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숙소 사장의 희로애락 1. 삶이 엉망진창일 때에도 손님은 온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자들은 모래를 이용해 몇 달에 걸쳐 만다라를 만든다. 기이한 점은 색색의 작은 모래알로 촘촘하게 채워진 만다라가 완전히 완성되면 모두 헐어버린다는 것이다. 만물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이 행위를 통해 존재의 일시적인 본질과 집착 없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매사에 연연하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입실청소는 일종의 만다라 수행과 같다. 주름 한 점 없이 펼쳐진 뽀송한 침구, 물기 없이 깨끗한 주방, 각 잡혀 정리되어 있는 소품들까지. 그러나 퇴실 후 들어가면 수행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를 경험하게 된다. 그 일은 매번 반복된다. 덧없는 마음이야 알겠다마는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본질적 아름다움까지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그저 퇴실과 입실 사이에 열을 올려 청소를 끝내고 나면 아이들이 귀가하기 전까지 단 30분만이라도 마냥 퍼져서 쉬고 싶을 뿐이다.
아무리 숙소가 엉망진창이 되어있어도 치울 엄두라는 게 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집안일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서 어느 정도 손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숙소를 청소하고 나면 확실히 집을 청소했을 때와는 다른 성취감이 느껴진다. 청소 시작 전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써둔 방명록을 보는 것도 작은 기쁨이다.
이런 작은 기쁨이라도 누릴 수 있는 하루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아이들의 등교와 등원이다. 그런데 성수기와 동시에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초등학교는 방학이 한 달이나 된다. 네 살 둘째의 어린이집 방학은 그나마 열흘이라는 점이 잠시의 위안이 되었지만 그 열흘이 하필이면 1박으로만 가득 채워진 극성수기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아이에 한해서 긴급보육이 이루어진다는데 남편과 나 둘이나 붙어서 하는 청소가 과연 피치 못할 사정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물쩍 미루던 기저귀 떼기도 이 시기에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집에 데리고 있기로 했다.
방학 첫날, 이른 아침 퇴실하신 손님 덕분에 입실청소를 일찍 끝낼 수 있었다. 폭염이 기승이 부리던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방학 기분도 느끼게 해 줄 겸 짐을 바리바리 싸서 동네 계곡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해가지기 직전까지 투명하게 반짝이는 계곡 물속에서 두 마리 물살이가 되어 신나게 물장구를 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미 잠에 뻗어버린 아이들을 보며 "지금부터 아침까지 그냥 쭉 잤으면 좋겠다"며 실없이 내뱉는 남편의 말에 난 웃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둘째가 열이 나더니 컹컹대는 기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학 첫날밤이었다.
아침이면 내 다리를 칭칭 감고 매달리는 둘째와 5분마다 심심하다고 하소연하는 첫째를 태블릿에게 맡기고 숙소로 향했다. 좋은 손님이 있으면 힘든 손님도 있기 마련인 게 숙박업이다. 누가 머물다 갔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급변하는 숙소상태를 매일 체크하다 보니 어느 날은 숙소 문을 여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야지. 손님이 들어오시고 나면 언제 어떻게 연락이 올 지 몰라 늘 1분 대기조처럼 긴장을 하며 지내다 보니 매일 배탈을 안고 살았다. 나는 점점 좀비가 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둘째의 기저귀 떼기 미션을 떠맡은 남편은 아무리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황에 점점 인내심을 갉아먹히고 있었다. 하루는 심심해 죽겠다며 입이 대빨 나와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에라도 다녀오자 준비를 하는데, 바깥돌이 둘째는 벌써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는 와중에 집돌이 큰아이는 나가기 싫다며 세모눈이 되었다. 점점 차오르는 짜증을 삭여가며 첫째를 꼬시는데 기다리다 지친 둘째가 팬티에 응가를 그냥 해버렸다. 평소의 남편 같으면 "당연히 실수할 수 있지", "다음에는 꼭 변기에 해보자" 넘어가던 일이었다. 스트레스가 누적된 남편은 똥덩이가 묵직하게 든 둘째의 팬티를 벗기며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울기일보직전으로 애걸하듯 "은담아, 응가가 마려우면 변기에다 해야 한다고 몇 번 말해"라며 울먹이는 남편을 보자니 세모눈이던 첫째도 당황해 얼음이 되었다. 맘 같았으면 그 팬티를 붙잡고 둘이서 같이 엉엉 울고 싶었다. 그날 결국 아무도 나가지 못했다.
창문 밖으로는 기분 좋은 설렘을 가득 안고 차에서 내리는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