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벤더(Lavender: 우아하고 신비로운 보라색)
오빠는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튿날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노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바이브레이션을 한껏 넣어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불렀다. 어머니는 오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 오빠가 남강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고, 누구한테 잡혀갔을 수도 있는데...
나는 잔뜩 겁에 질려서 집안사람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때였다. ‘진교 새댁’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오징어 껍질 좀 벗겨줄래? 같이 벗기자.”
진교 새댁은 내 맘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그 따위 오징어 껍질이나 벗기게 생겼느냐고?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데...
진교 새댁은 부엌쪽으로 돌아가는 일층 들머리 첫 방에 살았다. 진교 새댁에게 오는 남자는 육십을 바라볼 정도여서 진교 새댁에게 아버지 뻘이었다.
그날은 진교 새댁이 하는 얘기를 길게 들었다.
“끝순이 아부지는 물오징어 볶음만 있으믄 다른 반찬 필요 없어. 끝순이 아부지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 했어. 나도 끝순이 아부지가 젤 좋아. 끝순이 아부지랑 무인도로 도망가서 살고 싶어. 아주 날마다 둘이 마주 보며 사랑만 하고 싶어.”
진교 새댁은 그 남자를 ‘끝순이 아부지’라고 불렀다. 끝순이는 진교 새댁의 친구다. 진교 새댁이 끝순이 집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단칸방이라 그 집 식구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끝순이 아버지가 자다가 그녀를 슬슬 어루만져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끝순이 어머니한테 발각되어 그녀는 머리채를 잡히고 욕도 많이 얻어먹었단다. 그러자 끝순이 아버지는 그녀랑 지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끝순이 아버지가 진교 새댁에게 들르는 날이면,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진교 새댁은 오징어 요리를 하느라 바빴다. 오징어 볶음을 담은 큰 접시를 상에 올리고 새댁은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둘이 장난을 치는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다투는 소리도 들렸다. 그것도 잠깐이고 이내 그 방에 불이 꺼지고 새댁의 앓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아이고, 누구 하나 홍콩 갔나 보네, 그 집 참 요란스럽네. 하기사 비린내 나는 영계를 만났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겠지.” 어머니가 그 소리가 들리면 괜스레 부엌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구시렁댔다.
미정 엄마는 진교 새댁만 만나면 속닥거리며 무엇인가를 자주 물어보았다. 끝순이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이면 진교 새댁보다 미정 엄마가 더 바쁜 눈치였다. 미정 엄마는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뽀득뽀득 세수도 했다. 그리고 곧장 침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큰 어머니는 미정 엄마의 등을 향하여 욕을 해댔다.
“어이구 젊은것들이 쌍으로 용천하네.”
미정 엄마는 큰 어머니가 비아냥거려도 생글생글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가 집을 나간 지 두 번째 밤이 되어도 아무도 오빠를 찾지 않았다.
오빠를
찾으러 나갈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그런데 오빠는 어디로 갔을까?
▲ 대문 파스텔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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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_찾아야_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