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의 문화예술 실험기 3. 고유살롱 - 비건테이블 (1)
2018년부터 약 2년 간 페스코 채식을 했다. 처음 육식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대안학교의 교사로 일하는 남편이 학기 중에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면서부터다. 옆에서 학생들과 공부하고, 토론하고, 책을 읽고, 작은 실천들을 하며 학기를 보내는 느린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기후위기가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건은 자신이 없어서 선택한 것이 페스코였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 모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평소에는 채식을 유지하다가, 친정에 가거나, 아니면 모부가 우리 집으로 오실 때면 나는 육식을 했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찜찜함과 죄책감이 따라왔고, 속이 거북했다. 하지만 딸 건강 생각해서 음식을 차리는 엄마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반년쯤 지났을 때에야 채식 중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타박했고, 아빠는 신념도 좋지만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씀하신 아빠는 사실 누구보다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어차피 내가 꺾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엄마는 종종 직접 기른 텃밭채소를 택배로 보내주셨는데, 채소꾸러미에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검은 봉지에는 늘 고기가 들어있었다. 전화로는 사위랑 손주들 주라고 끼워 넣은 거라면서도 늘 말미에 '너도 좀 먹고 살 좀 쪄야 하는데' 라며 말을 흐렸다.
그러다 둘째 임신을 하면서 철분수치가 너무 떨어졌다. 첫째 출산 때 과다출혈로 고생했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이번에는 몸 관리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기를 안 먹어서라기보다는, 불균형한 식단이 문제였지만 당장 고기를 먹는 게 해결이 빨라 보였다. 병원에서도 나의 식습관을 제일 문제 삼았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신화는 남자아이를 임신한 산모에게 불문율과 같았다. 실제로 임신을 하니 고기가 너무 당기기도 했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며 쾌재를 불렀고, 그때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 택배가 집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임신 기간 내내 나는 사실상 육식주의자로 돌아갔다.
2022년, 둘째가 돌이 되었을 무렵 기후위기로 인한 많은 재난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대형 산불과 지진과 해일, 코로나19 확산으로 터전과 목숨을 잃는 많은 생명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안전지대에 있다는 비겁한 안도감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재난에서도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약하고 무르고 작은 존재들이었다. 때마침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었다. "비건의 목적은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는 문장을 마주하며 다시 채식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물살이도 생명인데, 땅살이 동물과 다를게 무엇인가. 그렇게 비건을 시작했다.
시골에 오면 채식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서울의 비건 레스토랑과 카페를 참 많이도 의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에서 만나는 비건친구들이 왜인지 힙해 보여서 졸졸 따라다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부지런히 만들어 먹지 않으면 비건이 불가능하다. 와서 보니 난 내 생각보다 게으른 사람이어서 당찬 포부와는 다르게 비건생활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지금은 비건 '지향' 중이다. 하루 한 끼는 비건으로 차려 먹는다. 덩어리 고기는 가급적 안 먹지만 식당에 가면 멸치베이스로 된 국물이랑 빵집의 여러 가지 디저트는 먹는다. 신념이 강하지도 않아서 실패와 타협의 순간도 많다. 가끔 아이들이 치킨 먹을 때 "어휴 남기면 안 되니까"말하면서 부러 난색을 과하게 표하며 좋아하는 부위를 정확히 골라내 한두 조각 먹기도 한다. 비건 사워도우 한 덩이를 사러 가서는 남편이 좋아한다는 핑계로 치즈가 들어간 올리브 치아바타를 두 덩이나 더 사 오기도 한다. 누군가를 초대할 때면 비건식으로다가 플레이팅까지 완벽을 추구하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오징어 라면을 종종 끓여 먹는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인정욕구가 있다 보니 매사에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시작조차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세월을 움츠리며 살아왔다. 내가 과연 채식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 어정쩡해하면서 먹고 싶은 걸 굳이 피하며 불편하게 사는 모양새가 스스로 볼품없이 여겨질 때가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자주 살피는 나로서는 누군가와의 식사자리에서 나의 식단으로 상대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 자체가 껄끄럽고 심적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너 채식주의자야?"라는 질문에 뒤에 따라올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 불쌍하지 않냐'. '너 고기 안 먹어서 몸 약한 거다' '너 채식하니까 예민한 거 아니야' 등의 고나리질이 두려워서 아직도 잔뜩 쫀다. 멋쩍게 웃으며 "아, 디톡스 중이야" "역류성식도염이라 조심하는 중이야"라고 변명하듯 답할 때가 있다.
비건들 중에는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미안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김한민, <아무튼 비건> 중
아무래도 여기 살면서 채식을 잘 실천할 수 있으려면 동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동지가 필요하다'라고 알리는 일일 것이다. '어떻게 알려야 하나, 그래 일단 우리 집에 불러놓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자' 마음을 먹은 순간 비건 음식 사진을 붙인 ppt 한 장을 만들어 인스타그램 숙소 계정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아무도 오지 않을까 봐 발을 동동거리던 것 무색하게 무려 6명이나 신청해서 한 자리에 모였다.
(하...너무 길어졌다. 오늘이 연재일이고 원래 하려던 글은 시작도 못했는데 서론이 또 너무 길었고, 그래서 망했다는 생각이 들고...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말았...가 아니라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북 연재 프로젝트의 단점이자 장점은 '마감일'이 있다는 것이고 오늘이 그날이니 저는 미완이지만 마감을 지키기 위해 발행을 누르겠습니다...마감일만 지켜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