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23. 2022

간병사 이모와 활동 보조사 이모

- 헬렌 켈러에게는 설리번이 있었다


 # 헬렌 켈러: 미국사회 운동가. 들을 수볼 수말할 수도 없었으나 이 삼중고의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인권 운동가, 사회주의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인물. [발췌:나무 위키]


  삼중고를 겪은 헬렌 켈러가 하버드 대학 학사모를 쓰고 작가, 교육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녀에게는 설리번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헬렌 켈러/ 헬렌켈러의 명언(발췌: 나무위키)]

  나의 아들은, 헬렌 켈러보다 심한 총체적 장애를 입고 10년 동안 병상에 있다. 사실, 재활 요양 병원에 가 보면 아들보다 더 심한 환자도 많다. 그런 장기적으로 투병하고 있는 환자의 뒤에는 알게 모르게 희생하고 봉사하는 손길이 있게 마련이다.  


 헬렌 켈러는?  

 걸을 수 있다. 먹을 수 있다. 앉을 수 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녀는 웃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어떤 모습으로든지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아들은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을, 설리번보다 더 다정하게 돌봐 준 사람들이 있다.

 


아들은 '간병사'를 잘 만났다.

 (0) K 간병사

  그분은 내 아들을, 재활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만나서 홈 커밍할 때까지 6년간 지극 정성으로 돌봐 주셨다. 그분의 장점은 간병 요령이었다. 혼자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목욕도 시킬 수 있었다. 주 1회, 휴일을 맞아서 그분이 집에 가면, 우리는 5명 정도가 힘을 모아서 아들을 휠체어에 싣거나 내렸다. 그런데 그분은 마치 지푸라기 들듯이(과장하자면) 혼자서 아들을 옮겼다. 그야말로 '일당 백'을 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제7년째 되던 해에, 의료보험 공단으로 부터 오는 재활 운동 혜택이 없어져서 집으로 퇴원하는 결정을 했다. 재택 중증 환자에게 활동 보조의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자, K 간병사는 심한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먹지도 못하여 단시간에 살이 10kg나 빠졌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떠나 올 때, 그분이 구급차 뒤에서 대성통곡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키우던 강아지와도 생이별 하려면 힘들 텐데ㅜㅜ  6년간, 24시간 내내 곁에서 간병하던 환자를 떠나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소통해주지 않았던 무정한 녀석을 그토록 사랑해주셨던 K 간병사 덕택에,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의지하면서 잘 보낼 수 있었다. 아들에게는 설리번과도 같은 분이었다.


아들은 '활동 보조사'를 또한 잘 만났다.

(1) L 선생

  L 선생을 만난 것은, 아들이 6년 동안 지냈던 병원 생활을 뒤로하고 자택에서 재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벌써 햇수로 5년 째다. 활동 보조사로는 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부모인 우리를 능가한다.  

  이분의 특기는 렌즈 교체다. 장기적으로 투병하는 환자들은 눈 깜빡임이 빈번하지 않아서(내 생각이 맞을까?) 안구가 건조하고 눈곱이 말라서 각막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특수 렌즈를 낀다. 아들은 오른쪽 눈에 렌즈를 끼고 지내는데, 일단 그분은 단 한 번에 렌즈를 뺀다. <사실, 요양병원에 있을 때에 렌즈를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간호사가 단 한 명이어서 그분이 비번일 때는 출근하는 날까지 기다리기도 했었다.>   

  한 사람은 고개를 잡고 다른 사람은 눈을 크게 벌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뽁뽁이에 얹어준 렌즈를 삽입한다. 그 진행 과정의 총지휘자는 L 선생이다.  

  항상 음악을 들려주거나 직접 찬양을 불러주기도 한다. 때로는 책을 읽어 주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그분이 아들을 보고 있을 동안에는 안심이 된다.  

 처음에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는데, 아예 근처로 집을 옮겨와서 본격적으로 내 아들을 간병하는 일에 몰두하며 지낸다. 우리는 L 선생이 있어서 설리번이 부럽지 않다.


(2) G 선생

  G 선생은 L 선생의 남편이다. 누구나 꺼리는 야간 담당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L 선생과 두 분이서 동시에 근무를 하는 시스템이다. 그분들의 수고로 우리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숨을 쉬고 지낼 수 있다. 이분은 만능 재주꾼이다. 간병 기구 등이 고장이 나거나 구조를 변경해야 할 때면 척척 알아서 다 고친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환자에게 가장 최상의 상태가 되도록 모든 기구들을 손본다. 멋진 분이다. 남자 설리번이다.


(3) Y 선생

 이분이야 말로 보배 같은 분이다. 자녀들도 다 장성하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봉사하는 맘으로 내 아들을 돌보고 계신다. 이 분은 아침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근무하는 타임이라서 웬만한 사람들은 해낼 수 없는 시간대다. 그러나 새벽 4시부터 기상하여 준비하고 간병을 하러 오신다. 이분은 아들의 배변을 담당하는 분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일인데도 스스로 자처하여 그 일을 도맡아서 하고 계신다. 설리번은 이런 일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4) J 선생

  J 선생은 옆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다. 그래서 다른 활동 보조사가 개인 사정이 생기면 그 빈자리를 여지없이 채워서 근무해주신다. 다른 환자를 한 명 더 돌보면서 주말 밤 시간과 주일을 책임지고 있어서 늘 감사한 맘이 솟는 분이다. 이분은 바느질이 특기다. 미싱사 출신이다. 전문적인 바느질이 필요할 것들은 알아서 다 만들어 오신다. 설리번은 바느질은 할 줄 몰랐을 것 같다.


(5) P 선생

  p 선생은 토요일 오후 담당이다. 토요일 오후는 아들을 침상 목욕을 시키는 날이다.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키는 일은 두 사람이 하기는 역부족이다. 한 명은 물을 떠 나르고 나머지 두 사람이 합을 맞추어서 목욕을 시킨다. 이분과 아들을 목욕시키는 동안에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해서 척척 손이 잘 맞는다. 우리는 토요일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지만 환자가 상쾌해지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다. 설리번은 침상 목욕이란 걸 알까?


아들은 '많은 사람들'을 참 잘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울고만 있지 않았다. 때로는 웃기도 하고 삶을 즐기기도 하면서 의식 없는 아들을 품고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넉넉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아들의 사고 이후에 알았다.





간병사와 활동 보조사들이 보여준 후원은 우리에게는 불담처럼 따사로웠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이전 07화 그릿 시냇가에서 떡과 고기를 먹은 자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