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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Mar 26. 2024

우리는 '도시형' 노동자

문제는 밥벌이, 시골에서 일자리 찾기 하늘의 별따기

강원도로 이주하고 일주일 되던 날, 늘 쪼꼬미일 줄 알았던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전교생 56명에 신입생 10명인 작은 시골 학교다. 입학식 날 선생님의 호명에 레드카펫 위를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대견스럽고 감동적이었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둘째도 어린이집 등원을 했다. 첫날 아이가 놀이에 집중하는 사이에 나는 어린이집을 빠져나와 약 1시간 정도 대기했다. 잘 놀다가도 엄마를 찾고 울던 아이는 며칠 적응기간을 가지면서 조금씩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이렇게 아이들은 생각보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했다.



아이들 걱정은 한시름 놓았으니 그제야 진지하게 이곳에서 먹고 살아갈 궁리를 했다. 미뤄둔 전입신고를 하고, 주택화재보험도 들었다. 큰 산불이 났던 지역이어서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하니 걱정이 많았는데 보험이라도 들고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집 마당에 작은 민박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토지담보 대출도 알아봤다. 대출실행과 동시에 민박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


남편과 가계 장부를 들여다보며 재정계획을 세웠다. 김천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다행히 퇴사가 아닌 육아휴직을 해줘서 1년간은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부지원금만 받는 조건으로. 계산해 보니 내 휴직급여 약 130만 원, 강원도에서 주는 둘째 양육수당 50만 원, 아동수당 각 10만 원 해서 우리 집 고정수입은 200만 원이 채 안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나갈 돈은 산더미. 대출이자와 토목공사비, 설계비, 건축비에다가 네 식구 생활비까지. 너무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건가, 다시 밥벌이의 문제가 생겼다. 어쨌든 나는 휴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김천에서는 내가 서울형 경단녀로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하늘에 별따기였는데, 이 괴로움을 서울형 경단남 남편이 가져가게 되었다. 시골 가면 청년이 귀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으나 감감무소식에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고성과 속초는 관광지여서 호텔 프론트, 청소, 골프장 잔디관리, 카페 파트타임 등 서비스업 구인이 많았다. 주말 종일 근무가 조건이라 선뜻 지원을 못했다.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둘 다 겪어봤으니 다시는 서로에게 몰빵 하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체는 경력직을 원했다. 평화 활동가 3년 대안학교 교사 6년 경력의 남편은 커피머신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나이만 많은 초보인력이라 용기내어 이력서를 넣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육아휴직만 아니었으면 내가 일하는 게 훨씬 나을 텐데'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났다.


대학 때 사회복지를 복수 전공한 남편은 지역에 있는 복지시설에도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지만 사실상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있지 경력이 전무해서 뽑히기가 어려웠다.


대학시절부터 취업난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그나마 큰 어려움 없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이 가고자하는 분야가 돈보다는 가치를 따르는 일이었고, 학력도 받쳐준데다가

서울에는 그 열정을 품어줄 다양한 사회문화적 기반과 일자리가 분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원도 고성에서 남편은 전문 기술 하나 가지지 못한 매력 없는 구직자일뿐이었다.



그렇게 이사 오고 두 달이 훌쩍 갔다. 아끼고 아껴도 쌓여만 가는 카드대금에 턱끝까지 숨이 조여올 무렵, 한.회사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고성에서 잡은 생선으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드는 '동해형씨'라는 회사다. 회사 대표는 서울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디자인 일을 하다가 고향인 고성으로 돌아와서 로컬브랜드를 창업했다. 젊은 기운과 기획력이 반짝이는 이곳에 남편은 '생산직'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남편의 이력서를 보고는 기획과 행정분야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을 주셔서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남편은 작년 5월 첫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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