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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l 20. 2024

디즈니 마라톤위크 2024 하프마라톤

별별 마라톤

달리기를 시작하고 마라톤에 눈을 뜨면서 눈에서 콩꺼풀이 하나 벗겨져 나간것마냥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달리기쟁이들이 있고, 이런 신박한 달리기 아이템들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나 많은 대회가 있다는것이 말 그대로 "신세계"를 보는 듯 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정말 신박했던 대회가 있었으니 바로 디즈니월드 마라톤이다. 그리고 우연한(어쩌면 운명적인) 기회로 그 대회를 뛰었으니 이제 그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디즈니의 고향인 미국에는 [본점]에 해당하는 디즈니 월드가 플로리다에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있는 [분점] 중 하나인 디즈니랜드가 캘리포니아에 하나 있다. 캘리포니아 디즈니월드도 턱이 빠지게 큰 규모라고 하던데, 본점인 월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테마파크가 4개, 워터파크가 2개. 그리고 가까운곳에 유니버설스튜디오도 있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이 넓은 부지를 활용해 디즈니월드가 주최하는 마라톤이 있는데 여러가지 테마로 일년에 몇번 치르지만 그 중에서도 5k, 10k, 10마일, 하프마라톤, 그리고 풀 마라톤이 연일 이어지는 1월 첫째주를 디즈니 마라톤위크라고 해서 가장 성대하게 치른다. 대회 참가신청은 선착순이고 전 해의 5월정도에 참가신청이 열린다.

이 마라톤위크의 하프마라톤을 2명분! 접수에 성공해버리고 말았다.



인생 첫 하프마라톤 도전인 내 친구는 뉴욕 여행을 겸해 한국에서부터 날아왔다. 나는 11월에 풀마라톤을 뛴 후라 따로 훈련을 하진 못했지만 친구의 첫 하프마라톤을 페이싱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체력유지를 해가며 1월을 기다렸다.




엑스포


뭐니뭐니해도 미국 마라톤 대회의 꽃은 엑스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배번과 기념티셔츠를 수령하고 다른 러너들과 만날 기회도 생긴다. 주최측이 준비해주는 여러가지 이벤트도 쏠쏠한 엑스포는 올랜도에 있는 ESPN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열렸다.


ESPN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열린 디즈니 마라톤 위크 엑스포

배번은 반드시 여기서 받아야하기 때문에 대회 하루전날 아침 이른 비행기로 올랜도로 향했다. 미국 국내선은 연착이 많기 때문에 까딱했다간 엑스포가 끝나는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총알같이 공항으로 달렸지만 보안검색이 말도못하게 느려서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 뻔 했다. 그날 공항에서 뛴게 아마도 최고 페이스였지 싶다.




엑스포장 곳곳에 포토존이 있다.

수령한 배번에 출발그룹이 무려 A!!!

생전 처음 받아보는 A 배번이었다. 참가신청때 예상 피니쉬시간을 입력하게 되어있는데, 예상 피니쉬 시간이 하프 기준으로 2시간 15분 이내면 기록 인증을 보내야한다. 나는 뉴욕에서 뛴 대회의 기록이 많기 때문에 그걸로 보냈는데 A를 배정받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뉴욕에서는 E그룹정도 되는 속도지만 아무래도 디즈니 마라톤은 시간에 목숨걸고 뛰는 대회는 아닌데다가, 일주일 내내 순서대로 열리는 5k, 10k, 10마일, 하프, 풀을 다 뛰는 러너들도 많기 때문에 속도 경쟁이 느슨한 편이다. 막상 대회를 뛰어보니 코스 곳곳에 디즈니 캐스트들이 나와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있어서 거기에서 한번 멈췄다가 사진을 찍고 다시 뛰는 식으로 해야해서 전반적으로 기록이 늦어진다. 물론 달리기에만 집중하는 러너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디즈니 마라톤은 코스와 분위기, 이벤트를 즐기는 축제성에 더 중점을 두는 느낌이었다.



