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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Dec 06. 2024

별 다섯 개가 깨지다

시골숙소 사장의 희로애락 2. 상식을 뛰어넘는 일

나의 상식이 누군가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민박을 운영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한 가지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나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러니 누가 오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여름 성수기를 버틸 수 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마음을 온전히 비우지 못했다. 폭염과 장마와 상식을 넘어서는 다채로운 사건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은 절여진 배추처럼 되어버렸다.   


객실을 청소하다 보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물리적으로' 더러운 꼴을 마주하는 일이 잦다. 민박 주인이라면 침대 위에 끈적끈적하게 말라 붙어 있는 사랑의 흔적과(콘X은 직접 휴지통에 버립시다..) 새하얀 커튼에 진득하게 묻은 닭강정 소스, 임박한 퇴실시간 때문인지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설거지 더미를 발견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3시간 뒤에는 새로운 손님이 오기 때문이다.


  가장 난감한 건 '냄새'다. 숙소 운영 규칙을 미리 알려드렸음에도 실내에서 몰래 개인용 화기를 사용해 고기를 구워드신 경우도 있었다. 배상이고 뭐고를 떠나서 일단 3시간 안에 숙소 안의 찌든 냄새를 제거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냄새'가 제일 복병이다. 인센스와 향초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우고, 탈취제를 뿌리고, 커튼을 급속 세탁해서 다시 걸어도 문제는 벽지에 베인 냄새다. 객실 안 모든 벽을 벅벅 닦는데 아직 할 일이 태산이고 입실시간은 다가오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러다 보면 순간 영혼이 털린다. 그래도 어쩌겠나, 정신 차리고 얼른 해치워야지.  


물건이 없어져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차분히 빈자리를 채워 넣어야 한다.  티스푼과 포크, 와인오프너, 수건, 각종 잔 등은 여분의 물품을 항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전화는 절대 무음으로 해두면 안 된다. 예약 문의 전화야 시간을 설정할 수 있지만 투숙 중인 손님의 경우 전화가 밤낮없이 울리더라도 받아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니까. 방심하는 순간 쌓아 온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젠가 같은 일상...


리뷰에 울고 웃는 유리멘털 사장


  민박 오픈 이후 약 10개월간 평점 5점을 자랑하던 우리 숙소가 한여름의 어느 날 순식간에 4.7로 하락했다. A플랫폼을 통해 오셨던 손님 한 팀이 3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A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숙박 플랫폼이지만 손님이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이 손님은 성수기 가격으로 2박을 예약했는데 수수료까지 붙은 데다가 A사에서 우리가 설정해 놓은 연박 할인 시스템을 미리 고지도 없이 없애는 바람에 연박 할인마저 받지 못했다. 연박 할인 문제는 다시 해결했지만 손님은 마음이 많이 상하신 것 같았다.   


손님은 숙소의 위치도 좋고, 주인장이 챙겨준 베이커리와 커피 맛도 모두 훌륭했지만 가격이 아쉬웠는데 N사 지도에서 예약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는 리뷰와 함께 3점을 남기셨다.


뭐 이런 일이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지만 나는 처음 겪는 3점짜리 리뷰에 무너져버렸다. A사로 이미 예약하신 분들이 걱정이었다. 이전 손님처럼 안좋은 리뷰가 달릴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분들에게 취소하고 N사로 옮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밤새 악성 리뷰가 폭탄처럼 쏟아지는 악몽을 꾸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다행스러운 건 A사로 들어온 성수기 예약은 총 3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N사였다. 나는 남편에게 차라리 A사 숙박 가격을 내리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면 수수료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받는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고, 적자가 날 거라고 말했다. (A사는 구매자, 판매자 모두에게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면서 남편이 내놓은 묘책.

 

 "그냥 A사로 예약해서 오신 분들한테는 우리가 초보사장인걸 말씀드리면서 성수기 요금에 수수료까지 비싼 금액으로 오셨다는 걸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대신 미안해서 추가옵션 비용 같은 거 받지 않고 불멍, 바비큐, 인덕션 다 서비스해드리겠다고 하자. 그럼 깔끔하지 않아?"


나는 깔끔하다기에는 너무 구구절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말을 혼자 주억거려 보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빼고, 그래도 예약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낫지 않을까'. '더 구구절절한가' 단어 하나로 또 고민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책이 없으니 남편의 말처럼 진정성으로 가보기로 했다. 소심한 나로서는 이것조차도 도박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손님들에게는 그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 그 이후 손님들께는 계속 5점을 받았고, 현재는 평점 4.98로 올라왔다. (예전처럼 5가 될 수는 없다... 한 번의 3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날은 성수기 진땀 빼고 나서 파김치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데 남편이 다가왔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둘째가 좀 더 크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고쳐서 에어비앤비로 돌리잔다. 와씨 나는 지금 하나로도 벅찬데, 게다가 나는 카페 하고 싶다고 누누이 얘기 했는데 또 에어비앤비라니. 그럼 우리는 어디에 살 거냐고 물으니 아파트로 나가면 된단다. 동네 시세를 알아보니 보증금 2000에 월세가 80 정도 한다며. 남편의 요지는 현재 우리 집은 방이 두 개뿐이고 아이들은 커가고 첫째가 사춘기가 되면 방 하나를 더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 집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니 아파트로 나가자는 것. 그곳에서도 자연은 충분히 자연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처음 살아보는 이 주택의 삶이 좋다. 텃밭도 가꾸고, 층간소음도 없고. 이렇게 살려고 서울을 떠난 건데 굳이 또 아파트를 들어가자니. 게다가 월세 80을 감당이나 할 수 있는 건지. 내가 원하는 카페는 너무 레드오션이라 돈 벌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남편은 숙소를 한 채 더 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서 고민해봐야 할 옵션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머리로는 동의.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때의 나로서는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고 싶은 모습과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슬펐다. 로또나 당첨되었으면 좋겠다. (사지도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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