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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r 08. 2024

나의 악몽에게

꿈 속의 나는 아마 조금씩 변할 것 같아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너는 나를 괴롭히려고 온 게 아니라, 나를 깨우러 온 게 아닐까. 꾹꾹 눌러온 욕망 아래로 비집고 들어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려주려고 온게 아닐까. 먹고살기 바빠서 내팽개쳐둔 상처가 곪을대로 곪아서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데 어서빨리 정신차리라고, 무기력에 삶을 졸 듯이 사는 내게 어서 깨어나라고. 이 걸 알려주려고 너는 내게 온 것 같아. 


너는 자주, 아니 대부분의 날들에 나를 어릴 적 교회로 데려가지. 12살의 내가 처음 성추행을 당한 예배당 장의자에 소환된 나는 어쩔 때는 12살, 어쩔 때는 17살, 때로는 현재의 나이기도 해. 그 예배당은 전쟁통에 나를 쫓는 무표정의 군인을 피해 찾아들어간 곳일 때도 있고, 나를 왕따시키던 아이들이 회개하는 곳일 때도 있고, 멋진 배우로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떨어진 샹들리에가 머리를 가격하는 곳일 때도 있어. 


또 너는 나를 자주 전쟁의 폭격과 화산이 폭발한 곳과 뱀이 이글거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간첩에게 쫓기게 하고 불 구덩이에 슬로우 모션으로 내 몸이 떨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벌거벗은 죄인이 되게도 하지. 


가끔은 나를 가슴 두근거리게도 만들어. 아주 멋진 남자로 다가와 없던 성욕도 만들어내고, 심장이 터질 만큼 설레게 만들어. 그 순간은 분명 스무살의 나였는데 조금씩 마음이 찜찜해지면서 '아, 나 결혼했는데. 아이도 있는데' 점점 지금 내 현실을 깨닫게 하지. 갑자기 나는 천하의 몹쓸 불륜녀가 되어버리고 더이상 이런 설렘은 없을 거란 절망감과 다른 남자를 탐했다는 죄책감과 망신당할 거라는 공포로 윽, 소리를 내며 깨게 만들어. 


너가 찾아와서 건드리는 내 무의식, 상처, 부끄러운 욕망들까지. 어지럽고 난폭하게 찾아오는 장면의 회오리 속에서 나는 늘 길을 잃다 의식을 찾고 심계항진에 고통스러워 해. 나는 무기력하게 너에게 끌려 다니다 탈진하는 종말을 매일 경험한다. 


그런데, 오늘 새벽 꿈은 달랐어. 아니 꿈은 비슷한데 꿈 속에 내가 달랐어. 너는 거대한 남자가 되어 나를 계속 쫓아왔어. 난 계속 피해서 달리고 달리다가 뒤돌아 서서 너와 마주섰다. 물론 그 순간 꿈에서 깨어 다른 저항은 하지 못했지만 분명 나는 꿈 속에서 내 선택을 했어. 너는 그 선택이 못마땅했는지 나를 현실로 데려왔지. 다시 잠에 들어 꾼 꿈에서 너는 광장에 나를 발가벗긴 채로 세웠다. 여기 저기 널려있는 내 옷을 주워담느라 혼비백산 하다가 나는 그 옷들을 다 던져버렸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는데 그만 또 꿈에서 깼다. 


난 어제부터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어. 내 아픔을 마주하려는 아주 오래된 갈망의 선택을 어제 실천했다. 아마도 내 심경의 변화가 꿈속의 나를 움직인 것 같아. 마침 다니던 병원의 주치의가 오늘 바뀌어서 의사와 약물치료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우기로 했고, 항우울제를 반으로 줄였어. 그리고 오늘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두 번째 수영 강습에 나갔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했어. 오늘은 용기내어 머리를 물에 밖고 음-파를 해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 한 팔 자유영 연습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래서 초보반 안에서도 실력이 없는 B조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제일 못하는 사람으로서 조장이 되었다. 부끄럽진 않았어. 음-파를 해낸 작은 성공은 내게 유머러스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를 주더라


너는 오늘 밤에도, 내일 새벽에도 나를 찾아오겠지. 그건 변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꿈 속에서 나는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몰라. 너는 당황에서 나를 더 큰 심계항진의 상황으로 몰고 가 발작처럼 깨게 하겠지만 어쨌든 난 변해보려해. 아주 희망차지는 않지만, 그리고 고비가 또 생겨서 나는 또 무너지겠지만. 어쩌면 이런 변화가 너가 나에게 찾아온 궁극적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오늘밤과 내일 밤의 너와 내가 앞으로 조금씩 달라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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