 

엑스포의 꽃 중의 꽃 굿즈 매장

엑스포는 협찬사들이 나와서 스포츠젤이나 선글라스, 머리에 다는 장식품이나 치마같은것을 마지막으로 구매할 기회이기도 하지만 공식 굿즈 판매장이 역시나 디즈니답게 엄청났다. 옷과 가방 물통, 차에 붙이는 스티커 등등 별별것이 많았지만 디즈니답게 굉장히 비싸서 작은 뱃지 두개를 샀다. 이 뱃지는 다음날 하프를 완주하면 받을 메달의 미니어처였는데 정말 귀엽다.




하프마라톤 코스
그리고 기상이변....


(왼쪽) 디즈니월드 하프마라톤 코스 / (오른쪽) 기상이변으로 축소된 코스

하프마라톤 코스는 디즈니의 4개 파크 중 하나인 엡콧에서 시작해서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디즈니 전용)를 따라 매직킹덤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엡콧 안을 돌고 나오면 끝나는 루트였다. 어디까지나 "였다"



왜냐면 대회 당일날 아침 8시에 뇌우가 예상되는 바람에 주최측이 대회 전날 밤에 황급히 코스를 12km로 줄였기 때문이다. 대회를 빨리 끝내고 모든 참가자가 8시 전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5시 시작 예정이었던 대회를 4시에 시작하고(!!!) 코스를 반정도로 줄이면서 매직킹덤이 아예 빠져버렸다. 이것 때문에 참가자들의 불만이 폭주했지만 참가신청때 동의해야 하는 서류에 이런 사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역시 소송의 나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디즈니월드가 있는 플로리다는 원래 겨울철에 태풍이 많이 오는것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그렇다고 하프마라톤을 다시 반동강내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게 있었던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내 뉴욕 달리기 친구들은 "니가 사상 최초 디즈니 쿼터마라톤 완주자구나!" 라고 놀리기도 한다. 어쨌든 안전은 중요하고, 정말 양옆으로 풀밭 말곤 아~~~무것도 없는 고속도로를 뛰어야하는 대회이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위험하긴 했다.



이 대회를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무려 한국에서부터(!!) 날아온 친구 생각을 하면 내가 다 속이 뒤집어지는데 막상 친구는 거리가 줄어들었다고 좋아했다. ;;;





내 메달 사수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뛰어보자!! 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또 하나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디즈니 캐릭터가 새겨진 이 메달이 희소가치가 있어서 이베이에서 거래되기도 하고, 일부 참가자들이 위조배번(?)으로 참가해 메달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피니쉬라인 스태프는 배번을 달고 뛰어들어오는 사람에게 하나씩 메달을 나눠주기만 하는거라서 그게 정말로 칩이 내장된 진짜 배번인지 칼라복사된 위조배번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메달이 부족해지는 말도안되는 상황이 발생해 뒤쪽에서 피니쉬하는 러너는 메달을 아예 못받는 경우가 종종, 아주 종종!!! 일어난다는 것.



아니 지금 한국에서부터 비행기타고 뉴욕 경유해서 여기 왔는데!

거리가 줄어들어서 하프가 하프가 아닌것도 열받는데 까딱했다간 메달 없이 돌아갈수도 있다고!!!!????!!!



거리가 줄어들은건 "오히려 좋아" 하던 친구도 메달 없이 귀국은 못한다며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함께 모든 코스를 뛰어 완주하려던 원래의 계획을 변경해 A그룹에서 빨리 출발하는 나는 먼저 가서 메달을 받고, 만에 하나라도 친구가 피니쉬할때 메달이 모자라서 못받게 된다면 내것을 가지고가는것으로. 메달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면 나중에라도 새로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내줄테니 나는 그것을 받으면 되는거였다.

(그리고 사실 12km만 뛰고 하프 메달을 받고싶지도 않았다)





사상최초
디즈니 쿼터마라톤


그래서 본의아니게(?) 딱히 훈련도 하지 않은 대회를, 그리고 한번도 뛰어본적 없는 7.1마일이라는 이상한 거리의 대회를, 한번 진심으로 뛰어보기로 하고 출발선에 섰다.



