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크게 그린 사람>, 한겨레출판, 2022
좋은 인터뷰어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틀을 넘어서는 세계관의 확장이 필요하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가 필요하고, 그 중에서 필요한 렌즈를 골라 쓰는 법도 알아야 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닫힌 글이 아닌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열린 글을 쓰는 역량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상이 축소해 버린 사람의 목소리에 찾아가고 귀 기울이는 태도일 것이다. 어떤 인터뷰어가 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게 해준 은유 작가님의 책. 크게 그린 사람.
은유 작가님이 크게 그린 사람의 모습을 한 문장씩 적어보았다.
1) 업고 걷기, 홍은전(인권기록활동가)
"망원경으로 차별 시스템 같은 사회구조를 보다가 현미경으로 인간 내면의 고통을 관찰하는 홍은전"
2) 효자 아닌 시민, 조기현(청년 예술가)
"분노를 성찰로, 고립을 공존으로 착실히 바꿔낸 청년 예술가"
3) 생각보다 부서지기 쉬운 한 명, 원도(과학수사대 경찰)
"'한 인간이 되는 일은 때때로 인간들을 감내하는 일'(카프카)임을 잊지 않는 시민"
4)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김용현(자연주의자)
"땅에 버린 도라지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는, 자연이 베푸는 기적에 반해 씨돌이 된 사람. 한국 민주주의 역사 뒤뜰에 떨궈진 요한이라는 씨앗. 측은지심을 잃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끌어올린 용현"
5) 나답게의 힘, 임현주(아나운서)
"방송에서 관상용 화초로 고정되길 거부하고 폭넓은 활동성을 확보한 그"
6) 아들의 방,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무지개보다 더 예쁜 미숙이 속마음'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김용균'들을 구하는 세상의 빛이 되고 있다."
7) 노래 속의 대화, 시와(가수)
"가수와 팬 사이에 암묵적으로 형성된 위계와 과잉된 자의식의 예술가라는 익숙한 전제를 뒤집어서 자신의 노래와 향기를 지키는 사람, 시와는 '노래 속의 대화'로 생에 다가가는 방법을 입증하고 있다."
8) 서로의 곁, 김중미(소설가)
"가난하면 무시당하고 가난하면 도태되고 가난은 영혼을 파괴한다는 단 하나의 앙상한 정의만 위력을 발휘하지만, 가난은 꼭 그런 게 아니라고 삶으로 글로 내보이는 김중미"
9) 사람이라는 희망, 이영문(국립정신건강센터장)
"그는 지치지 않고 희망을 말하기로 유명한데 그건 유토피아를 꿈꿔서가 아니라 세속의 아픔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10) 가까이 서 있는 것, 김혜진(소설가)
"한 편 한 편 연결하니 그만의 별자리가 또렷하다."
11) 두루두루 이롭게, 민금채(지구인컴퍼니 대표)
"민금채 대표는 견실한 행동주의자다. 바퀴 달린 사람처럼 어디든 간다."
12) 미안함의 동력,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이 모순과 분열을 겪어내며 그는 좋은 의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매 순간 질문하는 의사로 산다."
13) 시대의 복직,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철들고 나서부터" 이 사회가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수치심을 떳떳함으로 바꾸기 위해 싸웠다."
14) 멋있지 않아요? 수신지(만화가)
"그가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힘을 풀어내는 속도와 방식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15)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장)
"내 삶에 존재하는 타인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구분하고 조화로운 화음으로 연주하는 자기 삶의 지휘자"
16) 문제는 잘 싸우기, 박선민(국회의원 보좌관)
"오늘도 국회가 시끄럽다면 그건 사회적 갈등이 국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증거다. 건강한 심박동 소리다. 이 소란을 통과하고 나면 또 누군가의 삶의 자리가 생기고 숨 쉴 구멍이 나는 것을 박선민 보좌관은 많이 보고 먼저 본 사람이다."
17) 작은 목소리라도, 김도현(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은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다."
18) 우리 같이 있어요, 김현(시인)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 은근히 다 듣는 사람, 감정의 섬세한 조율사, 기억하는 사람, 그래서 미덥고 든든한 사람이다"
반짝이는 구절들
이야기는 힘이 세서 견고한 관념을 부순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내 감각과 정신의 속성을 천천히 바꾼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두어야 내가 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10
여기에 담긴 18명의 인터뷰는 그들의 증명사진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그린 그림'이다. 내 눈에 멋있게 보이는 모습이나 내가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시지를 확대해서 쓴 글이므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