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의 문화예술 실험기 4. 고유살롱 - 비건테이블 (2)
비건 테이블 당일,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고구마와 버섯,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오븐에 굽고, 올리브유에 잘게 썰은 양파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후 토마토와 병아리콩, 애호박, 감자, 브로콜리 등을 넣었다. 각종 채소들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졸이는 사이 미리 만들어 둔 병아리콩 후무스를 접시에 담고 절인 올리브절임과 할라피뇨, 토마토 등 야채들을 올렸다. 오븐에 있는 채소들이 더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채소가 졸여진 팬에 미리 만들어 둔 토마토소스를 부어 뭉근히 끓여냈다. 미리 사 둔 비건 빵들을 먹기 좋게 썰었다. 큰 우드볼에는 신선한 야채샐러드를 담았다. 디저트로 먹을 쑥 파운드케이크 반죽도 했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시간도 바삐 흘렀다. 아직 요리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하나 둘 손님이 오시기 시작했다. 손님맞이는 남편에게 토스하고 막판 스퍼트를 끌어올려 플레이팅에 들어갔다. 토마토 스튜를 그릇에 담고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베지볼을 얹었다. 후무스 접시에는 오븐에서 막 꺼낸 각종 채소들을 얹고, 비건 빵도 올린 후 파슬리 솔솔 뿌려 마무리. 마지막으로 오븐에 디저트 반죽을 올려놓고 집에서 숙소로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다.
속초에서 소문난 카페와 로스터리를 운영하는 분들, 고성에서 유명한 펜션을 운영하는 사장님, 착장부터 아티스트 아우라가 느껴졌던 웹 디자이너, 책과 글을 사랑하는 독서교실 선생님, 서울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대로 ‘잘’ 나가는 분들이 한 데 모여있으니 뭔가 내가 힙스터 사이에 끼어있는 머글처럼 느껴졌다. 긴장된 마음으로 내 소개를 먼저 했다. 음식이 앞에 있으니 최대한 짧게 서로의 소개를 간단히 하고 식사를 먼저 한 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손님들이 수저와 포크를 드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맛이 없으면 어쩌지’ ‘비건 음식에 실망하면 어쩌나’
“이 수프 정말 맛있네요”
“위에 올라간 동그란 것도 고기가 아니고 채소로 만든 거죠?”
“비건 음식 괜찮은데요?”
다행스럽게도 손님들의 손과 입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니 긴장된 마음이 녹고 뿌듯해졌다. 자연스럽게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피어났다. 현재 비건인 사람도 있었고, 비건 경험이 있는 사람, 비건에 대해 이번 계기로 처음 알게 된 사람 등 비건과 관련한 각자의 경험이 다양했다. 해외에서 살 때 비건이 너무 당연한 문화여서 낯설었던 일, 처음 친구 따라 비건 식당에 갔다가 대체육으로 요리한 음식을 맛보고는 질감과 맛에 충격을 받아 멀리하게 된 이야기, 채식을 하면서 몸이 가뿐해진 경험, 비건으로 사회생활 (특히 회식) 하는 게 어려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채식뿐만 아니라 지구를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 예를 들면 옷 사지 않기, 음식 남기지 않기, 로컬매장 이용하기, 텃밭을 가꿔보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등 다양한 노력들을 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모두가 비건은 아니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지구에 마음을 쓰는 다정한 사람들. 모임 준비가 처음이다 보니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기꺼이 즐기고, 자신의 이야기도 내어준 이들 덕분에 좀 더 열심히 작은 실천들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작은 실천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테니까. 선선한 가을에는 작은 비건페스타를 꼭 열어보고 싶다.
가장 멀리서 온 손님이 남겨주신 글을 인용하며 비건테이블 후기를 마무리한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만들었을 <비건 테이블>의 브런치. 서울 유명한 어디를 가봐도 호주 혹은 영국식의 지방 가득한 브런치겠지만, 내가 받은 한 그릇 안에는 전부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담겨있었다. 토마토베이스에 병아리콩과 야채로 끓여낸 스튜를 먹었을 때 몸이 안온해지는 기분이란. 입이 심심하지 않은 것은 그릇 위에 담긴 다양한 식감을 가진 세 종류의 빵, 부드러운 후무스, 매콤한 할라피뇨와 올리브, 상큼한 피클 덕분이다. 디저트로 내준 감귤잼 얹은 케이크까지. 허하고 삼삼한 비건 플레이트를 상상하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비건이 될 필요는 없어요. 가능한 선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면 돼요. 다만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혹 지구에 해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무려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한 야무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평소 내가 생각한, 나아가 지인들과 종종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통일에 대한,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의 삶까지 이어지다 기어이 대륙횡단 열차까지 칙칙폭폭 나아갔다. 이들은 비단 자기 사는 집과, 차와, 내 아이들에 대한 고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고장과, 길과,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미래를 살아갈 세대와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산과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은 그 덕분인지 시야가 넓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들은 모두 그렇다.
어색하게 밥을 먹고 머쓱하게 자기소개에 그칠 것 같았던 만남은 세 시간가량 이어지다 끝이 났다. 아무래도 지역민들끼리의 대화가 주를 이뤘던지라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늘 고요한 곳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나로선 고민하고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 많았다. 다음 <비건 테이블> 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오게 될까? 비건이 아녀도 괜찮다. 그저 조금 생각해 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그곳에 가면 너무나 아름다운 식탁에 앉게 된다는 사실이다. [출처] Event / 고유의 뜰 _ <비건 테이블> 후기 | 작성자 아린 (허락을 받고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