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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식 보고 산다고 하셨어

- 된장찌개

by Cha향기

작은 엄마가 오셨다. 그래서 그날, 부모님은 여느 날보다 일찌감치 장터에 있는 가게 문을 닫았다. 사촌 숙이와 현이는 자기네 엄마를 보자마자 소리 높여 울어댔다.


"시끄럽다마, 울지 마라, 이제 너거 엄마 따라 가믄 되지, 와 우노? 나는 너거 엄마가 아니다. 나도 자슥이 5남매나 된다. 너거 엄마, 아부지는 칠락팔락 자빠져 노는데, 왜 내가 너거를 거둬야 하노? " 엄마는 거품을 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입 좀 다물어라. 사람이 너무 그러는 거 아니다."라며 아버지가 엄마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좔좔 분을 쏟아 놓았다. 작은 엄마가 뭐라고 대꾸를 하니 엄마는 육두문자로 작은 엄마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작은 엄마가 손으로 엄마의 입을 찢었다. 작은 엄마 손은 오동통했고 손가락은 길었다. 핏빛 매니큐어를 열 손톱에 다 칠한 손으로 엄마를 사정없이 할퀴었다. 작은 엄마 볼에 바른 분이 찐득찐득해졌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등잔대를 엄마 얼굴에 냅다 집어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자식을 맡겨놓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띵가띵가 놀며 지낸 작은 엄마를 탓해야 옳았다. 작은 엄마를 뜯어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린 조카들을 떠맡아 길러준 엄마에게 등잔을 던지다니... 그런 광경을 보며 우리는 덜덜 떨며 울었다. 엄마가 당장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제발 거기까지만, 이라고 간절히 바라며 전쟁 같은 상황이 멈춰지길 기도했다.


"내가 어서 죽어야 이 꼴 저 꼴을 안 보지.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할머니는 숙이와 현이를 감싸 안고 우셨다. 할머니는 숙이와 현이를 끔찍이 챙겼다. 그 이후 일은 기억이 포맷되어 버렸다. 아마 작은 엄마가 숙이와 현이를 데리고 갔던 것 같다. 아버지는 술 한잔 마시고 그대로 잠이 드셨고 엄마의 오른쪽 눈은 퉁퉁 부어올랐다. 엄마의 관자놀이는 괜찮은 걸까? 그런데도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저녁을 준비하셨다.


"쇠죽솥 숯불 위에 이거 갖다 올려라."

엄마는 된장 뚝배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무를 얄팍하게 잔뜩 썰어 넣고 풋고추를 다져 넣은 된장찌개였다. 쌀뜨물 육수를 넣은 된장이 보글보글 끓는 걸 지켜봤다. 서서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숯불을 보며 멍 때리니 흐르던 눈물도 말랐다. 자작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두레상에 올랐지만 아무도 '밥 먹자'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된장 뚝배기에 숟가락이 부지런히 오고 갔다. 어떤 때는 동시에 여러 명의 숟가락이 된장 뚝배기에 들어가 서로 부딪치기도 했다. 그럴 때 뚝배기 안에서 숟가락으로 장난이라도 걸며 웃을 일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된장찌개를 밥에 떠 넣고 비벼 먹으니 콩닥거리던 가슴도 진정됐다. 엄마는 그날 정지간 부뚜막에서 된장찌개로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셨다.


"내가 자식 때매 살아야지, 내가 밥을 먹어야 살지." 엄마는 남은 국물을 마치 된장차처럼 홅아 마셨다. 우리도 된장 뚝배기 바닥에 있는 국물까지 말끔하게 해치웠다. 그날 밤, 이불속에 구수한 방귀냄새가 진동했다.




장터 가게 안에는 학꼬방이 있었다. 부모님은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아버지는 소주나 막걸리에 고기를 드셨고 엄마는 주로 된장찌개를 드셨다. 된장에 풋고추만 넣고 바특하게 끓였다. 아니, 된장을 지졌다. 양은 냄비를 연탄 화덕 위에 올려놓고 끓였다.


그날도 엄마가 천일관에서 아버지를 찾아내셨다. 엄마는 형사도 아닌데 아버지가 어느 술집에 있는지 알아내는 촉이 있었다. 천일관 노란 탱자 울타리 너머로 술집 아가씨들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엄마가 천일관 3호 방을 활짝 열어젖혔을 때 아버지는 술집 아가씨와 한데 엉겨 있었다. 바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가게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 얼굴을 때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버지가 엄마에게 화를 냈다.

"뭘 잘했다고 큰 소리요?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겠다."

엄마가 천 마디를 할 때 아버지는 한 마디도 못하셨다. 아버지는 엄마의 지청구를 멈추려고 손찌검을 하곤 했다. 엄마는 유성기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아버지에게 퍼부었다. 엄마가 하는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그걸 듣고 있는 아버지 부아는 부글부글 끓었다. 우는 엄마를 뒤로한 채, 아버지는 윗집으로 가셨다. 엄마는 연탄 화덕에 된장을 끓였다.


"내가 자식 때매 살아야지. 내가 살아야 자식들 공부를 시키지." 엄마는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분 같았다. 자식들 뒷바라지하시겠다고 사업을 점점 확장했다. 그걸 함께 감당할 힘이 없던 아버지는 자꾸만 술로 세월을 보냈다. 엄마가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버지는 더욱 샛길로 빠졌다. 천상 선비 같았던 아버지는 사업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엄마표 된장찌개를 끓여봤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요리법이지만 세상에 그런 칼칼한 맛이 없다.


바특하게 끓이는 된장찌개 레시피다.


- 뚝배기에 된장 한 숟갈을 넣는다.

- 청양 고추와 일반 고추를 반반 정도 다져 넣는다. (냉동실에 미리 썰어 넣어두었던 고추를 넣었다.)

- 다시 멸치를 가능한 한 많이 넣는다. (된장찌개에서 건져 먹는 멸치 맛이 그저 그만이다.)

- 마늘 찧은 것을 넣는다.

- 바글바글 끓이면 완성된다. (대파, 양파 등을 일체 넣지 않는다.)


[바특한 된장찌개가 끓고 있다.]


꼭 알아보고 싶다.


된장 속에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효소 같은 것이 있을까? 어떤 식품영양학 박사님이 한 번 연구해 보면 좋겠다. 엄마는 속이 상할 때마다 된장찌개를 끓이셨다. 엄마는 된장찌개로 밥을 드시면 다시 기운을 차리셨다. 된장 속에 상한 마음, 분한 마음, 서러운 마음, 기막힌 마음, 죽고 싶은 마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성분이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바특하게 지진 된장찌개로 밥을 먹으며 입버릇처럼 하시던 레퍼토리가 있다.


"된장을 지져 먹으면
밥이 넘어가니께,

자식 때문에 살아야 하니께,

살려면 먹어야 하니께."



아주 오랜만에, 엄마를 뵈러 진주에 간다. 진주라 천리 길, 쉽게 엄마를 뵐 엄두를 못 냈다. 된장찌개 하나로 만족하셨던 엄마께 굴비 정식 한 상을 차려드리고 싶으나 이미 글렀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는 간편식으로 한 끼 한 끼 때울 게 뻔하다. 바특한 그 된장찌개라도 끓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굴비 정식 ⓒAI]


엄마께 제대로 된 밥상
한 번
차려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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