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한 후에, 우리 부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삽시간에 알게 되었다. 그중의 한 분이 바로 '전영순 사모님'이다. 그분의 남편은 '한동대학교 김대식 교수'였다.
서울에서 신경외과적인 치료가 끝나고 아들은 두개골 봉합 수술을 해야만 했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주치의는 이후로는 재활하면서 호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었다. 두개골을 보관해 두었던 포항 병원으로 향하려고 엠뷸런스까지 대기해 놓은 상태인데 아들의 혈압은 내려갈 줄을 몰랐고 또한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있어서 감히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주사기를 양손에 들고 황급히 달려왔지만 200을 치닫는 혈압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어서 포항행을 감행했는데 구급차 속에서는 정상 혈압을 유지했다. 혈압 계기판에 '133'이라는 숫자는 마치 고장이 난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했다.
"전국에 있는 기도 동역자들에게 환자가 무사히 잘 내려오게 해달라고 중보 기도를 요청했었어요."
포항에 도착하니 전영순 사모님이라는 분이, 우리가 포항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기다렸다는 말씀을 했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건네어 주셨다.
"수술이 끝나면 장기 입원을 해야 하니 병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셔야 할 거에요. 이것으로 마련하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실에서 이것저것 사라고 하는 게 어찌나 많은 지 사다 나르느라 경황이 없을 정도였다.
그날부터 사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원에 오셨다. 특히 아들이 수술실 안에 들어가 있을 동안에, 자신이 미국에서 지냈던 이야기며 두 며느리를 보게 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아들의 수술은 끝나 있었다. 사모님의 속 깊은 배려였다. 대수술을 하는 동안 우리가 염려할 것을 미리 아시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며 그 순간을 넘기게 하려는 의도였다. 서울에서, 아들의 목관 삽입 시술을 할 때, 우리 부부는 별의별 생각을 하며 침이 마를 정도의 긴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었다. 그러니 아들이 대수술을 할 동안에는 우리 둘 중의 한 사람은 혼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위기를 사모님과 함께 잘 넘겼다.
사모님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병원에 들르실 뿐만 아니라 병실에 있는 다른 환우와 보호자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셨다. 알게 모르게 그런 것들이, 타관 객지에서 병원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은근히 자긍심?이 생기게 했다. 우리가 기죽지 않고 병실에서 지내라는 의도였던 것 같다.
포항에서 지냈던 6개월 동안에, '하루 한 끼'는 책임을 지겠다고 모토로 삼으셨던 것 같았다. 혹시 일이 있어서 병원에 못 오실 때는, 배달 주문을 해두셨고 명절에는 직접 사골이나 음식을 챙겨 오기도 하셨다. 그리고 때로는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외식을 시켜주셨다. 영어 표현에, "I'm on cloud nine today. (나는 기분이 굉장히 좋다.)"라는 것이 있다. 사모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 들도록 하셨다. 그리고 아무리 기가 막힌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일단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어야 그 힘든 기간을 버티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포항 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니, 매년 명절 때마다 커다란 박스 속에 한과 상자가 가득 담긴 선물을 보내 주셨다. 명절에 주위 분들에게 나누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명절마다 병실 가족들에게 한 상자씩 드리고 간호사실에도 드렸다. 명절마다 이웃들과도 한과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었다. 10년 동안 그 선물은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도착했다.
포항에서 처음 사모님을 뵈었을 때는 그분이 지금만큼은 바쁘지는 않았다. 미국에서의 삶을 적은 원고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고 오디오 북으로 발행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간증을 다니고 방송 출연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사셨다.
몇 달 전에는 퇴임하신 남편 교수님과 함께 K국 선교사로 출국하셨다. 교수님은 그곳 국립대학에서 강의를 하시고 사모님은 섬김과 봉사로 지내고 계신다.
열왕기상 17장 6절에는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까마귀를 사용해서 엘리야 선지자의 필요를 채우는 말씀이 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가져온 것처럼 전영순 사모님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공급하는 축복의 통로였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전하며 영혼을 섬기는 삶을 사시는 그분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아들로 인하여, 결코 만나볼 수도 없었을 귀한 분과 인연이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