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남미 여행을 계획하며 준비한 경비는 3천만 원이다. 여행을 위해 각자 모아 온 돈과 한국에 있더라도 매달 쓰는 생활비를 여행비에 투입하면 마련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여행 기간은?
돈 떨어지면 돌아오기!
남들은 3개월을 예상했고 나는 5개월을 희망했다. 총무를 맡은 남편은 남미여행 국민루트라던가,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 일정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그보다 더 길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국, 남편의 말 대로 되었다. ‘돈은 항상 계획했던 것보다 더 쓰기 마련이다’라는 내 생각이 기분 좋게 빗나갔다.
남미의 착한 물가와 총무의 활약 덕분에 예상보다 여행경비가 적게 나갔다.
잔고에 따라 여행기간이 늘어나니,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대체로 절약하며 지냈다. 돌발 변수 없이 대부분의 지출을 마음먹은 대로 통제할 수 있었으니 운도 좋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해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멕시코로 올라간 여행은 5개월을 가뿐히 넘기고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페루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콜롬비아까지 꼭 가보고 끝내자 했고, 멕시코로 가면서는 이렇게 온 김에 미시간 사는 딸네 집에 들렀다 미국과 캐나다 동부여행을 하자고 결정했다.
중남미 물가와는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지는 미국 캐나다 여행생활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7개월 가까이 유지되던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다른 용도로 가지고 있던 비상금을 긴급 투입하여 여행을 마무리했다.
9개월간의 여행을 모두 마친 후 결산해 보니 둘이서 4,300만 원을 지출했다. 여행의 경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한국에서 9개월 동안 쓰는 생활비를 감안한다면 합리적인 지출이었다고 자평해 본다.
생업에서 은퇴한 시간부자라서 여행경비가 많이 절약되었다.
항공권 저렴한 날짜에 맞춰 이동하고, 주말이라 가격대가 올라가는 지출항목은 주중으로 돌리고, 물가 싸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둘 다 투어 체질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고 투어 말고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투어를 신청했으며, 관광객을 봉으로 아는 납득 안 가는 고가의 투어는 대안을 찾아 셀프로 진행했다.
식당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뿐더러 식사 여건도 편치 않고, 남편의 혈관건강 이슈로, 여건만 되면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직접 밥을 해 먹으니 야채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고 외식비도 절감할 수 있었다.
먹고, 자고, 이동하고, 체험하고, 구경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행해지는 여행지에서의 선택들은 돈과 밀착되어 있다.
비용을 많이 지불할수록 몸과 마음이 쾌적해지고 여행의 질이 올라간다. 여행비가 두둑하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궁리하는 시간과 에너지,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
날마다 적나라한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여행자금 고갈을 최대한 늦추고 싶은 저비용 여행자는 숙소, 교통수단, 투어, 식사, 환전을 해결하기 위해 가성비 좋은 보물을 발굴하느라 검색과 시간의 품을 들이지만, 보물 찾기에 나섰다 자칫 검색 지옥에 빠지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곁가지 정보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정은 더 어려워지고 오만 잡다한 것들까지 ‘아는 것이 병'이 되어버린다.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비교의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거리와 시간, 돈을 셈하는 숫자들이 난무하며 두통을 불러일으킨다. 리뷰도 너무 많이 보고 나면 선택 장애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수많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나면 미지의 여행지는 이미 다녀온 것처럼 시들해져 버리기도 한다.
여행의 스릴과 정신 건강을 위해, 검색은 호기심과 설렘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기본 정보만 취하고 신속하게 끝내기!
이득을 본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데서 펑크가 나고, 손해 본 것 같던 일이 다른 이익을 불러오는 신비로운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나니 선택에 너무 목숨 걸 필요도 없다.
경비가 풍족할수록 여행이 편리해지는 건 사실이니 돈은 여행자에게 위력적이다.
하지만 여행의 만족도는 지극히 개인적, 주관적인 영역인 데다 돈과 여행의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으므로, 다행스럽게도 여행세상은 공평하게 느껴진다.
돈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 불러온 불편함이 예기치 못한 도전과 모험으로 이어지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생겨나니 여행이 풍성해진다.
긴장하고, 보고, 느끼고, 반응하고, 적응하고, 해결하고, 배우고 깨닫느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정신의 활기도 기분 좋았다.
절약이 궁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을 잘 대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갔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많았지만,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