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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l 20. 2023

여름 방학 시작, 첫날 해프닝~(1)

- 천 원만 좀 빌려 주실래요?

엄밀히 말하면 이번 여름 방학식 날이 퇴임이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2학기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퇴직하는 내 자리에 나 자신이 계약직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됐다. 내가 하던 업무와 교육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학교도 나도 한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캘린더에 줄을 그어가며 근무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폰 프로필에 D-Day를 설정해 두기도 했다. 그런데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대부분의 짐을 집으로 옮겨두기까지 했지만 마음을 다시 다잡아 먹고 2학기에 필요한 학습지와 수업 자료들을 잘 준비해 두었다. 




나의 '일정 캘린더'에는 거의 1년 후에 할 일까지도 미리 적혀있다. 엉겁결에 까먹을까 염려되어 늘 계획을 세워두는 버릇이 있다. 방학이 되면 0순위로 교회 방석을 걷어내어 빨래방에 갈 작정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마친 후, 그다음 날 나의 행동반경을 이미지 트레이닝 하듯이 맘 속으로 그려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일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휴대폰의 플래시 버튼을 켜고 일정 알람을 추가한다. 그런 후에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빨래방에 갈 생각을 하는 중에 번뜩 생각이 났다.


'어, 현금이 없네.' 


날이 새면 빨래방에 갈 텐데 거기는 현금을 챙겨가야 세탁을 할 수 있다.  늘 남편한테 현금을 받아쓰는데 그 시간에는 이미 남편은 꿈나라로 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잠을 청했다. 


방학이라 나는 평상시 보다  늦게 일어났고 남편은 먼저 집을 나갔다. 그래서 현금을 챙겨 받지 못했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남편과 주고받은 카톡]

평상시에 나는 비상금으로 현금을 3만 원 정도는 챙겨 다녔는데...

요즘은 부의금, 축의금도 모바일에 있는 계좌로 이체를 해 주곤 하기 때문에 현금 챙겨 다니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남편은 나더러 다음에 빨래방에 가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계획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나 보다.

MBTI 검사에서 요지부동 변하지 않는 J를 지닌 내가 계획을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현금이 부족한 상태로 일을 해낸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가방을 샅샅이 뒤지니 5천 원 자리 지폐 하나와 천 원 권 하나를 찾아냈다. 서랍 동전함에 5백 원짜리를 한 주먹 챙겼다. 

일단 캐리어를 끌고 빨래방으로 갔다. '빨래방 카드'에 대한 안내를 봤던 기억이 났다. 현금이 없어도 카드로 '빨래방 카드'를 만들어 충전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헉, 그런데 래방 카드는 현금을 넣고 충전하여 만든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하여간 빨래방의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보다 천 원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단돈 천 원이 부족했다. 




나는 돈을 벌고 기도 잘 하지만 스스로 현금을 보하는 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도 온라인상에서는 돈이 없어서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날이면 날마다 생필품을 구입하고  계좌 이체를 하거나 여행 예약 등을 손쉽게 하며 살아왔다. 


현금이 없으면 언제라도 남편이 챙겨주었고 내 계좌에 잔고가 부족하면 남편이 즉시 입금시켜 주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 나는 돈에 관해 잼뱅이다. 돈에 대해 어리바리한 내가 오늘 남편과 나눈 카톡 내용을 보면 내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뜻을 이해됐다. 남편이 뻥을 쳤을 것 같은 생각이 슬쩍 들었다.


빨래방을 나오니 그 블록에 N은행이 있었다. 현금을 인출하는 ATM 코너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길을 건넜다. 구글 검색으로 '현금 인출기'라고 치니 60m 거리에 있단다. 구글맵을 보고 걸었다.

현금 인출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 가면서도 별 생각 다 해 봤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카드로 현금 만원을 좀 살 수 없을까요?라고 물어볼까?'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계좌 이체를 즉석에서 해 드릴 테니 현금 천 원만 빌려 달라고 하면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알까?'


지루한 장마 기간 중에 반짝 찾아온 햇빛 쨍쨍한 무더위라 아침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캡 모자를 눌러썼다.  그 모습으로 돈을 천 원만 빌려 달라고 하면 사람들이 짠하게 여기며 혀를 찼을 것이다.


마침내 K은행 ATM코너에 이르렀다. 


"당행 카드만 되는 건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가 어느 은행 것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얼마 전에 남편이 내 카드를 가져가고 남편의 카드를 내게 쥐어 주었다. 그 카드를 쓰는 게 뭔가 더 이익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용케 카드를 투입구에 넣고 떨리는 맘으로 돈 만원을 인출해 보기로 했다. 

디지털 여인네가 말하는 대로 뚝딱뚝딱 따라가니 내 손에 지폐 만원이 들어왔다. J성향인 나는 이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도 계획했던 일을 하는 편이다.


돈 만원을 인출했으니 교회에 들러 방석을 캐리어에 싣고 빨래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빨래방 블록에 있는 N은행으로 어떤 여자분과 아이가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들이 열고 들어가는 문 위에 '365일 코너'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 이곳을 이용했더라면 고생이 덜 했을 것 같아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로 학교만 오가던 생활에 익숙하던 내가 방학을 맞이하여 안 하던 일을 하니 모든 것이 생소했다. 해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뭔가 불편하고 어색했다.


남편은 내가 카드로 만원을 현금 서비스받고 엄청 기뻐하는 줄 모를 것이다. 동전을 투입해 주니 빨래방 세탁기는 잘 돌아갔다. 게다가 나는 현금 9천 원이 있으니 맘이 푸근했다.


[동전을 충분히 투입하여 잘 돌고 있는 빨래방 대형 세탁기]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 <<커피에 반하다>>라는 단골 카페에 들렀다. '디카페인 카푸치노, 핫'을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방학 첫날을 계획대로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때 남편과 마주 했다.


"이 사람아 현금 서비스는 이자가 쎄."

"아, 단돈 만원을 인출해도 이자를 내야 해?"

"그렇지? 아마 1,600원 정도 내야 할걸?"

"엥 나는 단돈 1,000원이 필요했던 건데 이자는 1,600원 정도나 내야 한다고?"


나는 얼른 카드를 챙겨봤다. K 은행 카드였다. 

"그 은행 카드로 당행 ATM에서 돈을 인출해도 이자를 그렇게 많이 내야 한다고?"




사실 나는 카드에서 돈을 인출한다는 것을 체크카드 개념으로 생각했다. 나의 돈을 그냥 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대출을 하는 것이었다. 현금 서비스를 받은 것이었다.


궁금하면 AI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엣지의 BING에게 물어보니 쿨하게 700원만 내면 된단다. 이자는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하여 구글의 BARD에게 물어보았다. 그 답이 무섭다. 최대 3,000원이 넘는다는 답이 나왔다. 또 다른 질문을 했더니 주 3회까지는 ATM기기 사용 수수료가 무료라는 답이 나왔다.


'그 외의 답'을 클릭해 보니 이런저런 답이 나왔다. 그리고 홈페이지나 고객센터에 문의해 보란다.



[Bing과 Bard가 알려준 일만원 현금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답변]


여름 방학 첫날의 해프닝이 만만치 않았다. 만원을 현금 서비스받은 것에 대한 최종 이자와 수수료가 얼마일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오늘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그래도 빨래방을 다녀온 방석이 깔끔하고 눅눅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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