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13. 2023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뉴질랜드에 가다

- 수학 교재를 항공 우편으로 보냈다

수능 시험을 본 날 저녁에 아들과 함께 가족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주최자는 아들이었다.


"니 성적에 맞는 대학에 가면 되지." 

"그래, 그 대학에 다니다가 적응이 안 되면 반수를 하면 되지." 

내 말에 남편도 호응했다.


"과연 그 길 뿐일까요?"

갑자기 아들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어떨까요?" 아들이 말했다.

"어떻게?"

"누나가 어학 연수중인 뉴질랜드에 가서 재수 준비를 하는 건 어떨까요?"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우리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만족스러운 수능 점수를 받지 못한 아들이 해낸 기발한 생각에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들은 뉴질랜드에 가서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어학원에 다니며 틈나는 대로 대학 입시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가능할까? 


아들의 뉴질랜드의 생활은 일찍이 발행된 '뉴질랜드에 가보고 싶은 이유'에 잘 드러나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67


딸은 대학 2학년을 마친 후에 목회자 자녀 특별 장학생으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아들은 그냥 한국에서 재수만 하면 뭔가 억울하다며 일거양득이 될 수도 있겠다며 뉴질랜드 어학연수 전형에 지원했다.  결국 아들도 그 전형에 통과하여 뉴질랜드로 떠났다. 


아들의 레벨 클래스가 상급반으로 진급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져 왔다. 

남매는 해외에서 더욱 우애가 돈독해지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소통하며 유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우리와 통화를 했다. 영상을 통하여 자신들이 사는 숙소의 전경을 보여주고 하루 동안에 있었던 즐거웠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전해주었다.  우리는 힘에 부치는 돈을 보내야 했지만 자녀가 열심히 인생을 준비하며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즈음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아들은 촌각을 다투며 어학연수와 수능 준비를 했다. 아들은 한국에서 수강 신청을 했던 인터넷 강의를 통하여 열심히 공부를 했다. 외국에 있지만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수능 준비하기에 큰 애로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수학 교재를 좀 보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아들이 전화로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보내 주셔야 해요. 선박 화물이 아닌 항공으로 부쳐주셔야 해요. 만약 선박으로 보내면 제가 한국에 돌아가고 난 후에 도착할지도 몰라요."


우리는 아들이 알려준 대로 수학 교재를 구입했다. 그리고 항공 우편으로 그 교재를 뉴질랜드에 보냈다. 겨우 몇 권의 문제집을 보냈는데도 항공료가 30만 원 정도나 됐던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지 않나? 그래도 자식이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돈 생각은 하지 않고 선뜻 항공으로 교재를 보냈다. 아들은 아무래도 세상 시끄럽게 재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아빠, 진지하게 의논할 것이 있어요."

"뭔데?" 


우리 부부는 '진지하게'라는 말에 겁부터 났다. 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궁금했다.


"차라리 여기 오클랜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어떨까요?"


젊은이들은 외국에 나가면 그곳이 좋은 모양이었다. 딸도 계속 연수 기간을 연장하여 2년이나 그곳에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마저 뉴질랜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웬만하면 자식의 일에 반대를 하지 않던 우리였지만 그것만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우리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안될 것 같아. 미안해."


아들은 야코가 죽는 듯했으나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뉴질랜드로 떠나더니 그곳에서 아예 살 생각을 했다. 딸이나 아들은 외국 생활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 그때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사진: 픽사 베이]


이전 08화 늦바람이 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