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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았다. 게다가 13년 전, 대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내미가 자전거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여 지금까지 세미 코마 상태로 병상에 있다. 그러니 그동안 우리 부부는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더군다나 음력 생일이라 굳이 양력으로 챙겨 보는 것조차 성가셨다. 아들을 돌보며 사는 데 정신없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지난해 나는 교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편의 생일을 꼭 기억해 두었다가 팥 찹쌀밥에 미역국을 끓여 거하게 한 상 차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아무튼 음력 구월 열여드렛날 남편 생일을 양력으로 확인하여 알람 설정을 해두었다. 그리고 선물을 하나 준비할 작정이었다.
바로, 남편의 여름 잠옷 바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일전에 지인이 인견 원단 천을 건네주며 혹시 필요하면 쓰라고 했다. 그래서 그 천으로 남편의 잠옷 바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인견 여름 잠옷 바지를 몇 년째 입어보니 좋아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냥 사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원단 천이 있는 김에 한번 옷 만들기에 도전해 보고도 싶었다.
코로나에 걸렸던 동료 교사 수업 보강을 했더니 여름 잠옷 바지를 선물로 받았다. 누가 이런 걸 입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고무줄 반바지였다. 그런데 숨 막히게 더웠던 올해 여름, 그게 아주 그저 그만이었다.
나는 재봉에 대해 모른다. 아들을 13년째 병상에 눕혀 놓고 보니 매일 바느질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일단 가정용 재봉틀을 한 대 샀다. 미싱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으니 느낌으로 시작한 재봉, 지금도 직진 박음질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미싱 바느질을 무던히 많이 했다. 브런치 플랫폼에 탑재된 '실용신안을 뺨칠 간병 물품 프레이드'라는 글에 그 세세한 바느질 여정이 나온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가 했던 말이다. 나는 "하루라도 바느질하지 않으면 손바닥이 간지럽다"라고 종종 말한다. 내가 바느질했던 실의 길이는 지구를 한 바퀴쯤은 휘감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나는 바느질쟁이가 아니다. 미싱을 배운 적이 없으므로 요령껏 직진으로 운전하듯이 앞으로만 박음질할 뿐이다. 손바느질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가져온 글)
야심작으로 남편 잠옷 바지를 만들려고 유튜브를 통하여 재단과 바느질에 대해 알아봤다. 유튜브를 보며 달력 종이로 견본을 만들고 그 샘플을 신문지 위에 놓고 본을 떴다. 그리고 신문지를 침핀으로 꽂아 보며 옷 형태가 되는지 연습해 봤다. 밤마다 종이와 신문지로 잠옷 바지 만드는 연습을 했다.
드디어 연습이 끝나고 바지 만들기 실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허리 고무줄을 박는 과정에서 재봉틀이 뻑뻑했다. 핸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6~7년을 족히 사용했지만, 미싱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 급한 대로 AI에게 물어봤다. AI가 고장 원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AI가 알려주는 서비스 센터에 연락했다. 그런데 본사는 집에서 너무 먼 곳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천 서구에 있는 재봉틀 수리센터를 안내받았다. 파손의 우려가 있어서 직접 들고 가기로 했다. 거기까지 택시비는 2만 원이었다. 기사가 현장에 없어서 미싱을 맡겨두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비가 또 2만 원이었다.
마침내 미싱 수리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가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수리 센터 근처 지하철역까지 전철을 이용한 후에 택시를 탔다. 그렇게 하니 6,500원이 들었다. 게다가 미싱 수리비가 5만 원이었다. 다시 수리된 미싱을 들고 돌아오며 탔던 택시비 역시 2만 원이었으니, 남편의 생일 선물비로 거금 11만 6,500원을 지출한 셈이다.
내 인생 최초로 만들어본 재봉으로 만든 잠옷 바지, 한낱 고무줄 바지라곤 하지만 내가 만들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걸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아들 때문에 고생 많은 남편이
내년 여름부터는
시원한 잠옷 바지를 입을 수 있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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