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루리, <긴긴 밤>, 문학동네, 2021
네가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거든. 나는 항상 남겨지는 쪽이었지. 내가 바보 같지만 않았어도, 용감하게 가족을 지킨 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다리를 절지만 않았어도, 마음씨 고운 앙가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유쾌한 치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항상 나를 괴롭게 해. 차라리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야.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나는 노든의 말대로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았다.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본 적도 없는 치쿠와 윔보의 몫까지 살기 위해 살아 냈다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냈다. 그들의 몫까지 산다는 노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 후로도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소설 《긴긴밤》의 한 대목이다. 먼저 떠난 이의 몫까지 살아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의 죽음이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기에 살아있는 동안 살아'내야'하는 것들에 대해.
한동안은 세상과 신에 대한 분노가 냉소로 변해 무기력했다. 그런데 나에게 냉소할 자격이 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나로부터 세상에 온 아이들이 우리 세대가 세상에 잘못한 몫을 치러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냉소하나. 냉소라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다 먼저 떠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모른채하는 일이지 않나.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SNS를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문득 얼마 전에 떠난 그가 자꾸 생각난다. 생각이 나면 잠시 머리가 멍해지고, 이내 슬픔이 몰려온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어서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미안해지기도 한다.
평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 늘 먼저 안부를 물어봐 준 사람. 솔직한 사람. 그 사람의 세계를 둘러싼 것들은 나를 둘러싼 것들과 교집합을 이룬다. 겹쳐진 곳 위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을 생각해본다.
미뤄왔던 후원, 접었던 꿈, 이정도 쯤이야 하고 넘겼던 지구에 대한 무책임함, 먼저 연락하지 않는 관계의 게으름을 벗어나는 것. 긴긴밤을 지나보내고 자신의 세상을 향해 뛰어든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않은 흰바위코뿔소와 펭귄의 기나긴 여정을 보면서. 또 앞으로 그들이 각자 지나보내야 할 긴긴밤들을 떠올려보면서.
그가 겪었던 기나긴 밤과 내가 살아내야 할 기나긴 밤들 앞에서. 냉소하지 않고 찾고, 걷고, 실행하는 내가 되기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