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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04. 2024

한사코 달려갔던 결혼식

- 에필로그

순방을 방불케 했던 2박 3일의 일정, 그 끝자락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진주에 갔다가 대구를 거쳐 귀가하던 날, 전철 안에서 K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득달같이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던 그분은 바로 아들을 5년간 돌봐 주셨던 활보샘이었다. K 샘 부부는 우리 아들을 돌보는 활동보조 파트의 2/3를  도맡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고향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했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 벌어져 우리 부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맘을 추스르고 그분들이 떠나는 자리의 후임을 구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분들이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어 시간이 빠듯했다. 후임을 세팅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2박 3일 동안 출타했다가 돌아오자마자 아들의 간병 체계를 정비하는데 신경을 쏟았다.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무리 내 사정이 그렇더라도 그 주의 토요일, M의 결혼식에 참석할 작정이었다. 토요일은 중증환자인 아들이 침상 목욕하는 날이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목욕시키는 일을 다른 날로 옮긴다.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들의 간병 돌봄 체계를 정비하느라 우리는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였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다. 침상 목욕을 목요일로 옮겨서 진행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M의 결혼식만은 참석할 참이었다.


아들의 후배, M이 결혼을 한단다.


M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 우리의 사정을 아는 M의 어머니가 청첩장은 전송하지 않고 결혼 소식만 알린다고 하셨다. M이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우리에게 그 일을 알릴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12년째 누워 있는 아들은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고 멋지게 사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M의 어머니처럼 자신들에게 펼쳐지는 좋은 일을 쉽게 우리에게 전하지 못하는 지인들을 종종 봤다.




아들이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M은 신입생이었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와 하염없이 울던 M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M은 자신이 받은 장학금을 들고 왔다. M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우리는 억누르고 있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OO형은 꼭 살려야 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젤 좋아하는 형입니다. OO형은 꼭 일어나야 합니다."


M이 자신의 부모에게 우리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했을까?

M의 어머니는 발 벗고 나서서 우리 아들의 병원비를 후원해 줄 개미 군단을 모았다. 만 원, 2만 원을 매월 후원하겠다는 분이 꽤 많았다. 그분들의 응원은 당시 우리 부부에게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의 터널에서 절망하지 않게 했다.


한편, M은 그 이듬해 초에 입대했다.


우리가 10군데의 병원을 전전하며 보낼 동안에 M은 군 생활을 마쳤다. 제대하던 날, M은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는 대신에 우리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먼저 왔다. 늠름한 모습으로...

[M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리플릿]

그리고 곧바로 마켓 빌리지와 함께 하는 <서로 한 마음 캠페인>이라는 프로젝트를 마련하여 아들의 병원비 후원금을 모았다. 그 프로젝트는 온·오프 라인으로 진행됐다. 온라인 파트는 시작하자마자 곧장 완판이었다. M은 각 대학 캠퍼스에 가서 카네이션과 부토니에를 판매했다. 그 프로젝트는 대 성공적이었다. 큰돈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기를 모은 값이었다.


그게 10년 전의 일이다. 그런 멋진 일을 기획한 M은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며 살 것 같았다. 그의 미래가 기대됐다. 이건 드라마 주인공이나 하는 일이 아닌가? 허구의 세상에서나 볼 수도 있음 직한 일이었다.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을 지닌 M은 참 멋진 사람이었다.


세월이 훌쩍 흘러 M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한단다. 우리 아들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짝을 만나 결혼을 했겠지...

M의 부모님은 차마 M의 결혼식에 우리를 초대할 용기가 없으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멋지고 선한 사람, M이 결혼을 한다는데 열 일 제쳐놓고 달려가 축하해 주고 싶었다. 우리는 M의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모바일 청첩장을 전송받았다. 결혼식 장소는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이었다.


M의 결혼식 당일에 가느다란 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에, 몸도 만신창이었지만 M의 결혼식에 참여했다. M의 첫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우리는 몸을 숨겼다. 혹시라도 M이나 M의 부모님과 눈이 마주치면 그냥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기쁜 날, 축하할 날, 우리로 인하여 그분들이 혹시 눈물을 흘릴까 봐 걱정이 됐다.


'짜식, 멋진 후배를 두었군.' 새신랑 M을 보니 그런 후배를 둔 아들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 사람들은 M의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M의 인성까지  알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앳되었던 M이 어느새 건장한 상남자가 되어 있었다. 고개를 내저어도 아들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유를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M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중에도,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아들의 간병을 맡아서 일해 오던 활보샘들의 시간 조정 때문이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순방을 방불케 했던 진주, 대구의 여정은 끝났지만 그 주간은 활보샘의 급한 사퇴로 정신이 없었다. 그 한 주간이 힘겹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삶이란 비가 내렸던 M의 결혼식 날처럼 젖은 날도 있겠지만 햇빛 쨍쨍한 마른날도 있는 법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날마다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이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때로는 급박한 일 때문에 삶의 멀미를 할 수 도 있고...


그 한 주간은 마치,
압축된 일 년을 몰아서 산 듯했다.


*<순방을 방불케 했다> 연재끝냅니다. 


[사진: 픽사베이]

#카네이션   #브로치  #부토니에  #마켓 빌리지  #프로젝트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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