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찬양Lim Mar 26. 2024

 한 끼에 홀라당, '꽈리고추 멸치볶음'

- 다 먹어버렸네요

나는 밥반찬으로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Y에게,

"네가 결혼하면 신혼집에 놀러 갈게. 반찬은 한 가지만 있으면 돼.

"알아요. 꽈리고추 멸치 볶음."

"맞아, 나 그것 하나 있으면 한 끼 거뜬히 끝낼 수 있어."


'꽈리고추 멸치 볶음'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요리지만 나는 맛있게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내가 만든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드신 작은 어머님이, 


"에이고, 꽈리고추에는 간이 하나도 안 배었네."


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레시피를 보고 했었다. 꽈리고추 색상을 파릇하게 살리려면 센 불에 후다닥 하라고 했다. 꽈리고추 색상은 살렸지만 간이 배지 않았다. 내 요리법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냥 꽈리고추와 멸치를 넣어 잘 조리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떤 때는 고추에 너무 간이 배어 짠 적도 있었다. 고추에 간을 맞추면 멸치가 짜기도 했다. 


색상도 살리며 맛있게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하는 방법이 궁금했다. 언젠가는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맛있게 만들어 봐야지,라고 벼르다가 결국은 못하고 살아왔다.



 

홍콩과 대만으로 여행 갔을 때, 나는 중멸치와 고추장을 준비해 갔다. 동료들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밤새 술안주로 그것을 먹었다. 

캐나다와 뉴욕에 갔을 때도 나는 멸치와 고추장을 챙겨갔다. 홈스테이 맘은 멸치를 보며 갸우뚱거렸다. 외국인은 멸치를 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먹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건 생선이 아니야."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맛만 보라고 해도 비린내가 역겹다고 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유숙했던 원어민도,

We hate anchovies.(우린 멸치 싫어요.)라며 멸치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이번 달 초에 푸꾸옥으로 여행을 떠날 때, 묵은지 볶음, 그리고 멸치와 고추장 등 몇 가지 밑반찬을 쿨러백에 챙겨갔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 모두는 현지 음식을 잘 먹었다. 그래서 따로 숙소에서 식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챙겨갔던 밑반찬을 다 버리고 와야 했다. 그런데 멸치와 고추장은 다시 가져와도 상할 염려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꾸역꾸역 한국으로 다시 들고 왔다. 


냉장고 문 칸에 짱 박아둔 멸치 한 줌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푸꾸옥에서 되가져 온 멸치였다. 

어젯밤에는, 멸치를 무치든지 볶든지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열어 구글 피드를 살펴봤다. 밤새 어떤 특종 뉴스가 있을까 하여... 그런데 구글 피드 알고리즘으로 꽈리고추 멸치 볶음 유튜브 영상이 떴다. 알고리즘은 나의 심리까지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멸치 요리를 하려고 맘먹고 있는 줄도 알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아침부터 유튜브를 보면서 일과를 시작했다.


'얏호!'


속으로 신이 났다. 그 영상을 켜 놓고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시작했다. 


 '꽈리고추 멸치볶음' 뚝딱! : https://youtu.be/HDnR97DM7CI


멸치를 먼저 팬에 달달 볶는다. 이어서 생마늘을 얇게 저민 것을 팬에 볶다가 간장을 넣는다. 그 양념에 꽈리고추를 넣고 볶는다. 꽈리고추를 요지로 구멍을 내든지 반으로 잘라도 된다. 다시마 우린 물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한 후에 볶아두었던 멸치를 넣고 국물이 졸아들 때까지 볶는다. 꿀을 좀 넣어 졸이다가 마지막에 통깨를 뿌린다. 

식성에 따라 바짝 졸여도 되고 살짝만 졸여도 된다. 레시피에는 홍고추 채를 넣으면 더 보기 좋다고는 했으나 냉장고에 홍고추가 없었다. 통마늘도 없어서 그냥 찧은 마늘을 넣었다. 

여기서 팁은 간장을 넣은 다음에 다시마 우린 물을 가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간을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다시마 우린 물/ 완성된 꽈리고추 멸치 볶음]


얏호, 성공이었다. 마침내 나도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맛있게 해냈다.

찹쌀과 톳을 넣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었다. 꽈리고추 멸치 볶음과 저녁을 먹었다. 다른 반찬 없이 그것으로만 밥을 먹었다. 자꾸자꾸 먹다 보니 우리는 한 끼에 홀라당 꽈리고추 멸치 볶음을 다 해치웠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부부 너무했다. 한 끼에 다 해치우다니... 


어? 그런데 이번에도 레시피의 사진보다 내가 만든 꽈리고추 멸치 볶음의 비주얼이 더 나아 보인다. 

이번 주말에 좀 더 많이 만들어서 딸내미에게도 챙겨줘야겠다. 



아무래도 내가 '숨은 장금이'가 되려나 보다.

#꽈리고추 멸치 볶음  #장금이  #요리  #레시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