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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실손 보험

시골숙소 사장의 희로애락 4. 사장단 휴가 다녀오니 재앙이 시작되었네

by 문슬아

2025년 3월 3일에 씀. (뒷북 업로드)


치앙마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오늘로 2주가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긴 겨울 방학도 느리지만 꾸준히 시간이 흘러 내일 개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얄궂은 인생사는 늘 일의 마무리를 목전에 두고 뒤통수를 때린다.


첫째 아이가 어제 오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저녁에는 열이 39도를 넘었다. 휴일 아침 속초에 문을 연 소아과는 단 한 곳이었다. 그마저 오전진료만 한다니 아침부터 몸을 바삐 움직였다. 아이는 병원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양의 구토를 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는 모르겠지만 10살짜리 남자아이를 들쳐 업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뒤따라온 남편이 병원에서 얻은 봉지와 휴지를 들고 사투의 흔적을 치웠다.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이는 저녁때 한 번 더 많은 양의 구토를 했고, 머리가 지끈거려 끙끙 앓다가 기력을 다 써 잠이 들었다. 나름 엄마 10년 차인데 간병의 노하우야 조금 생겼지만은 눈앞에서 아파하는 아이 곁에서 내 마음은 여전히 무력하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아픔은 당사자의 몫이어서 내가 그 고통을 없애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어떨 땐 심오한 철학 수업 같다가도 깜빡이 없이 들이닥쳐 현실의 균열을 내어 정신없이 땜질하게 만드는 현장 실습 같다. 슬픔이 가득해도 윤동주의 시처럼 ‘와짝’ 눈을 뜨고 살아내야 하는. 열흘의 여행 기간 동안 빈 집이었던 숙소는 겨울의 혹독한 시련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온수기가 동파되어 터져 버렸고, 흘러나온 물이 타일과 바닥 밑으로 스며들어 전기패널 보일러가 누전됐다. 방학 중인 아이와 외출하던 길에 조수석 앞바퀴가 찢어져 렉카 뒤에 실려서 정비소로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지난 수요일부터는 둘째 아이가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고 조금 나아지니 어제부터 첫째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늘은 겨우내 안 오던 눈이 한꺼번에 내렸는지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이는 폭설을 기록했다. 3월 둘째 주까지 거의 공실 없이 채워져 있던 객실 예약 손님들에게 한 분씩 전화를 돌리며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취소했다. 다음 주부터는 어마어마한 숙소 대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쯤 되니 이게 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렇게 된 것만 같아 괴로운 심정이었다. 돈도 없는 주제에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왜 무리를 했을까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태국에서 첫날 밤 첫째 아이가 한국이 그립다면서 엉엉 울었을 때 일찌감치 돌아왔어야 했나.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열일하며 ‘2월은 영업을 하지 않아 매출이 없다’, ‘여행경비는 예산을 넘어섰다’, ‘타이어 교체 약 100만 원’, ‘3월 예약 취소로 또 매출이 없다’, ‘공사비로 몇 백만 원이 들 것이다’는 현실을 자각시켰다. 괴로움에 좀비가 된 나를 긍휼히 쳐다보던 남편이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들이 하나도 들어먹질 않았는데 잠들기 전 무심한 듯 건네준 말에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여행 다녀와서 정말 좋아. 지금 힘든 일들은 지나고 나면 생각도 안 날 텐데 우리가 함께 여행한 순간들은 평생 남을 것 같아. 지금 아니었으면 못 갔을 여행이기도 하고. 다신 없을 기회였을지도 몰라


얼마 전 SNS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어린이들 생일날 케이크 칼 잡아보고, 어린이날에 솜사탕 먹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양말 걸어보고 하는 것들이 ‘영혼의 실손 보험’이라고. 무진장 소액이어도 그 기억은 100세 만기라는 짧은 글이었다.


일곱 살 때 한참 눈 많이 온 날 놀이동산 간다고 아빠 차 탔을 때 아빠가 카드로 성에 낀 앞 유리를 긁어내던 모습 보며 설레던 기억, IMF 때 실직당한 아빠는 엄마와 함께 조그마한 꽃집을 하면서 내 초중고 졸업식에 한 번도 못 올만큼 억척스럽게 사느라 가족과의 시간 같은 건 별로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여관’이라는 글자를 우연히 발견하는 날이면 꼭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어릴 때 살던 반지하 집에 물난리가 나서 온 가족 모두 근처 여관방에서 밤늦게 군고구마 까먹으며 얘기하다가 아빠 방귀 냄새에 엄마가 기절초풍하며 창문을 여는 모습에 깔깔대던 기억. 돈 벌어 자식 키워야 하는 운명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아주 잠깐 내려와 나에게 곁을 내어주던 엄마의 살 냄새, 아빠의 방귀 냄새 같은 것들이 힘든 삶에서도 잠시나마 웃게 해주는 영혼의 실손 보험 이라니 정말 근사하다.


비록 치앙마이 여행과 맞바꾼 현실은 결코 ‘소액’은 아니지만, 그래서 향후 몇 년 간은 한눈팔지 말고 억척스럽게 살아야겠지만 그 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영혼을 웃게 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정말 좋겠다. 아픈 날이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곁에서 밤새 자신을 지켜주는 엄마의 손길이 먼 훗날 힘들고 지칠 때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그런 기억이 될 수 있다면. 예측할 수 없는 삶과 죽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나마 들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의 보험을 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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