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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19. 2022

아픔이 아픔에게

- 박완서 작가님은 '참척'이라 했다

  아들은 10년 전에 포항에서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그곳에서 1차로 급한 수술을 했었고 천만다행으로 자가 호흡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신촌 S병원으로 옮겨서 입원했다. 그곳에서 신경외과 치료를 마쳤다. 목관 삽입 시술도 그곳에서 했다. 다시 앰뷸런스 소리를 삐용 대며 포항으로 내려가서 두개골 봉합 수술을 했다. 곧 이어서 '션트' 수술이란 것도 했다. 그것은 뇌수술 환자에게 있어서, 뇌실에 펌프장치를 삽입하여 뇌척수액을 배출하는 장치를 달아주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급한 치료를 끝내고 나니, '재활'이라는 것이 우리 앞에 놓였다. 드라마에서는, 정신을 잃었다가 얼마 후에 깨어나곤 했으나 아들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재활 요양병원에서 5개월 정도 생활하다가 생활 근거지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신촌 S병원 재활 의학과에 4주간 지낼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카톡 단톡방에 긴급한 기도 제목이 올라왔다.

 '방효원 선교사 가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고 방효원 선교사 부부에겐  목숨보다 귀한 4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차남 현율 군과  셋째 다현 양은 현장에서  방 선교사 부부와 함께 숨졌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첫째 다은 양과 막내 다정 양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선교사의 두 어린 딸은 사고 직후 캄보디아 시엠립에 위치한 자바르만 7세 병원에 입원해  응급치료를 받아 오다  현지에서 27일 밤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CBS 기독교 방송뉴스 자막에서 발췌]

 https://youtu.be/XA5LzqhpJbw

  그 선교사의 살아남은 두 자매가 S병원으로 급히 입원해 왔다. 그 기막힌 상황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첫째 다은이는 팔이 절단된 채, 부모님과 동생 두 명이 하늘나라에 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성격은 매우 명랑했다. 막내 다정이는 서너 살 정도 된 듯했는데 충격으로 말을 잃은 상태였다. 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활 치료실이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다은이는 이것저것 질문이 많았고 동생도 잘 챙기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이었다. 다은이와 다정이를 간병하시던 다은이 외조모, C 권사님이 살며시 나를 보자고 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아들내미 치료비에 보태요. 우리 딸 내외와 손주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아들내미는 젊고 할 일도 많은 데 꼭 살리야지요. 산 사람은 살려야죠"  


  그 권사님은 꼬깃꼬깃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분은 딸 내외와 손주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분이다. 그 아픔을 표현할 길이 있을까?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잃은 아픔을 '참척'이라 했다. 고아, 과부, 미망인, 홀아비... 이런 말들은 있지만 자식 잃은 자를 일컫는 말은 없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참척의 상황에서 후원을 하는 그분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내 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땅속에 누워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이 어두운 땅속에 누워 있다는 걸 내가 믿어야 하다니.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나는 내 정신이 미치기 직전까지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가 어떤 강인한 저지선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걸 여실하게 느낀다. 그 저지선을 느낄 수 없어야 미칠 수 있는 건데 그게 안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있다면 내 아들의 생명도 내가 봉숭아를 뽑았듯이 실수도 못 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거두어간 게 아니었을까? 하느님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발췌]


  아,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을 떠올리니 맞물려서 생각나는 분이 있다. 한 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 B 선생을 다시 만났을 때, 그분은 어느 누구보다 내 아들의 상황에 대해서 마음 아파했다. 그분 책상 위에 비닐로 포장된 손수건이 몇 개 있었다. 금연 손수건이었다. 학생들과 행사를 하고 몇 개 남았던 모양이다.


 "아드님 간병하실 때에 손수건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거 사용하세요."


"아, 좋아요, 간병에 손수건은 다다익선입니다. 감사합니다."


  B 선생은 다른 손수건을 몇 개 더 챙겨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기막힌 비보를 전해 들었다. 고등학생이었던 B 선생의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한 교무실에 있던 우리 모두는 꼼짝을 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에서 울음보가 터졌다.


  그 일 이후에, 우리는 박완서 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뭐라도 해야 우리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B 선생은 명예퇴직을 하여 학교를 떠났다. 요즘도 B 선생이 건네어 준 손수건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일부사진 출쳐: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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