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때론 아슬아슬한 30년 차 부부의 여행생활

by 설인

9개월 간에 걸친 부부 여행을 지켜본 또래 지인들이 경이로운 표정으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아니, 안 싸워?”

왜 안 싸우겠는가?


먹고 자고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는 단순한 여행에서 각자의 기호와 취향이 선명해지니, 집에서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지극히 사소하고 유치찬란한 일로도 첨예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 다름 1 : 음식의 중요도 >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항공편으로 살타(Salta)에 도착했다.


살타는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머물게 된 도시다. 아르헨티나 북부 고산지역 마을들을 거쳐 볼리비아 국경을 넘는 다소 긴장되는 여정을 앞두고, 살타에서 비자 서류 준비하며 취사 가능한 숙소를 구해 일주일 동안 쉬어가기로 했다.


숙소 체크인을 한 후, 한국 마트에 갔다. 마트에 들어 선 남편이 진간장과 고추장, 참기름, 식재료들을 집어 든다. 작은 사이즈가 없어 모두 대용량이다. 일주일만 먹을 건데...


살타 이후로는 이동이 잦고 한 달 이상 직접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일정이라 식재료들이 남으면 곤란하다. 버리는 것에 예민한 나로서는 남아 버려질 게 뻔한 물건을 사는 일이 이해되지 않는다.


“진간장과 참기름은 다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될 텐데 사지말지!”

“갈비찜 요리에 진간장과 참기름이 빠질 수 없지!”

“소금으로 간하면 안 될까? 아니, 갈비찜을 꼭 먹어야 해?”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른 물건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저지하기 위해 나는 계속 반대 의사를 표한다. 결국 남편이 버럭!


까르푸에 들러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사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요리를 시작했다.


시간의 힘으로 그 사이 마음이 누그러진 나는 짐 정리를 하며, 입 꼬리를 올리고 신이 나서 요리하는 남편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면서까지 갈비찜을 해먹을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서서히 풀린다.

‘남편한테는 저 요리가 정말 중요했구나!’


재료와 양념을 풍부하게 넣은 갈비찜이 완성되었다. 맛있다!


“거 봐. 내 말대로 하니까 이렇게 맛있게 먹잖아. 먹는 건 좀 아끼지 말자고.”

“거듭 말하지만, 돈을 아끼자는 게 아니고 남아서 버리게 될 재료들을 사지 말자는 건데?”

“그 말이 그 말이지.”

“다른 말이지..."

소통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이후, 우리의 살타 식탁은 진간장 맞춤형 메뉴들로 차려졌고 모든 요리에 참기름이 콸콸 부어졌다.

먹는 것에 진심이고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며칠 전부터 쇠고기의 나라,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전에, 갈비찜을 해 먹자고 말했었다. 구이는 부위별로 많이 먹었으니 한국마트가 있는 살타에 가면 찜을 해 먹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유튜브를 보며 요리법을 숙지하고, 구매할 식재료와 양념 목록을 리스트업 했던 모양이다.


먹는 것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손 적게 가는 메뉴로 가볍게 한 끼 해결하고 싶어 하는 나는, 그때 상황 봐서 라며 건성으로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감보다 남은 양념을 버려야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커서 다른 옵션을 선택하고 싶었던 내 의견은 존중받지 못했지만, 여행의 위안과 에너지원이 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느끼는 남편의 행복감이 우선인 게 맞다.


그의 뜻대로 한 것이 옳았다.





< 다름 2 : 의사결정의 속도 >

페루 리마(Lima)에서 2주 살기를 하다 대판 싸웠다. 커피를 드립해 먹어볼까 하고 Wong 마트에서 원두를 고르던 중이었다.


산지, 유통기한, 중량을 살펴보니 썩 내키지 않아 살까 말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이것저것 안 따지고 물건을 빨리 고르는 편인 남편이 독촉하며 신경을 긁고는 위 층 과일코너로 휙 가버린다.


물건 구매를 결정하는 속도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데!

돌발적이고 맥락 없는 공격에 분노가 치솟았다.

'다른 숙소를 구해 나가겠다'고, '각자 따로 여행하자'고 선언하며 먼저 숙소에 가있겠다고 열쇠를 달라 했다.

하지만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길치, 방향치인 나는 숙소 방향을 잘못 잡고 무턱대고 직진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1시간을 혜매다 들어가니 열쇠가 없어 못 들어가고 있던 남편은 그 사이 근처 한국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 왔다.


'비행기 표 구하는 대로 혼자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카톡 보냈는데 못 봤냐고 한다.


유심 없이, 와이파이나 남편 데이터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쓰고 있는데, 길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진심이냐고 물으니,

그럼 어떻게 하냐? 는 아리송한 답변을 하며 김밥을 내 입에 밀어 넣는다.


한국을 떠난 지 5개월째 접어들었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음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숙소 창 밖으로 어둠이 찾아오고, 몸은 지쳤고, 감정은 충분히 분출되어 맹렬하던 투지가 슬금슬금 사라져 가는 시점이었다. 풋~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우리는 또 어영부영 화해를 했다.




관계에서 누가 옳고 어떤 선택이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 다른 선택이 있을 뿐!


부부 사이에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가 쉽지 않다. 편하니까 자꾸 망각하고 선을 넘어버린다.




대체로 그럭저럭, 때론 아슬아슬한 우리 부부의 장기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 둘 다 여행을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므로, 부부이자 여행 동지로 잘 지내기 위해 갈등이 생기면 신속히 봉합하려고 노력한다.


- 실수를 탓하지 않는다. 맡은 역할을 수행하다 생긴 상대방의 실수를 언급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남편이 우버앱에 숙소 주소를 잘못 입력해 길에서 몇 시간을 허비하고 택시비가 곱절 나갈지라도, 내가 검색해서 찾아 간 관광지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이런 게 여행이지'라고 말한다.


- 때때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몇 달씩 24시간 꼬박 함께 지낸다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 가끔씩 침묵으로 거리를 만들어 본다.


- 대화할 때 말투에 유의한다. 백번 옳은 말이라도 말하는 태도나 표정, 말투에 마음 상해 심정적으로 틀어지면 설득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같은 말을 의견으로 수용할지, 잔소리로 들을 것인지는 상대방의 마음에 달려있다. (매번 잘 지키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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