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의 동기간을 두루두루 챙기며 그들의 행복과 안녕을 기꺼이 떠안는 사람이 있다. 시댁에는 막내 시누이가 그렇다.
"니가 내 딸 맞나? 내가 낳은 딸 맞나?" 시어머님이 통 크고 기마이 좋은 막내 시누이에게 종종 하셨던 말씀이다. 시누이는 우리 시부모님께 고가의 의료기는 물론 몸에 좋다는 것이라면 뭐든지 척척 구입해 드리곤 했다. 시누이는 친정에 올 때마다 뭔가를 챙겨 온다. 시댁 동기간이 모일 때마다 먹거리준비는 시누이가 도맡았다. 김치를 담그는가 하면 특산물을 챙긴다. 동기들과 풍성하게 나눠 먹고 또 바리바리 싸 주기까지 하려고.
시부모님은 어느덧 세상을 떠나셨지만 시누이는 여전히 형제, 자매들을 챙기고 있다. 시누이는 해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햅쌀, 고구마 등을 택배로 보낸다. 시댁은 무려 7남매나 되는데 말이다.
큰 시누이의 딸이 건강이 좋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때 막내 시누이는 그 질녀를 자기 가까이로 불러 다독거리며 지냈다. 둘째 시동생네 조카 두 녀석이 유치원생일 때였다.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 동서를 대신하여 시누이가 그 조카들을 챙겼다.
그렇게 혈육을 살피다 보면 시누이네 기둥뿌리가 남아날는지.올해만 해도 햅쌀을 두 번이나 받았다. 후딱 차려낸 햅쌀밥 식탁(시누이가 보내 준 햅쌀로 풍성한 가을맞이를 했다.)
며칠 전에, 의문의 택배가 당도했다. 발송인이 막내 시누이였다. 미리 택배를 보낸다는 연락이 없었는데. 일일이 택배를 보냅네,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서일까? 단감을 잔뜩 받았다. 택배를 잘 받았노라고 연락했더니 "감 맛집 단감이라 겁나 맛있을 거예요."라고 시누이가 말했다.
'감 맛집'이란 말을 난생처음 들었다. 얏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바로 단감 아니던가. 계를 탄 기분이었다. "아가씨, 잘 먹을게요."라고 시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단감을 야채칸에 꽉꽉 채웠다. 여기저기 나눠 먹을만한 곳을 손꼽아 봤다. 그렇게 하라고 시누이가 넉넉하게 보냈을 것이다.
[야채칸에 보관 중인 감 맛집 단감]
단감을 다라이에 덜어 내어 꼭지를 먼저 땄다. 그런 후에 소금물로 씻었다. 감을 깎은 후 먹기 좋게 잘랐다. 딸내미에게 주고 또한 10년 만에 독일에서 잠시 들린 남동생에게도 맛 보이고 싶었다. 그래봤자 '말로 받아 되로 나누는 격'이겠지만.
그런데 감을 깎다가 일이 나고야 말았다. 그만 손가락이 베였다.스위스제 과도는 무척 잘 드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과도를 사용할 때는 칼을 잡은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고무장갑을 잘라 만든 골무를 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물 묻은 단감 껍질이 미끄러워서 칼날이 왼손 검지에 스쳤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피가 멈추질 않았다. 감을 내팽개쳐 두고 병원엘 가야 하나? 난감했다. 테이핑을 단단히 해도 소용없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겨우 지혈됐다. 목장갑을 덧끼고단감을 마저 깎았다. 과도에 손가락이 베여 한편으로 속상했다. 이런 걸 호사다마라고 하는 건가?
[단감을 깎은 후에 먹기 좋게 잘랐다. '데비 마이어' 그린 박스에 담아 딸내미와 남동생에게 전달했다.]
시누이가 보낸 단감은 도대체 몇 브릭스(Brix)일까? 얼마나 단지, 당도가 거의 망고 수준이었다. 설탕에 절인 맛이었다. 설마 감나무에 설탕물을 준 건 아니겠지?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또 다른 택배가 도착했다. "갈치가 왔네." 라며 남편이기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친정 여동생이 보낸 것이다. 친정 여동생도 시누이처럼 뭘 보낸다느니, 그런 말을 미리 하지 않는다.
