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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Feb 12. 2022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 잊히지 않는 그날의 전화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날은 2012년 11월 8일 아침이었다. 그것도 늦은 아침이었다. 남편이 다급한 전화를 받고 있었다. 2013학년도 수능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중학교 교사인 나는, 그날 늦은 출근을 하면 됐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담임에게는 학생들의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오기 일쑤였다. 특히 특성화 고등학교 원서 접수 시즌이어서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학생들은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댔다. 그래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 휴대폰을 진동으로 처리해두었다. 잠을 제대로 자고 싶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우리는 깼다.

 “찬양이가? 넘어졌다고? 많이 다쳤어?”

  남편은 숨 가쁘게 딸에게 연이은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남편이 폰을 스피커 기능으로 터치하자 딸의 목소리가 똑똑히 내게 들렸다.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아빠는 어른이니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있죠?”

  등골이 오싹했다. 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졸음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내 폰을 열어 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수도 없이 와 있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그 전날 늦게까지 아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은 단톡방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후에 우리는 잠이 들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아들, 찬양이가 전날 밤에 자전거에서 넘어졌는데 머리를 다쳐서 수술했다는 것이다. 함께 그 대학에 재학 중인 딸이 전해주는 상황으로는 크게 심각하지 않다고는 했다. 우리도 큰 걱정은 안 했다. 다리나 팔을 다친 게 아니라 머리를 다쳤다고 하니 뭔가 불길한 맘은 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비행기 표를 급하게 구하고 김포공항으로 달려갔다. 때아닌 여행길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비행기 속에서 내내 딸의 멘트가 맘에 걸렸다.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그렇다. 어른은 웬만한 일에 요동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해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무슨 일이 닥치면 어른이라도 받는 충격은 마찬가지다.


   포항 병원에 도착하니 아들은 TV 드라마에서나 봤었던 모습으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의사가 다가와 남편에게 뭐라고 몇 마디 하는 듯하니 남편의 얼굴이 하얘지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심각한가 보다. 아들은 붕대로 칭칭 머리를 감고 오른쪽 눈은 흑탄 색깔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걸 보자니 다리에 힘이 확 풀렸다. 순간 맘을 다잡았다. 정신을 차리자. 그래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어른이고 엄마잖아.

  아들은 세데이션이라고 하는 수면 유도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동공 확대가 사망 직전 상태까지 갔었다고 한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른도 큰일 앞에서는 떨리고 무서운 거였다.

           

재활훈련 중인 아들

   아들은 자전거에서 넘어질 때 머리부터 다쳐서 두개골이 깨지면서 뇌혈관이 파열되어 과다출혈로 인해 그 혈종으로 뇌가 심하게 부상한 상태라고 했다. 간밤에 한 수술은, 출혈한 피를 다 뽑아내고 쪼그라들었던 뇌가 다시 원상태로 펴지도록 했다고 의사가 말했다. 생명은 건졌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견할 수 없다고 의사는 덧붙였다.

  꿈 많던 아들은, 대학 3학년이었고 네덜란드 교환학생으로 선정되어 있었고 졸업만 하면 곧바로 공군 장교로 임관될 것이어서 그야말로 앞길이 창창한 녀석이었다. 유난히 친구가 많았고 할 일도 많던 녀석이었다. 녀석의 폰에 보니 일정이 빡빡하게 적혀있었다. 참 바쁘게 살았나 보다. 줄 돈, 받을 돈도 다 적혀있었다. 그의 ENTJ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당시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매의 학업 뒷바라지가 거의 끝나가는 중이라 좋다고. 마치 마라톤 경기를 끝내고 이제 마지막 코스인 본부석 운동장 한 바퀴만 돌면 마무리인 것 같다고. 그즈음에 아들의 예고 없는 사고는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https://youtu.be/VzclyO-YToE

 당시 [CBS TV수호천사]에 방영된 압축 영상


  어른도 때로는 기가 막힐 때가 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어서 남몰래 울 때도 있다. 너무 가슴 아파서 흐느낄 때도 있다. 어른도 사람이다. 10년의 세월동안 의식없는 아들을 고 가는 우리 부부는 어른이다. 지금껏 버티어 온 것은 어쩌면 그냥 어른인척 할 뿐이지 우리의 맘은 늘 아린다. 어른일지라도 그 마음은 나이가 없지 않은가?

 유럽 여행 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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