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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r 22. 2024

4인가족의 탈(脫)서울 유랑기

육아우울증과 코로나19에 전세사기까지,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다


서울에서 나는 인생을 너무 달리듯 살았다. 불확실한 내 존재와 사회적 위치로 나는 늘 불안했고, 그 애매함을 견디기가 힘들어 나를 써준다는 곳이라면 일단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어떤 회사나 조직,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기 어려워 소속을 얻고 나를 잃는 삶을 반복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바쁘게 일하던 와중에 결혼을 했고, 한 달이 채 안돼 임신을 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탈 서울을 꿈꿨다. '제주 1년살이를 해볼까', '치앙마이 코끼리 파크에서 발룬티어로 1년만 지내볼까', '1년간 여행을 다녀볼까'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 육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았던 터라 나는 독박 신세를 면치 못했다. 육아 우울증이 찾아왔다. 남편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존재가 확장되는 것이 보이는데 내 삶은 섬처럼 고립되고, 뒤쳐지고,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아 괴로웠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니 예전 관성이 그대로 나왔다. 뭐라도 해서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평일에는 대학원 공부 하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주말마다 상담실습을 다녔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해 자격증을 땄다.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한 장면


그즈음 아이는 부쩍 등원을 힘들어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분리불안이 생겼다. 자다 깨면 "엄마, 어디 혼자 가지 마." "엄마가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줄 알고 너무 무서웠어"라는 말을 했다. 환절기라 많이 아프기도 했다. 나도 나대로 지치고 예민해지다 보니 남편에게도 살갑지 못했다. 미안한 일들만 가득한 나날들이 나를 버겁게 했다. 육아, 일, 학업 삼박자에 치여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대출영끌해서 살게 된 집이 전세사기를 당했다. 뉴스에도 연일 보도되었던 유명한 ‘화곡동 전세사기’. 오래된 빌라 건물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서울 변두리 산동네, 빛 한줄기 제대로 들지 않아 장마 때마다 곰팡이가 득실거리던 10평 남짓의 다세대 빌라였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서울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 준 보금자리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도 터졌다. 첫째의 가정보육과 집콕 생활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뱃속에 또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난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와 에너지 뿜뿜인 여섯 살 아이가 작은 집에 콕 박혀 24시간을 같이, 기약 없이 지내야 하는 건 너무 고된 일이었다.



얼른 도망쳐! 서울에선 글렀어!


마음 한 구석에 귀농, 귀촌, 슬로라이프 같은 꿈들이 있었지만 그런 삶은 한 10년 뒤의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현실은 서울에서 버티는 것. 사기당한 집에서 6년을 버티고 싸웠다. 집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니 무의식에 눌러놨던 탈 서울에 대한 욕망이 몸 밖으로 솟구쳐 나와 ‘실행력’이 되었다. 우리는 시모부님 계신 김천으로 도망치듯 ‘급’ 떠났다.


첫째 아이 여섯 살에 탈 서울 후 경북 김천에서 2년 동안 살았다. 그곳에서 둘째도 출산하고, 오랜만에 직장생활도 했다.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까 남편과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는 처음 서울을 떠날 때 품었던 마음들이 어느새 희미해져 있음을 발견했다. 용기 내어 그 마음을 마주했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 좀 더 지구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 단순하게 살 것, (대출, 부모님의 도움 등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것, 공동체를 이룰 것.

당장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는 없지만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오래전에 가족 소유로 지었던 고성의 작은 시골집이 방치되어 있었고, 팔지 못할 바에야 우리가 잘 고쳐서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긴 시간 동안 낡고 고장 난 집의 여러 부분들을 보수하고 너른 마당에서 어떤 일을 꾸릴지 즐거우면서도 두려운 상상들을 하며, 그것을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22년 2월 20일. 드디어 고성으로 오다.


이사 전날 강원도에 많은 눈이 내렸다. 설악산이 눈으로 덮인 사진을 볼 때만 해도 '우리가 저런 풍경을 보면서 살 수 있단 말이야?' 하며 설레는 맘이 가득했다. 그 환상은 이삿짐 차량이 들어오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집이 방치되어 있는 동안 토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밤새 내린 눈이 녹아 장화를 신은 발이 무릎까지 푹 꺼질 만큼 마당이 질퍽거렸다. 갯벌 수준이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진흙이 잔뜩 묻은 신발로 집에 들어올 수 없으니 짐을 옮길 때마다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셨다. 전문가의 손길에 짐은 순식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문제는 다시 김천으로 돌아가야 할 5톤 트럭이 마당 진흙탕에서 전혀 빠져나가질 못했다는 것. 바퀴는 계속 헛돌고 진흙은 더 깊이 파이고 사방으로 질퍽한 흙이 튀었다. 마당이 점점 엉망이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과 함께 고립되는 것..


데크에 쓰다 남은 방부목을 바퀴에 받쳐보기도 하고, 건초를 주어다 깔아보기도 하고, 장정 다섯이 차를 밀어 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차는 옴짝달싹 못했다. 그때, 구원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앞집에 사시는 인심 좋은 사장님께서 4륜 1톤 트럭으로 5톤 트럭을 끌어주셨다. 다행스럽게도 이사트럭은 다시 김천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앞마당은 트럭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지러운 마음에 함박눈이 내리다


아직 이삿짐 정리가 한창이던 날, 5톤 트럭이 할퀴고 지나간 어지러운 땅 위로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엉망진창이 된 마당을 보며 며칠 마음이 심란했는데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세상을 덮은 눈 덕분에 눈호강을 했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눈이 녹으며 다시 질퍽거리는 마당은 얼른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나갔다만 오면 진흙이 신발이 무겁게 들러붙었고 자동차도 진흙범벅이었다. 외출 한번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당장 땅을 갈아엎고 자갈을 깔 돈은 없고, 어차피 민박 지을 때 토목공사를 해야 하니 이중으로 돈쓰기도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차에서 내릴 때 디딜 곳 정도만 야자매트를 깔았다. 그 주위를 서까래로 일일이 땅을 갈고 주변에서 자갈과 마른솔잎을 주워다 덮었다. 지신 밟듯 마당을 밟았다.


시골초보는 모든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맑은 하늘과 울산바위와 푸른 바다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감사하며 강원도 이사 신고식을 아주 힘들게 치렀답니다.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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