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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Aug 30. 2024

서둘러봤자 어차피 한 땀

민박집의 문화예술 실험기 6. 고유의뜰x죽바클x고성공예주간

복태와 한군은 워크숍과 공연 등으로 이미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들이 과연 시간을 내서 고성까지 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과연 될까'의 마음보다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연락을 해 보았다. 걱정 무색하게 복태와 한군이 아주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주었다.


워낙 모시고 싶은 분들이었기에 여유를 두고 행사를 잘 준비하고 싶었다. 7월부터는 성수기니 6월 초중순에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서로가 모두 시간이 되는 날은 5월 25일이었다. 준비가 밭긴 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타부타 없이 바로 그날! 하루동안 카렌셔츠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제 관건은 10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일. 주말 오전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 그 하루에 1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이 워크숍에 관심이 있는 사람 10명이 필요했다. 서울에서 워낙 명성이 있는 바느질 워크숍이지만 과연 강원도 고성에서도 수요가 있을까,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나 조금 겁이 났다. 더군다나 우리 숙소는 대중교통으로는 올 수 없는 작은 숲 속에 위치해 있다.


걱정되는 마음에 일단 지인들에게 슬쩍 워크숍 이야기를 꺼내봤다.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이 복태와 한군의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알고 있었고, 그중 네 명이나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했다.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참여하지 못했던 바느질 워크숍이었는데 가까운 데서 연다면 당연히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고성에서도 이미 유명했다니, 역시 대단한 죽바클. 가격과 시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10명, 금방 채울 수 있겠는걸!'



우연히 고성문화재단 SNS에 올라온 공예주간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강원도 지역에서 공예주간 일반참여처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공지문이었다. 그런데 행사 일정을 보니 5월 17일부터 5월 26일까지다. 죽바클 워크숍이 25일이니까 간당간당하게 그 기간에 들어간다.

'설마 우리도 신청하면 되려나?'


노자 말씀하시길 "가지 않으면 이르지 못하고,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하셨다. 결국 나 스스로 팔을 뻗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느린은 혹시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고성문화재단에 연락을 했다.


"네 저희가 숙소에서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는.."

"네? 죽바클이요? 복태와 한군이요? 정말요?"

느린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공예주간 담당 팀장님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듣자 하니 공예주간 행사로 죽바클을 꼭 초빙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이미 고성으로 그분들을 섭외했다고 하니 너무 좋다는 것이다. 필요한 거 있음 다 말하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아다리가 맞을 수 있다니 놀랄 노자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6월에 진행했다면 받을 수 없었던 지원이었기에 5월에 시간이 되는 복태와 한군에게 감사인사가 절로 나왔다. 고성문화재단 덕분에 이 귀한 워크숍을 지역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홍보와 참여자 모집까지 재단에서 같이 해준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복태와 한군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함께 기뻐해주었다. 어쩌면 우리끼리 조용히 열고 끝났을 워크숍을 조금 더 이 지역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른 공예 행사들과 연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우리 숙소도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복태가 한 가지 제안을 보탰다.


"우리 이왕 고성에 간 김에 다음날 수선워크숍까지 진행해 볼까요?"


그렇게 성사된 크래프트립 고성, 죽음의 바느질 클럽 셔츠 만들기와 수선워크숍.

홍보와 지원 덕분에 신청 접수 오픈 후 하루 만에 접수마감되었다. 공예주간 행사 중 처음으로 전석매진!




일이 술술 풀릴 때는 괜스레 불안해지는 게 내 모질 병 중 하나다. 아니나 다를까 워크숍을 앞두고 걱정거리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자그마한 2인 숙소에 과연 10명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이게 애당초 우리 숙소에서 감당할 수 있는 행사인가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복태와 한군, 아이들 셋까지 다섯 식구가 이틀간 묵을 숙소도 필요했다.


