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유 Mar 29. 2024

싸움의 서막, 하얀 집의 비밀

별게 다 속상하고 서운하고 맘 상하는 부부 동업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학교 보내고 오랜만에 둘이 손잡고 룰루랄라 카페에 갔다.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시켜놓고 한 껏 여유 부리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게 행복이지, 생각하며. 내가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남편 '느린'이 우리가 숙소 건축을 맡기려는 회사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디자인의 모듈러를 서울에서 막 전시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이 회사에서 기존에 해오던 우드 외장 디자인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우리 하얀색 집으로 할까? 이 모델로 어때?


나도 모르게 본심이 툭 튀어나왔다. 느린도 새 디자인이 잘 나온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원래 우리가 세웠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상상의 나래를 계속 펼치며 떠들었다. 느린이 점점 심란한 표정을 짓더니 내 태도에 기분이 안 좋으니 그만 얘기하자고 화를 냈다. 나는 속으로 집 색깔 하나 바꾼 게 그렇게 큰 일인가 싶으면서도 화를 내는 느린의 모습에 마음이 상했다.


 "어떤 게 기분이 나쁜 건데? 오빠도 디자인 좋다고 했잖아. 대체 어떤 지점에서 화가 난 거야?"

 "네가 갑자기 모든 걸 바꿔버리면 그동안 고민하고, 결정해 왔던 것들은 다 뭐가 되는데?" 

"다 바꾸자는 게 아니잖아. 하얀집 얘기를 오빠가 먼저 꺼냈고, 외부가 달라지니 거기에 맞는 다양한 옵션들을 브레인스토밍 하듯이 얘기하던 거잖아"

"난 이런게 그냥 가볍게 들리지가 않는다고"


잠깐 여기서, 우리가 숙박업을 결심한 이유!

  처음 시골이주를 결정했을 때 나는 비건 카페를 열고 싶었다. 김천에 있으면서 대구, 구미에 있는 비건카페를 열심히 탐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시골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게 여러모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직장을 다닌다는 전제 하에 아이들 하교/하원 후에는 영업을 하기가 어렵다. 물론 돌봄을 맡기거나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 시골로 이주한다는 첫 번째 이유가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그리고 대도시와 달리 시골에서 '비건 카페'에 대한 수요를 장담할 수 없었다. 혼자 운영하는 카페는 노동력에 비해 수입이 좋은 업종도 아니고. 망하기 딱 좋은 조건..

카페에 대한 미련은 접고, 꼼꼼한 느린의 시장조사와 시골이주 탐구를 토대로 '숙박업'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초기 세팅은 힘이 들겠지만, 입/퇴실이 정해져 있어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그만큼 아이들과도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약시스템은 예기불안이 많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느린은 월 15박을 목표로 하면 부자는 될 수 없어도 소소하게 우리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채울 수 있다고 '장담' 했다. 우유부단한 평화주의자에게서 무언가 확실한 믿음이 나왔다는 건 그만큼 근거가 있는 것일 테니 나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공든 계획을 무너뜨리는 나의 재주


  이렇게 나의 꿈을 뒤로하고 숙박업을 하게 된 게 내심 마음에 걸렸던 느린은 그동안 내 취향에 맞춰서 숙소 외장재와 내부 옵션들을 정했다. 비록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의견을 수용했다. 그렇게 정한 숙소 디자인에 맞춰서 공간의 전체적인 콘셉트, 주변 조경, 내부 인테리어 등을 구체적으로 세워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말이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전시된 디자인을 보고 그 자리에서 모든 계획을 '리셋'해 버린 것이다. 무심코, 툭.


집 색깔을 시작으로 그간 서로의 대화방식에 대해 쌓였던 불만이 수도꼭지 튼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남편과 하나부터 열까지 도통 맞는 게 없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우리가 과연 같이 사업을 할 수는 있는 건가 회의감도 들었다. 서로 마음만 상하니 앞으로는 각자 분야를 정해 선을 긋고 참견하지 말자고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가 갑자기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같아 시무룩해졌다.


사실 느린과 살면서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돌아보면 느린이 나를 늘 수용해 줬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다투는 상황까지 번지게 된 연유에는 내 잘못이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섭섭한 게 있지만 내 급한 성미와 변덕이 싸움의 시발점이긴 했다. 또 그의 보이지 않는 노고를 (그는 자신이 잘하거나 노력한 일을 생색내거나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다) 그간 알아주지 못한 내 무심함도 컸다.


같이 사는 거랑, 같이 일하는 건 완전히 달랐다. 부부동업은 매일 도래하는 서로의 낯선 모습을 맞닥뜨리고, 당황해서 움찔하고, 속이 상하다가 그래도 다시 한 번 맞춰나가는. 그러다 또 어떤 날은 손발이 척척, 쿵짝이 잘 맞아 신이 나기도 하고 없을 땐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참으로 마라맛 팀플 같다.


달갑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사업파트너(?)로서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나 점검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다. 내가 더 배려와 경청을 익혀야 하는데 이번에도 느린은 나의 마음을 들어주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지금 우리 민박이 하얀 집일 수 있었던 이유! 디자인이 바뀌니 조금은 러프했던 숙소 이름도 바꾸게 되었다. 원래는 느린의 별명 따라서 느린 산장, 슬로피스, 슬로우캐빈 등이 이름 후보였는데 싹 다 날려버리고 저의 별명을 따라서 지금의 '고유의 뜰'이 되었답니다. 내가 생각해도 얄미운 고집의 뜰 주인장..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나의 느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