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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12. 2023

늦바람이 나다

 - 바지 엉덩이 부분이 닳아서 삭았다

아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에 늦바람이 났다. 드디어 아들이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수능 수험생인 누나가 고3일 때였다.  누나가 대학 진학으로 여념 없는 것을 보며 아들은 스스로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들은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일단 수학을 배워야겠어요. 수학은 혼자 공부하니 이해가 안 돼요."


그때부터 아들은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중3 겨울 방학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유치원 때부터 한 걸음씩 준비해 오며 기초를 다져왔는데 아들은 그때서야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설쳤다. 


'며칠 정도 저러다가 제 풀에 꺾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태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학생의 모습이 되었다.  게임이나 하고 친구들과 놀기만 하던 아들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아들은 머리도 깔끔하게 자르고 성실하게 학교에 잘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들은 덜컥 학급 반장이 되었다.


"야,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던 네가 반장이 되었으니 그 반은 이제 망했다."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그러나 내심 대견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돌아다니기만 하던 녀석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반장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친구들이 자기들은 공부하려고 너를 반장으로 뽑아준 것 아닐까? 반장이란 모름지기 학급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거잖아? 일단 학급을 위해서 개인 시간을 많이 내야 하니까."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 반장에 입후보했고 저의 포부도 말했어요.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반장을 잘하면 대학 입시에도 유리하대요."

아들은 기승전결, 대학 입학에 관심이 꽂혀 있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들은 반장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아들의 학급이 스포츠 데이, 모든 종목에서 종합 1등을 했단다. 응원도 잘하고 단합도 제일 잘되는 학급이었다. 그 반이 학력도 최고였다. 아들이 좋은 반을 만난 것인지? 아들이 반장이 되어 학급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그런 좋은 결과가 어디서 기인된 것인지 궁금했다. 아들은 자신이 학급의 친구들과 소통하고 잘 협력했다며 자신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했다. 아들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학급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며 삶의 관점도 바뀐 듯했다.


아들은 주로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뜯어말릴 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잠에 곯아떨어진 아들을 깨워서 아침마다 학교에 보내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학업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성취감을 크게 느꼈다. 그리고 아들은 '성적 향상상'을 받았다. 그것은 참 받기 힘든 상이라고 했다. '학력반'이라는 데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학년에서 40명 정도 선발하여 운영하는 특별 자율 학습 교실이었다. 아들은 어느 듯 우등생으로 바뀌고 있었다.


영어 공부는 전직 학원 강사에게 별도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졸리는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려고 독서실이 끝나는 시간에 그 강사님과 수업을 했다. 


"너 정말 이럴래? 내가 영어 가르치는 사람이지 졸음 깨우는 자냐?"


그 강사님은 영어 수업을 하며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아들을 깨우느라 혼이 났다. 아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그 영어 강사님과 영어 수업을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교복 바지 엉덩이 부분은 마치 삼베처럼 구멍이 송송 났다. 워낙 독서실에 오래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해서 바지가 다 삭았다. 그 바지는 반들반들하다 못해 살짝 당기기만 해도  화장지처럼 쉽게 찢어졌다. 그렇게 아들은 미치도록 공부를 했다. 공부에 늦바람이 났다. 




그러나 아들은 수능 시험에서 최상의 등급을 받지 못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사상누각이었다. 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채 막고푸기 식으로 했던 공부는 결국 허점이 드러났다.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활용이나 응용면에서 기초 지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발문 이해도 같은 것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턱이 없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초가 탄탄하고 볼 일이었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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