처음엔 그냥 숙소에서 옹기종기 자고 우리끼리 즐겁게 마당에서 워크숍 하고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고성군에서 지원을 받는 큰 행사가 되어버렸고, 참여자들도 이미 정해졌고,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숙소 소파를 빼는 게 낫겠지? 테이블을 빼고 바닥에 둘러앉아서 하면 다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하루종일 그러고 있으면 다리 아프겠지. 우리 집 식탁을 가져다 놓으면 지나다니기 너무 불편할 텐데. 그나저나 다섯 식구는 어디서 묵어야 하나. 숙소를 쓰게 하고 워크숍은 차라리 우리 집 거실에서 할까. 아니지 그래도 고유의 뜰에서 워크숍을 하는 게 맞지. 복태네 숙소를 다른데 구해줘야 하나. 적자가 만만치 않은데. 워크숍 동안 아이들은 누가 돌봐야 하나. 아 참, 점심은 뭐로 제공하지. 내가 만드는 게 나을까? 그냥 간단히 샌드위치? 여력이 안될 텐데. 그날 비 오면 어떡하지. 마당까지 써야 되는데. 참여자분들이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고 피드백이 안 좋으면 어쩌나. 무료라서 노쇼 생기면 어쩌지. 세상에, 대체 10대 주차는 어떻게 한담..'


미리 했어야 할 현실적인 고민들을 이미 물을 엎지른 다음에 시작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괴감이 몰려왔다.

'서울서 일주일에 서너 개 행사도 치르던 기획 짬바 다 어디 갔니 슬아야'

'어쩌면 이렇게 대책 없이 일을 벌일 수가 있니 정말 한심하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


정말 워크숍 직전까지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느린이 어느 날은 한마디 툭 던졌다.


"뭘 그렇게 걱정해. 그냥 어떻게든 하면 되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쉽게 할 수 있지. 내 머리는 터질 것 같은데. 마음이 팍 상해버리니 무슨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혼자 표정이 굳어서 씩씩거리는 내 눈치를 보던 느린이 이번엔 좀 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네가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맞아. 이거 즐겁자고 한 일인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지?

현실파악을 미리 못한 나에 대한 자괴감,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욕심, 한치의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은 완벽주의, 욕먹기 싫어서, 민폐 끼치기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잘 요청하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켜켜이 쌓여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마음을 조금 비우기로 했다. 일단 워크숍 장소 하나만 딱 정하고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여러 고민 끝에 워크숍은 처음 계획대로 숙소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소파를 빼고 대신 그 자리에 집에 있는 큰 테이블을 옮겨서 10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구성하기로 했다. 조금은 좁은 감이 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할 일도 아니고, 작은 불편은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신 다른 요소들로 그 불편함을 상쇄시키면 될 일이었다. 한 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머지 요소들은 적극적으로 이웃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윗 집에 사시는 어르신 부부는 오촌이도의 삶을 사신다. 평일에는 고성에서 지내시고 매 주말이면 귀촌하기 전 원래 사시던 안산에 다녀오신다. 어르신께 우리의 사정을 설명드리니 흔쾌히 주말에 방을 내어주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당연히 숙박비를 드릴 생각이었다. 두 어르신은 관광지의 주말 숙박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만 받으셨다. 이로써 복태와 한군 가족의 숙소는 해결!  앞집 사장님께서는 당일날 그분 소유의 빈 터에 주차를 할 수 있도록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셨다. 젊은이들이 오니 이런 재미있는 일들도 생긴다면서 아낌없는 격려의 말도 해주셨다.  



워크숍 전날 복태와 한군 가족이 도착했다. 서울에서 고성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긴 시간 차를 타고 오느라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고 인사하는 복태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한군의 미소는 넉넉했다. 그들을 보는데 긴장했던 마음이 녹고 왠지 안심이 됐다. 이제는 그저 이들만 믿고 가면 되겠구나, 나는 옆에서 보조만 잘 맞추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린의 지인이었던지라 나와는 친분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도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우리 아이들은 서울에서 온 누나 형들이 그저 좋아서 졸졸 따라다녔다. 뭔가 치앙마이의 다정한 기운을 이들이 가지고 온 건가.


다음날, 대망의 워크숍 첫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미리 주문해 둔 샌드위치와 디저트, 꽃다발까지 불철주야로 뛰며 픽업을 해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기진맥진한 저질체력의 소유자인 나를 보며 느린이 '음 시작됐군' 하는 표정으로 날 놀려먹을 구상을 하는 듯 보였다. "정신 차려! 이럴 때가 아니야"라며 큭큭대는 남편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는데 첫 번째 참가자가 도착했다.

