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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May 16. 2023

부상의 딜레마

D-173 달림이에게 부상이란...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한창 재미가 붙었을 때, 유튜브며 블로그며 샅샅이 핥으며 정보를 수집하던 그때, 부상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부상은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라던가, 그래서 신발이 중요한 거라던가, 미리미리 테이핑 하는 방법을 배워둬야 한다던가...

대회를 앞두고 중대 부상을 입어 몇 달간 훈련한 대회를 기권해야 했던 애절하기 그지없는 사연에 함께 울기도 했던가....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평균 3번, 아무리 못해도 두 번 이상씩 꾸준히 달려온 나에게 의외로(?) 부상이라는 재해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올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 중 하나인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을 2주 앞두고 부상이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씨게.




다쳤다 싶으면
뛰지 마세요


모든 달리기 관련 콘텐츠들이 누누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친 것 같다, 아프다 하는 느낌이 들면 달리기를 쉬고 완전히 나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라. 너무나 간단한 얘기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좀 아프다고 안 뛸 사람이라면 부상을 입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달리기에서 말하는 부상이라는 것은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말하는 부상과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혀서 뼈가 부러진다거나, 기묘한 자세로 넘어지면서 인대를 접질린다거나, 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찰과상을 입는다거나... 그런 일은 러너에게는 (적어도 장거리 러너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달리기에서 말하는 부상은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해 생기는 부상이 대부분이라서, 예를 들면 피로골절.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달려오는 차에 부딪힌 것도 아닌데 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말처럼 잘잘한 발재간으로 하루에 10km 20km를 쪼개다 보면 몇만 보는 기본. 그러다 보면 뼈도 부러진다 하는 전설의 피로골절 되시겠다.



비슷한 방법으로 인대도 여럿 해 먹을 수 있다. 러너에게 가장 흔한 인대 문제라면 발목이 아픈 아킬레스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는 종아리로 하는 운동이기에, 종아리 근육이 가장 먼저 발달한다. 이 근육이 힘이 너무 세지다 보니 평상시 아킬레스건에 지속적인 텐션을 주어서... 역시 낙숫물 전법으로 아킬레스건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긴다.

아킬레스건과 쌍두마차를 이루는 인대 부상으로 장경인대가 있다. 골반부터 무릎까지 다리 바깥쪽에 위치한 이 장경인대는 무릎을 구부릴 때 사용되는 인대라서 하루에 수만 보씩 스텝을 쪼개고 있노라면 양쪽 장경인대도 하루에 수만 번, 구부릴 때 한번 펼 때 한번 두 배의 부담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반복동작에 의한 부상의 위험성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온다는 점이다. 내가 축구를 하다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질렸다면 내가 다쳤다는 것을 그 순간 알기 마련이다. 하지만 러너의 부상은 가랑비처럼 오는 거라서 내가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고, 지금 이미 부상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르고, 통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다쳤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그땐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다쳤다 싶으면 뛰지 마세요"가 얼마나 부질없느냔 말이다.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는데....




아프니까 달린다
달리니까 아프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러너들이 크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발목이나 무릎이 아프면 자기가 피로골절 또는 연골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피로골절이나 연골부상은 10km 20km 뛰어서 오는 게 아니다. 안 하던 운동을 했으니 어딘가가 아픈 것은 당연한 일. 굳었던 몸이 풀리면서 오는 근육통을 엄청난 부상이라고 오해하고 지레 겁먹어 달리기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케이스를 정말 많이 봤다.



이것이 달리기로 인한 진정한 "부상"인지, 단순히 사나흘 쉬면 낫는 "피로"인지 구분하는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

바로 사나흘을 쉬는 것이다. 말장난하냐고? 천만에.



반복동작에 의한 피로 부상을 입을 정도의 러너라면 사나흘을 쉬지 못한다. 이미 그 정도로 달리기에 중독이 되었기 때문에 부상도 입는 것이다. 내가 좀 아픈 것 같으니 사나흘 (더 강력하게는 일주일정도) 달리기를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러지 뭐~" 하고 쉴 수 있는 러너라면 애초에 부상을 입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러너를 쉬게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일단 이틀정도는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다. 장거리를 뛰고 나면 이틀은 쉬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미 경험해 본 바다. 삼일째에 불안감이 조금씩 온다. 그리고 뭔가 소화도 안되는 것 같고 몸이 찌뿌둥하고 불편하다. 사일째가 되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가서 '조금만' 달려보겠다고 한다. 어쩌면 부상이 아닐 수도 있잖아? 사나흘 쉬었으니 괜찮아졌을 수도 있어.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달리러 나가 보면 의외로 또 웬만큼 달려지는 것이다. 조금은 통증이 있지만 달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또 폭주를 하고 나면 무릎이며 발목이며 퉁퉁 붓거나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집에 돌아오고 이 패턴을 반복한다. 이게 바로 골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혹시 오늘은 괜찮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달리러 나가는 것. 그 정도로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에게 부상은 찾아온다.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입었을 경우엔 저 조급함이 몇 배로 크게 다가온다. 나는 대회를 2주 앞두고 무릎 바깥쪽에 통증이 느껴지는 장경인대 부상을 입었다. 그때 과감히 일주일간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고 회복에 집중했다면 어느 정도 나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대회 4일 전이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오늘은 조금 괜찮을지도 몰라. 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오래 쉴 수는 없어' 하는 생각에 달리기를 두 번 했다. 그리고 그 두 번의 달리기는 부상을 확인사살 했을 뿐,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쳤으면
쉬세요


이 쉬운 말을 왜 실천을 못 할까. 달리기는 고되고 힘든 노동이고, 포근한 이불속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러다 더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쉬라고 한다면 "에이~~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말은 아쉬워하고 있지만 광대가 승천하는 얼굴로 늦잠도 자고 좋을 것 같은데 왜 이걸 못할까.



좀 다친 것  같으니 완전히 나을 때까지 충분히 쉬어야겠다. 이 말을 칼같이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찐 레알 고수의 영역임에 틀림없다.

고수가 되기엔 아직 한참 먼 나는, 대회를 4일 앞두고 또다시 짱구를 굴려본다.



신발을 바꾸면 괜찮을 수도 있어.

테이핑을 촘촘히 하고 뛰면 괜찮을 수도 있어.

긴바지를 입으면 괜찮을 수도 있어.....



괜찮은지 오늘 한번 뛰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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