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선택의 사소한 디테일

by 설인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이니 적당히 깔끔하면서 가성비 좋은 곳이면 돼.”라고 말했던 숙소 선택 기준이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두리뭉실 애매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흘을 지낸 후,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로 갔다.


우수아이아는 관광지라 숙박비가 비싸기도 하고 여행기에서 본 대로 다국적 배낭여행자들과 여행정보를 교환하며 어울려보는 경험도 하고 싶어 다인실 호스텔을 예약했다. 리뷰가 몇 개 안 되었지만 모두 칭찬 일색에 평점이 아주 높은 숙소라 망설임 없이 3박을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 9개월 여행에서 가장 최악의 숙소였다.


웬일인지 GPS를 사용하지 않는 공항 택시 기사는 우리가 내민 숙소 주소를 한참 들여다보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물어본 후에야 출발했다. 택시는 중심가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4킬로미터 정도 더 달려 어느 외딴 3층짜리 시골집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나중에 얻은 정보에 따르면, 여기 숙박객들은 외출하기 위해서 30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시내까지 걸어 다닌단다. 씩씩하고 건강한 청년 배낭여행자들처럼 찬바람 맞으며 걸어 다닐만한 체력도 그럴 마음도 없는 데다, 흙먼지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추운 도로가에서 정해진 시간 맞춰 올리 만무한 버스를 기다릴 엄두도 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택시를 이용했다. 오갈 때의 택시비를 기본으로 추가하니 숙박비는 저렴한 게 아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설 때,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흙마당에서 뛰어놀던 덩치 큰 개들이 열린 현관문 사이로 따라 들어오더니, 거실과 주방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름때 잔뜩 낀 너저분한 주방...

'요리는 물 건너갔구나...' 바로 체념하기!


묵게 된 방은 이층 침대 2개가 놓여 있는 4인실인데, 침대 2개만으로 방이 꽉 차서 짐을 풀고 몸을 이리저리 가눌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이 방 안에서는 직립보행을 시도할 수 없다. 얇은 천이 패드로 깔려있는 매트리스,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색 바랜 이불을 보며 베드버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춥다... 비상용으로 한국서 가져온 침낭을 처음으로 꺼냈다.


다른 손님이 없어 이층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각자 1층에 누웠다. 얼굴 바로 위에 침대가 얹혀 있으니 갑갑하다. 사람이 없는데도 위 침대에서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진다.


커튼인 척하고 싶어 하는 연두색 나일론 천 쪼가리 사이로, 이 숙소의 자랑인 빙하를 머리에 인 우수아이아의 설산이 보였다. 급격히 다운된 마음에 풍경이 들어올 리 없다.


공용 화장실 겸 샤워실은 아래층에 있다. 동양인 중에서도 체격이 작은 내가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 양손만 집어넣어도 꽉 차는 장난감 같은 미니 세면대는,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셀프 청소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는 필요할 때 화장실을 곧바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옷을 챙겨 입고 계단을 내려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면 대부분 안에 사람이 있다. 허탕치고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두세 번 반복해야 한다. 남자 숙박객이 대부분이라 남편의 불편함은 배가 되었다.


화장실 이슈가 있는 데다, 두통과 감기기운이 덮쳐 와 입맛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저녁을 먹지 않기로 했다. 밤늦게 배고픈 남편 혼자 젊은 여행객들로 왁자지껄한 소란한 주방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왔다.


내가 고른 숙소라 미안한 마음에 입을 닫아걸었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20여 개의 리뷰에서 언급한 따뜻하고 정 많은 호스트 부부, 얼리체크인, 환상적인 숙소 전망, 매일 밤 다양한 국적의 배낭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는 분명 이 숙소의 장점이다. 하지만, 여행자를 위한 기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제 기능을 못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다음 날 아침, 남편이 5번쯤 화장실 입장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남은 2박 숙박비 날려버리고 서둘러 여기를 떠나자!


폭풍검색으로 당일 특가할인이 뜬 센트로 근처 숙소를 예약했다. 빛의 속도로 짐을 싸서 나왔다.



숙소 위치

- 먼저, 어느 동네가 안전한지 정보를 구한다.

- 도시의 첫 숙소는 센트로나 중심 광장 근처에 구한다. 환전, ATM, 웨스턴유니언, 쇼핑, 세탁, 식당, 맥도널드, 스타벅스, 관광지까지 가는 대중교통 등의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고 도시 분위기도 익힐 수 있다. 단, 밤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외출을 자제한다.

- 두 번째 숙소는 근처에 마트가 있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안전한 동네에 구해도 좋다.


침실과 욕실, 주방 체크리스트

- 다인실의 경우, 이 층침대가 싫다면 싱글침대로 구성된 도미토리실을 찾아본다. 2인이라면 2인 전용실 숙박비와 별 차이가 안 날 수도 있다.

- 침대 사이즈, 매트리스와 침구류 상태, 창문 유무, 와이파이 속도를 확인한다. 와이파이 속도가 느리면 온라인 결재 등에 차질이 생긴다.

- 남미 숙소는 난방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히터나 온풍기가 있는지 확인한다.

- 공용욕실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경우, 사용의 불편함이 없는지 사진 및 리뷰를 통해 꼼꼼하게 체크한다.

- 샤워기 수압, 욕조 유무, 욕실 어메니티 종류를 체크한다.

- 주방이 있는 숙소는 공용주방인지, 전용주방인지 확인한 후 쿡탑, 싱크대, 조리도구, 양념류, 주방식기류, 전자레인지, 냉장고 유무를 점검한다. 개인실 간이주방인 경우, 전자레인지와 미니냉장고만 있어서 요리를 못할 수 있다.

- 테라스가 딸린 방은 손빨래해서 건조하기에 좋다.


평점과 리뷰의 중요성

- 리뷰 수가 많으며 평점이 높은 숙소를 선택한다. 단, 이런 곳은 빨리 판매되니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 숙박 앱과 구글의 평점 및 리뷰를 모두 고려한다. 구글리뷰가 좀 더 솔직하게 작성된 경우가 많다.

- 숙소 기대치나 선택 기준이 비슷한 한국인이 작성한 리뷰를 적극 참고한다.

- 부정적인 리뷰에 주목한다. 완곡하게 표현된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유추해 본다. 소음이 심하다, 방음상태가 안 좋다, 지저분하다, 냄새가 난다, 춥다는 상황들이 실제 가보면 훨씬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예민한 포인트와 관련된 리뷰를 꼼꼼하게 읽어본다.

- 평점이 80점 이상이면 기본은 한다.




돈이 많아서 여행 내내 5성급 호텔이나 고급 리조트에서 지낸다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팁들이다.


가성비와 컨디션 모두 무난한 숙소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면, 벌러덩 누워서 젊을 때 돈 좀 많이 벌어놓을 걸 하고 한탄할 때도 있었지만,


각양각색의 숙소를 경험하며,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현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일은 흥미 있었다. 뜻하지 않게 생겨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여행을 더욱 알록달록 다채롭고 풍성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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