"아니 벌써? 아직 준비 안 됐는데." 갑자기 허둥대는 느린에게 똑같이 "정신 차려!"라는 말을 날리고 분주히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내 맘은 바쁜데 손님은 기다려도 괜찮다며 주변을 구경하시고, 복태와 한군도 자신들만의 속도대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하면 돼. 시작된 거야'


첫날은 내가 오래도록 고대하던 카렌셔츠 만들기를 배울 수 있는 날이었다. 나도 참여자로 미리 신청해 두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맡기겠다고 먹은 마음과는 다르게 초반에는 손님들 챙기랴, 행사 보조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옷 만들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얼른 정리를 끝내고 워크숍에 합류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천을 재단하는 것! 준비물은 다양한 색깔의 큰 천과 가위, 실과 바늘이 전부였다. 각자 마음에 드는 색의 천을 고르고 복태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어깨에 천을 걸쳐 길이를 정했다. 그리고 바로 쓱싹쓱싹 가위질을 했다. 줄자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재단 끝!


1층 테이블에 복태와 9명의 참여자들이 둘러앉았다. 나는 조용히 복층으로 올라갔다. 서툰 솜씨로 자른 천의 사면에 더듬더듬 바느질을 했다. 시침핀도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한 행사준비를 위해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는데 조용히 앉아서 복태의 설명을 들으며 듬성듬성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비현실적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바느질은 오후 다섯 시까지 이어졌다. 서로 모르는 10명이 모였지만, 통성명을 따로 하지도 않았지만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작업의 세계로 푹 빠져서 바느질이라는 바다를 헤엄쳤다.

  

얼마 전 복태와 한군이 낸 책 《죽음의 바느질 클럽 》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느질은 매 순간 서두르고 재촉하고 멈추지 않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어차피 서둘러봤자 한 땀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워크숍 때의 기억이 단어와 문장 속에서 환등처럼 피어났다. 그 자리에서 매 순간 서두르고 멈추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고,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바느질을 조급하게 하면 꼭 실수를 하게 되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책에 쓰인 문장처럼 "어차피 서둘러봤자 한 땀"(p. 28)인 시간들, 그래서 나중에는 마음을 비우고 오롯이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인생의 몇 안 되는 귀중한 찰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셔츠를 시간 내에 다 만들지는 못했다. 한두 분 빼고는 거의 그랬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에겐 복태와 한군의 바느질 비법서가 있고, 게다가 나는 이 귀한 스승님들과 밤을 보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으니까. 그날 밤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신나서 놀고 어른들은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다. 복태와 한군은 자연스럽게 바느질 도구를 꺼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밤하늘의 별을 잠깐씩 멍하니 쳐다보면서도 그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바늘과 실, 그들의 몸이 꼭 하나같았다. 내 손으로 꾸릴 수 있는 삶의 기술이 하나도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이튿날은 오전 3시간 수선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날은 참여자가 아닌 행사 요원(?)으로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워크숍을 서포트하는 데 집중했다. 첫날과 달리 수선작업은 호스트인 한군의 설명이 계속 필요했다. 긴 호흡의 셔츠 만들기와 달리 계속해서 새로운 수선법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늘 무릎이 헤지는 아이의 바지를 수선해보고 싶어서, 금방 버려지는 옷들이 마음에 쓰여서, 미싱 없이도 멋진 바느질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복태와 한군에 팬이어서. 이곳에 온 이유도 제각기 다른 사람들 10명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한군의 설명과 손놀림에 집중했다. 3시간 후, 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파우치를 하나씩 완성하고 서로의 작품에 아낌없는 칭찬을 부어주며 기뻐했다. 작은 성취에 행복을 느끼던 저마다 고유한 얼굴들이 워크숍이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수선이 무언가를 '위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위하는 마음, 지구를 위하는 마음이 다른 마음들에 앞선다. 한 치 앞뿐 아니라 조금 더 먼 앞을 내다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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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태와 한군,《죽음의 바느질 클럽》, 도서출판 마티, 2024.



실과 바늘로 옷을 짓고 수선하며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공존하는 생명들을 잇고, 나와 지구를 잇고, 차별과 불평등 국경이라는 경계너머의 이야기들을 잇는 복태와 한군. 적당히 하고 멈출 줄 알면서도 꾸준히 다음을 이어가는 그들이 전하는 '치앙마이 정신'에 살짝이나마 닿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그 시간 덕분에 한 치 앞이 아닌 조금 더 먼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고맙습니다 스승님들.


Special Thanks to

크래프트립 고성, 고성문화재단 공블리 공상희 팀장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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