울 대학병원으로 급하게 옮겨 가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도 있었다. 병원 생활해본 자는 알 것이다. 걸음마다 돈이었다. 우리가 당한 충격이나 슬픔 같은 것을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돈을 둘러대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혼자만은 아니었다. 함께하는 자들이 참 많았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길바닥에 나앉지 않았고 따뜻한 집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포항 병원에 도착하니 학교에서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스포츠 선수나 유명인사를 영접하듯 병원 복도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모인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이후로 아들의 병실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방문객'이라는 시를 참 좋아하게 됐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병원비 후원이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살기에 급급하여,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프네! 마네 해도 그렇게 후원부터 하는 것인 줄 몰랐다. 그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고서야 내가 당한 일이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위로의 강도를 보니 함께 걸어주는 힘이 없다면 버틸 수 없는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따사로운 위로를 받고서야 세상은 살 만한 곳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학금을 송두리째 후원하거나 공동체가 모금하여 전달해오는 때도 있었으나 다양한 후원들 중에서 두 건의 후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흔한 이름의 입금자가 적잖은 후원을 보내왔다. 생색내기 바쁘고 남의 등을 치거나 사기를 쳐서 살려고 난리인 세상인데 익명의 후원자는 우리를 눈물 나게 했다. 후원자가 보낸 은행 코드를 확인해봤다. 포항이었고 짐작이 가는 교회의 홈페이지를 들어가서야 그분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면식은 없는 분이다. 수소문하여 그분께 감사의 맘을 전했으나 그분은 아무런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 그냥 우리의 맘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으니 힘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분이 보낸 마음이 찰랑찰랑 우리에게로 흘러왔다. 멋있었다. 작은 것에도 공치사를 하고 나를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잘난 척을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게 진정한 멋쟁이 삶이지. 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워서 남몰래 얼굴을 가렸다.


  또 한 번은 한 학우가 병문안을 왔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떠나려다가 어머니가 전해드리라고 했다면서 신문지로 돌돌 말은 조그마한 것을 슬며시 전했다. 때로는 영양제와 화장품을 전달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핸드크림이나 선크림일 줄로 여겼다. 집에 돌아와서 신문지를 뜯어보는데 5만 원 권 꾸러미가 그 속에 들어있었다. 꿈속 같았다.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여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가 뭔데? 그분을 본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멋지게 사는 건가? 그 학우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부모님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더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그것은 찬양 형제에게 'flow' 한 것뿐이랍니다.

소중하게 사용하세요.’  


 'flow'라는 단어가 내내 매미소리처럼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 학우를 통하여 그분은 저렇게 짧은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게 전부였다. 아하, 우리는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하는 거였다. 따뜻한 마음도, 희망도, 사랑도, 돈도...

  움켜 안고 있어서 썩힐 게 아니라 졸졸 흘려보내는 것인가 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이 맘의 물결을 우리에게로 흘려보내 오고 있다. 오늘도 한동대학교 학생회장이 연락을 해왔다. 동행의 맘을 전해왔었다. 슬며시 오래전 그들이 보내왔던 롤링 페어퍼 파일을 펼쳐보니 우리에게 맘을 흘려보냈던 수만의 사람들이 눈물방울 속에서 아른거린다. 우리는 동행자가 있어서 주저앉지 않았다.


 하늘이 참 맑다. 하늘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이 땅으로 흘려보내어 가볍고 맑은 거구나.

학우들이 보내온 간절한 맘,  flow



이전 05화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