뉴욕에서는 코트를 입고 왔지만 플로리다는 정말 더웠다. 이 대회를 뛰어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정말 덥다"는 말을 연발했었다. 새벽 5시에 시작하는데도 그렇다. (이날은 4시에 시작)



이 디즈니 마라톤이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입장자가 들어오기 전에 달리기 대회를 끝내기 위해서다. 코스는 고속도로가 대부분인것처럼 보이지만 파크 내부도 뛰게 되어있는데 해가 뜨기 전 일반 입장자가 없는 디즈니월드를 뛰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나는 디즈니월드를 전에 가본적이 있는데 깜깜한 새벽에 라이트업된 엡콧을 뛰는 기분은 낮에 입장했을때와는 전혀 다른 정말 특별하고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원래는 코스에 포함되었던 매직킹덤이 빠진것이 애석하고 속상했다.



고속도로 구간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기후가 따뜻한 플로리다다보니 고속도로 양옆으로는 잔디밭이고 가로수도 야자수였기 때문에, 내 눈에는 이것도 테마파크 같았다.



달리면서 코스에서 보니 더더욱 "각잡고 뛰는 대회가 아니라 모두가 즐기는 대회"라는 느낌이 강했다. 캐스트와 사진을 찍는 포토존에는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였는데,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것도 개의치않고 모두가 즐거운 얼굴로 사진을 찍고 다시 뛰고 했다. 그래서 원래 사진에 찍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진을 다 패스하고 쭉 뛴 나는 무려 연령그룹 50위권이라는 놀라운 기록이 나왔다.



고저차도 딱히 없고 고속도로 크로바턴 구간만 오르막이 조금 있는 정도라서 코스도 쉬웠다. 출발했던 엡콧으로 돌아와 파크 내를 한바퀴 뛰고 피니쉬 후 메달을 야무지게 챙기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을 동반한 폭우라고 대회까지 축소하더니 부슬비야?? 하며 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뺑뺑이를 돌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프 거리를 다 채울때까지 뛰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나도 같이 뛸까 하다가 이미 메달도 받았고 간식도 받은 상태라 뭘 들고 뛰기도 싫고 귀찮아서 그냥 주차장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디즈니 마라톤 간식팩

완주 후에는 메달을 주고, 작은 스포츠 수건같은것도 하나 받았다. 근데 나중에 들어온 친구 말로는 자기가 들어올땐 없었다고 하는걸 보니 수량이 적었나보다.

그리고 이런 간식팩을 주는데 따로 바나나도 받았다.



달리기 대회를 뉴욕에서만 뛴 나는 완주 후에 받는 과일은 사과, 탄수화물은 베이글, 그리고 음료는 게토레이가 거의 공식인데 모든게 생소하고 신기했다. 뉴욕주는 사과 특산지이기 때문에 사과를 주는거라고들 했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귤이나 오렌지를 받을거라고 기대했는데 바나나였고, 음료는 파워에이드였다.

비행기값, 숙소값, 거기에 하프마라톤 참가비(거의 한 30만원 했던것 같다)까지 내고 거 참 비싼 아침식사네 하며 먹다보니 빗발이 굵어졌다. 친구가 피니쉬할때쯤엔 정말로 "폭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쏟아져서 '안전을 위해 코스 단축'이라는 말도 어느정도 이해를 해주기로...



그리고 우버를 기다리는 사이에 정말 비가 쏟아붓고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천둥 번개도 요란했으니... 사상최초 디즈니 하프 하프 마라톤. 이정도면 그만 억울해하고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요 근래에 갑자기 생각나서 지금까지 하프마라톤을 몇번 뛰었나 메달을 세어보니 7개였다.

메달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가 아차! 디즈니를 빼먹었네 ^^;; 하고 다시 찍으니 8개였다.

아무래도 하프마라톤이라는 거리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잊게되는것 같다. 물론 디즈니 파크를 새벽에 뛰는 경험은 훌륭했다. 스타트라인도 피니쉬라인도 너무 예쁘고 출발할땐 불꽃도 쏘아줬다. 하지만 하프마라톤 특유의, 18km 이후의 그 "너무 힘든데 그렇다고 못할만큼 힘든것은 아닌" 그 느낌을 맛보지 않은 대회라서 기억에 각인되지 않은것은 사실이다.



내가 거의 구호처럼 "평생에 한번은 뉴욕 마라톤을 뛰자"고 외치고 다니지만

디즈니마라톤도 평생에 한번은 꼭 뛰어볼만한 대회로 추천하고싶다. 언젠가 풀코스를 뛰러 다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나도 거리와 속도의 욕심을 내려놓고 즐겁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더더욱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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