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고성에 이사 와서 처음 겪는 강원 영동지방의 양간지풍의 위력은 어마무시했다.
8톤 트럭이 시속 100킬로로 우리 집 옆을 달려가는 것만 같은 거대한 바람이 밤새 창문에 부딪혔다. 양철지붕과 빗물받이의 연결부위가 돌풍에 끊어져 빗물받이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이러다 집이 뽑혀 나가는 건 아닐까 공포에 떨며 잠을 설쳤다.
그제는 하루 종일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집 현관문을 혼자 여는 게 버거울 정도로 바람의 저항이 셌다. 혼자 걷기가 힘든 구간도 있었다. 살면서 매해 태풍을 겪었는데도 이 같은 매서운 바람은 처음이었다. 벚꽃 필 때면 바람이 심하니 불조심하라던 KT 전화국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 동네는 2년 전 산불이 크게 났다.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첫째가 다니는 학교도 불에 타서 다시 건물을 짓기도 했다.
매해 산불 대비를 철저히 한다고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앞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데, 결국 옆동네 강릉에 산불이 크게 났다. 야산에서 난 불이 강풍을 타고 민가로 급속히 불길이 퍼졌다. 올해 처음으로 산불대응 3단계가 발효됐다.
대형산불은 발생 8시간 만에 주불 진화가 완료되었지만 재발화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산불이 퍼진 곳 근처에 친구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늦지 않게 대피할 수 있었고, 다행히 집에도 큰 피해가 없었지만 친구는 자신이 매일 찾던 숲이 재가돼버린 처참한 상황에 슬퍼했다. 여전히 집 근처에 잔불이 남아있고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한다.
이번 산불로 1명이 생명을 잃었고 17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재난 앞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 생명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철컹 내려앉는다. 목숨을 걸고 화마로 향하는 소방대원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슬프고 화가 난다. 이 와중에 여전한 개발바람이 또 다른 재난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태계가 살고 있는 산을 깎아 케이블카를 만든다고 하고, 경포초당 일대지구에는 초고층주상복합화 개발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집 앞으로는 KTX 선로가 깔릴 것이고, 선로가 설 자리에 있는 분홍 꽃이 곱게 핀 복숭아밭도 토목으로 갈려나갈 것이다.
집 앞 복숭아꽃밭 산책길, 꽃이 핀 자리에 철길이 들어설 예정이다.
뭐라도 해야지 않을까 싶다. 냉소만 하지 말고, 걱정만 하지 말고. 이제 막 강원도민이 된 나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만 하지 말고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