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다르다.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이에게는 싫을 수 있다. 수박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달콤하고 시원한 맛의 수박을. 그런데 있다. 내 조카는 수박을 먹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나나와 땅콩을 좋아한다. 그런데 난, 바나나는 달아서 싫고 땅콩은 고소해서 꺼린다. 달거나 고소한 것은 질색이다. 내 입맛이 그런 것을 애당초 거절한다. 국물이 있는 찌개 종류는 먹지 않았다. 국물을 먹으면 배가 부를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국물을 넣고 끓이는 국이나 찌개 대신에 조림으로 해 먹거나 구이를 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김치를 먹지 않았다. 자극적인 맛이 싫었다. 또한 입에 냄새가 배거나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낄 것 같은 결벽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댁 식구들은 생지, 어린지, 갓지, 파지, 배추지, 싱건지, 솔지, 등등, 김치란 김치를 다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은 국물이 흥건한 찌개 종류를 유난히 좋아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도 어느덧 시댁 식구들이 잘 먹는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김장을 해서 잔뜩 보내주시곤 하셨다. 김치 속을 거의 넣지 않은 전라도식 김치였다. 시어머님의 김치는 묵은 지가 될 때까지 국물이 생기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그 맛있는 김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그후 5~6년 동안, 김치를 사 먹거나 몇 포기씩 직접 담갔다. 때때로 시어머님이 그리울 때면 전라도식 김치도 생각났다. 입안에 군침이 돌면서.
그렇게 지내오던 우리 가정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2년 가을에 아들이 사고를 당하여 중증환자로 드러누웠다. 그날부터 아들 돌보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됐다. 모든 일상을 제쳐두고 아들을 간병했다. 그즈음에 셋째 동서가 김치를 통째로 들고 왔다. 인천을 떠나 아들이 입원해 있는 포항의 병원 근처에서 잠시 살고 있을 때였다. 동서가 들고 온 김치를 냉장고에 넣으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먹던 식사에 질릴 무렵이었으니 더욱 더 그랬다. 동서가 챙겨 온 김치는 우리의 입맛을 돋워 주었다. 그 이듬해, 셋째 동서는 친정에 부탁하여 우리 집 김장을 해결해 주었다. 얼굴도 제대로 뵌 적 없는 사돈으로부터 받아먹었던 김치 맛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다음 해, 영양교사인 둘째 동서가 좋은 재료로 담근 웰빙 김장 김치를 보내 왔다. 생때 같은 아들이 중증 환자가 되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는데 김장 김치를 챙겨 주던 손아랫 동서들 덕분에 절망의 늪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서 김장 김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또한 겨울 준비는 김장을 담그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같은 노회 소속인 대형 교회에서 매년 김장 김치를 보내 주신다. 아들 간병으로 경황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챙겨주시는 듯하다. 게다가 인근에 사시는 시고모님도 매년 김장 김치 한 통을 들고 오신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에서 김장을 했다며 한두 포기 정도 전해 준다. 그래서 12월은 김장 김치 퍼레이드다. 여러 종류의 김장 김치를 먹어보니 약간씩 맛의 차이가 있었다. 배추를 주재료로 하여 담근 김장 김치지만 손맛에 따라 맛이 달랐다. 서울식 김장 김치는 김치 냉장고에 잘 보관했다가 김치찌개용으로 하면 제격이었다. 전라도식 김치는 여름철을 지난 후에 묵은지 찜으로 하면 좋았다. 여하튼 김장 김치를 받는 날은 김치 보쌈을 먹는다. 보쌈집에서 구입한 수육을 생김치에 싸 먹는다. 그럴 때면,"♪12월은 김장 김치를 먹는 달♪♪"이라고 흥얼거린다.
A님은 김장을 한 후에 매년 김치를 챙겨 주신다. 올해 A님이 담근 김치는 여느 해보다 더 맛있었다. A님의 김치를 죽죽 찢어서 먹을 때마다 '김치'라는 것을 일찌감치 생각해낸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A님은 솜씨도 솜씨지만 김장 재료를 국산으로만 사용한다. A님의 김치는 내 입맛에 잘 맞는다. A님의 김장 김치가 나의 최애 김치다.
A님의 남편은 갑자기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1년 넘게 힘겹게 투병했다. A님은 남편의 간병으로 지쳐있었던 지난해에도 여느 해처럼 김장을 했다.
두 달 전에, A님의 남편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래서 지금은 떠난 남편에 대한 애도 기간이다. 그런데도 A님은 슬픔을 딛고 김장을 했다. 더욱 정성스럽게. 그런 A님이 전해준 김치를 먹으니 목이 메었다. 배추를 절이며, 무채를 썰며, 양념을 버무리며, 김장하는 내내 남편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떠났지만 매년 해오던 김장을 했던A님의 심정이 전해져 왔다. 바로 A님의 삶의 의지로 여겨졌다.
개운하고 감칠맛이 끝내주는 A님의 김장 김치를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산다는 것의 덧없음과 절절함에 대해. 한 사람은 떠났지만 남은 자의 삶은 이어져야 하므로 올 해도 여전히 김장을 했을 A님. 아마도 A님은 눈물을 삼키며 김장을 했을 것이다.
해마다 12월에는 이런저런 종류의 김장 김치를 먹게 된다. 연중 김치를 가장 많이 먹는 달인 것 같다. 김장 김치를 자주 먹으니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 한 해 동안 지쳐있었던 몸이 활력을 되찾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재채기가 나며 감기 기운이 심했다. 혹시 독감이 아닐까? 라는 염려를 했다. 중증환자를 돌보는 삶이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그 감기가 슬며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김장 김치를 즐겨 먹어서 면역력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김장 김치를 즐겨 먹는 12월은, 아침마다 장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쾌변이다. 한 해 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니 별의별 일이 많았다. 맘 속에 쌓였던 것들을 김장 김치로 다 훑어 내리는 기분이다. 모두 다 씻겨내려가는 듯했다. 섭섭함이나 아픔의 덩어리 같은 것도 싹 다 비워버리는 기분이 든다. 속이 시원하다.
김장 김치의 효능은 상상외로 많다. 중1 영어 교과서 지문에도 나와 있는 '김장 문화'는 우리 민족이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한 것이다.
김장문화는 이웃끼리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어 먹는 등 이웃들과 소통을 하는 계기가 되고 공동체적인 연대 의식을 높이는 무형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국립농업과학원 식생활영양과 유선미 /한국영양학회 이해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