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지 엉덩이 부분이 닳아서 삭았다
"일단 수학을 배워야겠어요. 수학은 혼자 공부하니 이해가 안 돼요."
그때부터 아들은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중3 겨울 방학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유치원 때부터 한 걸음씩 준비해 오며 기초를 다져왔는데 아들은 그때서야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설쳤다.
'며칠 정도 저러다가 제 풀에 꺾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태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학생의 모습이 되었다. 게임이나 하고 친구들과 놀기만 하던 아들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아들은 머리도 깔끔하게 자르고 성실하게 학교에 잘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들은 덜컥 학급 반장이 되었다.
"야,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던 네가 반장이 되었으니 그 반은 이제 망했다."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그러나 내심 대견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돌아다니기만 하던 녀석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반장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친구들이 자기들은 공부하려고 너를 반장으로 뽑아준 것 아닐까? 반장이란 모름지기 학급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거잖아? 일단 학급을 위해서 개인 시간을 많이 내야 하니까."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 반장에 입후보했고 저의 포부도 말했어요.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반장을 잘하면 대학 입시에도 유리하대요."
아들은 기승전결, 대학 입학에 관심이 꽂혀 있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들은 반장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아들의 학급이 스포츠 데이, 모든 종목에서 종합 1등을 했단다. 응원도 잘하고 단합도 제일 잘되는 학급이었다. 그 반이 학력도 최고였다. 아들이 좋은 반을 만난 것인지? 아들이 반장이 되어 학급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그런 좋은 결과가 어디서 기인된 것인지 궁금했다. 아들은 자신이 학급의 친구들과 소통하고 잘 협력했다며 자신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했다. 아들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학급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며 삶의 관점도 바뀐 듯했다.
아들은 주로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뜯어말릴 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잠에 곯아떨어진 아들을 깨워서 아침마다 학교에 보내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학업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성취감을 크게 느꼈다. 그리고 아들은 '성적 향상상'을 받았다. 그것은 참 받기 힘든 상이라고 했다. '학력반'이라는 데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학년에서 40명 정도 선발하여 운영하는 특별 자율 학습 교실이었다. 아들은 어느 듯 우등생으로 바뀌고 있었다.
영어 공부는 전직 학원 강사에게 별도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졸리는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려고 독서실이 끝나는 시간에 그 강사님과 수업을 했다.
"너 정말 이럴래? 내가 너 영어 가르치는 사람이지 졸음 깨우는 자냐?"
그 강사님은 영어 수업을 하며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아들을 깨우느라 혼이 났다. 아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그 영어 강사님과 영어 수업을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교복 바지 엉덩이 부분은 마치 삼베처럼 구멍이 송송 났다. 워낙 독서실에 오래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해서 바지가 다 삭았다. 그 바지는 반들반들하다 못해 살짝 당기기만 해도 화장지처럼 쉽게 찢어졌다. 그렇게 아들은 미치도록 공부를 했다. 공부에 늦바람이 났다.
그러나 아들은 수능 시험에서 최상의 등급을 받지 못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사상누각이었다. 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채 막고푸기 식으로 했던 공부는 결국 허점이 드러났다.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활용이나 응용면에서 기초 지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발문 이해도 같은 것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턱이 없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초가 탄탄하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