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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09. 2024

시아버님의 끝사랑은 오토바이를 타고~

-  M으로 시작하는 Motorcycle (오토바이)

시아버님의 첫사랑은 시어머니였다.


"머리채가 비단결 같더라. 댕기 머리가 퍽 예뻤제."


아버님이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시면 어머님은 찬물 끼얹듯 되받아 말씀하시곤 했다.


"가진 것도 없는 총각이 마을에서 제일 부잣집 딸내미를 넘봐 부렀제."




첫사랑과 연애 결혼하신 아버님은 한량이었다. 장구를 멋들어지게 치셨고 노랫가락도 잘하셨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장례를 치를 때면 상여 앞에서 구슬픈 앞 소리를 하는 '선소리꾼'이기도 했다.

아버님이,  '죽자 사자 하던 친구 낙화같이 떨어지고,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라고 한 서린 앞소리를 메기면 상두꾼들은 '어화 넘 차 너화넘'이라고 뒷소리로 장단을 맞췄다.


밖으로만 나돌던 아버님과는 달리 어머님은 늘 땅만 보고 사셨다. 어머님은 묵묵히 일만 하셨다. 농사일을 손에서 놓으시지 않았다. 아버님은, 밭농사일 같은 건 사내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며 어머님의 밭일을 돕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님이 밭에서 쓰러지신 것은 밭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내미 생각에 밭을 매는 내내 흙에다 눈물을 묻으셨다. 결국 어머님은 밭에서 정신을 잃으셨다. 뇌졸중이라는 풍을 맞으셨다. 어머님은 5년여 동안 반신이 마비된 채 사시다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애지중지했던 자식과 남편을 두고 황망히 눈을 감으셨다. 그러자 아버님은 줄곧 해오셨던 마을 이장 자리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면 소재지에 있는 노인 복지관 총무를 맡으셨다. 연로하셨지만 매일 출, 퇴근하시며 노익장의 모습을 보이셨다.


"말동무가 없어서 못 살겠어야. 외로워서 기가 막힌다."


아버님은 외로움을 견딜 요량으로 노인 복지관에 취직하셨다. 아버님은 날마다 오토바이(Motorbycle)를 타고 노인 복지관에 다니셨다. 한파가 몰아쳐도 아버님은 우직하게 맡은 일을 잘 해내셨다. 자녀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편안하게 쉬시라고 말리는 대신에 아버님께 오토바이 바지를 사서 부쳐 드리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 아버님은 노인 복지관에서 열 살 연하의 여자 친구를 만나셨다. 우리는 아버님의 끝사랑을 지지했다. 평소에 드라마를 즐겨 보셨던 아버님은 드라마에서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셨던 터였다. 그래서 그 여친에게 다시없을 사랑꾼이었다.


여친의 권유로 아버님은 쌍꺼풀 수술을 하셨다. 두 분이 순금 커플 반지를 맞춰 끼시기도 했다. 빨간 넥타이를 매고 하얀 구두도 신으셨다. 아버님의 끝사랑은 여느 청춘들 못지않게 눈부셨다.




아버님은 7남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보시는 것이 낙이었다. 특히 장남과 통화를 하시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가 퍽 길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어요?" 장남이 아버님께 물었다.

"그 할매를 오토바이 뒤에 태워서 집에 보내줬지. 어느 날 밤에, '오빠, 우리 야반도주할까요?' 하더구먼."


아버님의 여친은 자녀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우리 아버님과 지내던 중이었다. 그 여친의 남편은 관공서 기관장이었다. 사랑만 받고 지냈던 분이라고 했다. 그분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외로워하던 중에 우리 아버님을 만났다.


"우하하하,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보다 더 재미있네요."


장남은 아버님의 연애사를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아버님은 무용담을 이야기하듯이 쉼 없이 러브 스토리를 쏟아 놓으셨다.


"어메, 오토바이 뒤에서 나를 꽉 안아 부리더만, 그 할매가..."

"하하하, 그 연세에도 사랑의 감정이 있나 봅니다."

"그거? 맘은 늙지 않는 법이여, 청춘이 하는 사랑이랑 똑같은 거여."

87세 아버님의 끝사랑은 여친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무르익어 갔다. 그런데 그 해 여름, 물놀이를 한 후에 아버님은 심한 감기를 앓으셨다. 그 감기가 심해지더니 결국은 폐렴이 왔다.


"난 말이야, 120살 까지는 살 것 같아."


항상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 만만하셨던 아버님이었다.


그런데 입원한 후 한 달  정도 지낸 어느 날이었다. 아버님은 당신이 더 이상 살 수 없겠다고 판단하시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기셨다. 목관을 삽입하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시니 메모지에 글을 적어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그 메시지를 보고 우리는 부랴부랴 아버님께로 달려갔다. 그것이 아버님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소통한 것이었다. 보고 싶은 장남 가족을 그렇게 보셨다. 아버님의 메모 글씨는 우리로 하여금 먼 길을 당장 달려가게 했던 소리 없는 함성이었다.


아버님은 어느 모로 보나 백세까지는 사실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 한 번의 감기로 허망하게 무너지셨다. 아버님의 끝사랑도 그렇게 끝이 났다.


어느덧 아버님이 떠나신 지 6년이 되었다.  

어버이날이 되어도 인사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며 전화를 받곤 하셨던 아버님이었다. 아버님이 그렇게 황망히 우리의 곁을 떠나실 줄 몰랐다. 한치 앞날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토바이로 끝사랑을 불태우셨던
아버님이 때때로 그립다.
5월이 되면 더욱 그렇다.

[대문 사진:픽사베이]

#오토바이  #끝사랑  #시아버지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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