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의 문화예술 실험기 5. 죽바클x고성공예주간 in 고유의뜰 (1)
작년 9월 민박집을 오픈하고 열흘쯤 지나서 우리에게 첫 협업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에 살면서 치앙마이식 손바느질을 전수하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호스트 복태와 한군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숙소에서 죽바클 멤버 8명과 2박 3일간 리트릿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두 명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숙소 사장으로서 이 제안은 의아하면서도 내 안에 꿈틀대는 실험정신을 기분 좋게 건드렸다.
스라봉 : 많은 인원이 둘러앉아야 하니 테이블과 소파는 빼는 게 낫겠지?
느린 : 숙소 마당에 텐트를 치고 캠핑하면 좋겠다.
스라봉 : 조식은 내가 비건식으로 준비해 볼게.
느린 : 저녁에 불멍 하면서 비건 바비큐 해도 재밌겠다.
스라봉 : 복태와 한군이랑 단톡방 열어서 같이 얘기해 보자!
그렇게 죽바클X고유의뜰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복태와 한군도 우리의 제안에 매우 긍정적이었고, 서로가 즐거운 워크숍을 상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을바람 선선하게 불어오는 11월 중 이틀을 날짜로 잡았다. 그런데 일정이 한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복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여러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여력이 없고 정신이 없어서 찬찬히 준비해서 내년에 진행하면 어떨까 해요. 조금 더 차분이 준비하고 싶어서요. 너무 아쉽고 미안해요."
당시 복태와 한군은 여러 워크숍과 전시, 책 출간 준비,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잠깐 쉬고 싶어서 우리에게 제안했던 리트릿이었지만 우리가 봐도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고유의 뜰 첫 실험으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과연 그게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민박 운영 3개월 차에 첫 권태기를 겪고(11화 어쩌다 독박사장 참고)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잠시 잠들어 있던 나의 실험욕망이 새 날의 태양처럼 솟아올랐다. 뭐라도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고립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모임을 열기로 했다. 이름도 지었다. '고유살롱' 일단 뭐든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하고 싶은 것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비건페스티벌도 열고 싶고, 비건 캠핑도 해보고 싶고, 작은 콘서트도 열어보고 싶었다. 잔잔한 어쿠스틱 공연부터 풀밴드 공연까지 다양하게. 책모임도 하고 싶고, 글쓰기 모임도 만들고 싶고, 야시장도 해보고 싶고 끝이 없는 욕망의 실타래가 마구마구 풀렸다.
하고 싶은 걸 다 적어보니 A4용지를 빼곡히 채웠다. 이 걸 다 하다가는 그전에 우리 숙소가 적자로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2인 전용 민박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손님이 많은 주말과 아이들이 있는 저녁시간을 피해서 할 수 있는 일들로 가지를 치고 나니 막상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는 않았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6-7명 내외로 할 수 있는 모임이 당장 현실가능한 범위였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몇 가지 안 남은 목록들 중 내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가치와 생각들을 중심에 두고 한번 더 걸러내기를 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콘텐츠 중 하나가 바로 작년에 해보지 못한 '죽바클'이었다.
치앙마이는 단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 한 번으로 내 인생 여행지가 된 곳이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잔이 넘치게 흐르는 신혼여행지이기도 했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비인간 동물인 코끼리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생추어리에서의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복태와 한군의 존재는 느린을 통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치앙마이 바느질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치앙마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너무 관심이 갔었다. 태국의 스승으로부터 직접 소수민족 방식의 바느질을 전수받아, 버리는 것 없이 재단해 옷을 만들고, 손바느질로 헌 옷을 수선하는 그들의 작업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그들이 직접 만든 카렌 셔츠와 가방 등의 작업물을 SNS로 자주 살펴보고, 워크숍 소식도 늘 체크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죽바클 워크숍에 참석해보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시간과 돈 둘 다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바쁘게 일하며 대학원 공부에 아이까지 돌보는 일에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았는데 막상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던 서울살이. 그 와중에 한 클래스에 10만 원 정도 하는 죽바클 워크숍을 신청하기에는 손이 덜덜 떨렸다. 늘 아쉬움만 남긴 채로 워크숍 공지를 떠나보내다가 서울을 떠나니 이제는 영영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의 버킷리스트로 남은 치앙마이 바느질,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었다.
그런데 굳이 내가 서울까지 꼭 가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제 내게는 운영하는 공간이 생겼고 나는 그들을 초빙해서 워크숍을 열 수 있는 여건이 생겼다. '역제안을 해보자. 죽바클 멤버들만의 리트릿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치앙마이 바느질을 전수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열어보자.'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반년동안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죽바클X고유의 뜰 단톡방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고유의 뜰에서 죽바클 워크숍 어때요?"
* 죽바클x고성공예주간 in 고유의뜰 (2)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