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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13. 2022

국수 예찬

진주 '국수의 ㅇㅇ'에 다녀와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내가 싫어하는 맛은 단맛이다. 먹기도 전에 미리 질린다. 그래서 나는 홍시나 바나나는 웬만해서 안 먹는다. 특히 홍시는 달콤한 데다 물렁물렁하다. 홍시에 비해 단감을 좋아하는 걸 보면 단맛에도 미묘하게 맛깔이 다른가보다. 단맛에 물컹한 맛이 더해지면 어하는 사람인가 보다. 식초나 홍초도 좋아하지 않는다. 신맛도 싫다. 고소한 땅콩이나 견과류도 거의 먹지 않는다. 고소해서 싫다. 만두는 너무 맛있어서 싫다. 인절미는 찰져서 질린다.

 이런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은 잔치 국수 맛이다. 단맛, 신맛도 아니고 고소하거나 느끼한 맛이 아니어서 좋다.

잔치 국수


  내 유년 시절에는 동구 밖에 두레박 우물이 있었다. 아낙네들은 그곳에 와서 빨래도 하고 보리쌀도 씻곤 했다. 종종 국수를 삶아 와서 씻는 이도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양은솥에다 우물물을 끼얹어서 국수를 헹궜다. 그럴 때 두어 가닥 얻어서 쪽쪽 빨면 세상에 그런 맛이 없었다. 어떤 꼬맹이들은 시멘트 바닥에 몇 가닥 흘러 있는 국수 가락을 집어서 콧물과 함께 삼키기도 했다. 밥도 제대로 못먹던 시절에 맛본 별미라서 그랬을까?

쯔비 쌀면


  결혼 후에, 남편이 당직하는 날이면 미리부터 나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곤 했다. 나 혼자서 국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멸치 육수에 말아먹거나 풋고추 다진 양념에 비벼 먹으면 시쳇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뭣해도 모를 지경이다. 국수는 그냥 진간장에 비벼 먹어도 맛이 있지만, 국수를 삶은 후에 헹구면서 몇 가닥 손으로 감아서 먹을 때면 탄수화물이 주는 그 담백한 맛의 묘미를 어찌 표현할 길이 없다.

   바쁜 세상 살아가다 보니 국수를 별스럽게 챙겨서 먹거나 맛있는 잔치 국숫집을 굳이 찾아가는 그런 일은 없었다. 일상은 바삐 돌아갔고 때에 따라 바나나도 먹는다. 이제는 홍시도 곧잘 먹는다. 밀가루의 배반이라는 화두가 맴돌던 시절에는 아예 분식을 끊기도 했다. 때로는 찰밥을 먹기도 하고 삶은 땅콩을 좋아하기까지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그 식성은 내 까다로운 인간관계와 밀접한 영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맘에 드는 사람만 골라서 지내고 매력 있고 뭔가 끌리는 사람과만 지내는 내 별난 인간관계와 흡사했던 것 같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오고 보니 모든 사람이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인다. 굳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이 모양, 저 모양의 사람들이 다 소중하게 여겨지며 나의 인간관계가 매우 다양해졌고 편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까다롭던 식성이 나도 모르게 변해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잘난 척했던 이면에는 깊은 열등감이 있었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정신적인 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맘 무척 소중한 것이며 그들의 맘을 어떤 것으로라도 무시하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오래도록 잘 알고 지낸 선배가 진주에 산다. 퇴직 후에 자신이 평소에 국수를 맛있게 끓인다는 말을 적잖이 들은 터라 국수 가게를 시작했단다. 그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몸과 맘이 많이 힘이 들 것이라며 한사코 말렸었다. 그런데도 선배는 야심 차게 가게를 오픈했다. 자신의 전공인 산업디자인의 재능을 살려서 최상의 인테리어로 가게를 꾸몄다. 국수 가게를 운영한 지 2년쯤 지난 후에야 내가 그곳에 들렀다. 동행한 남편과 조카는 쯔비 쌀면과 떡국을 각각 시켰다. 물론 나는 물국수 즉 잔치 국수를 주문했다. 내 생에 가장 맛있는 국수를 먹었다.  내가 잔치 국수 예찬론자 인것을 그 선배는 모른다.  선배가 진설해준 잔치 국수 양이 많아서 1/3쯤은 남겨두고 왔는데, 내내 그게 그리울 듯하다. 비릿하지 않은 육수에 정성 가득한 고명까지 곁들인 그 국수는 내가 지금까지 먹은 모든 식사 중에서 최고였다. 왜냐하면 내가 젤 좋아하는 메뉴인 데다 선배의 정성이 가득 담긴 국수를 먹었으니 어디 견줄 바가 있겠는가? 때로 우리는 꽃이나 영화를 보고 감동하지만 나는 그날, 국수에 감동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선배 사장님이 클래식 기타를 띵까띵까 튕기며 인생 후반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국수의 ㅇㅇ’에 또 언젠가  다시 들릴 수 있겠지. 국수를 맛있게 먹은 후에 대접받은 에스프레소 커피 향이 지금도 입안에 맴돈다.   

'국수의 ㅇㅇ' 선배 사장님과 담소 중

   모든 사람과 데면데면 잘 지내고 있지만, 손에 꼽을 몇몇 사람을 더욱 좋아한다. 이것저것 잘 먹는 식성이 되었어도 잔치 국수를 여전히 좋아하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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