싱싱한 생물, 제주 은갈치였다. 여동생의 지인 중에 갈치 낚시가 취미인 분이 있다. 이름하여 '갈치 아저씨'다. 갈치 아저씨는 센스쟁이(갈치 아저씨가 제주도로 갈치 낚시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은갈치를 맛보게 된다.)
친정에는, 여동생이 동기간을 두루 챙기고 돌아본다. 단감을 깎다가 손가락을 베인 상태지만 생물이라 당장 손질해야만 했다. 대체로 봄, 가을에 보내오던 갈치가 겨울에 왔다. 기후 변화 때문인 듯하다.이전까지는 갈치를 잡아 즉시 그 자리에서 급랭하여 보내왔는데 이번에는 생물 그대로였다. 조각 얼음을 잔뜩 깔고 갓 잡은 갈치를 그대로 밀봉했기 때문이다. 갈치가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같았다. 갈치를 낚아 올릴 때마다 갈치 아저씨는 짜릿한 손맛에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제주산 생물 은갈치, 언박싱하지 않은 갈치 택배 박스]
[그날 저녁 식탁에 오른 은갈치 호박 조림]
여동생은제철 쑥으로 만든 쑥떡을 주문하여 형제들에게 보내주곤 한다. 떡을 맞추는 김에 조카네 것도 챙기고 지인에게도 주겠다며 잔뜩 주문한단다. 그러다 보니 그 떡집에서는 동생이 주문한 떡을 몇 날 며칠에 걸려서 해낸단다. 여동생은 흑염소 진액을 주문하여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독일에 있는 남동생에게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후원금을 보낸다.
이제와 돌아보니 지금껏 여동생 덕으로 살아온 듯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여동생이 준 ㅁㅍ가방을 메고 여동생이 사준 기모 바지를 입고 여동생에게 받은 링 목걸이까지 걸고 있는 게 아닌가. 여동생이 해준 것으로 칠갑했다. 특히, 오늘 입었던 패딩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아들이 사고를 당했던 그 해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아들을 간병하러 병원으로 나다닐 때 입으려고 괜찮은 패딩을 하나 장만할 작정이었다. 매장에서 한창 패딩을 살펴보고 있는데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
"응, 하도 추워서 패딩 하나 사려고."
"아하, 그렇다면, 가격은 보지 말고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보시오. 결제한 금액을 알려 주면 바로 입금할게."
'캬아, 어쩌다 나는 이런 동생을 뒀을까?' 내가 고른 패딩값은 상상외로 비쌌다.값을 따지지 않고 거금을 투척해 줬던 여동생이다.절망 속에 있던 내게 여동생의 마음이 훈훈하게 다가왔다.그 패딩은 세월이 가도 새록새록 좋았다.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그것을 입을 때마다 따뜻하고 새것 같다.
편백 식탁과 소파, 그리고 편백 황토볼 기능성 침대도 여동생 덕택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그뿐이랴? 중증 환자 아들이 지내는 방 벽을 황토 타일로 리모델링해 준 것도 여동생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차를 구입할 때나 아파트를 마련할 때도 여동생이 뒤를 봐주었다. 여동생이 우리의 배후가 되었다. 그래서 조건이 좋은 집이 있으면 우선 먼저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 후에 살고 있던 집이 팔리는 대로 여동생에게 빌린 돈을 되돌려 주곤 했다.
이다음에 하나님이 "넌, 뭘 하며 살았느냐?"라고 여동생에게 물으시면, "저는 형제들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언니네의 아픔을 나눠지려고 애썼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그러면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 잘하였도다. 나를 대신하여 형제를 돌아봤으니 여기 앉으라."라고 하시며 여동생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실 것 같다.
명색이 언니가 되어 가지고 동생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때로는 멋쩍었다. 대체로 언니가 동생들을 챙기는 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