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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Feb 21. 2024

무슨 개똥 같은 소리



작년 연말,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kbs 연기대상을 휩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에이 뭐야! 대상은 안 봐도 강감찬이네, 크~ 쓰다 써~ 레드는 왜 이리 쓰냐~ 엄마, 다음엔 화이트 모스카토 도수 낮은 걸로 사 스파클링 있는 걸로~



, 불경스러운 나의 태도는 엄마의 잔소리 버튼을 누르기에 충분했다. 엄마는 나의 요구에 콧방귀를 뀌며 결혼과 가정, 자식으로 이어지는 삼단콤보를 날렸다. 얼른 결혼해서 가정을 이뤄야지 나중에 혼자 남으면 어떡할래, 남편이 속 썩이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없는 것보단 나아요, 자식도 키울 때 좀 힘들어서 그렇지 다 키워놓으니 얼마나 좋, 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잖아, 그리고 너 새로운 거 좋아하지? 결혼하고 아이 낳아봐라, 매일매일이 새로워! 더 나이 들잖아? 낳고 싶어도 못 낳아요!



나는 언젠가 다큐에서 봤던 LAT(Live apart together)족을 들먹이며 요즘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아냐  반격에 나섰다. LAT족은 말 그대로 따로 함께 사는 커플 혹은 부부를 일컫는다. 이들은 각자의 거주공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주일에 며칠씩 상대방의 집에 머문다. 서로의 생활공간을 온전히 포개지 않는다. 각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에, 가족이 아닌 남녀의 사랑으로 애틋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엄마는 무슨 개똥 같은 소릴 하냐며 귀를 닫았다. 그리곤 결혼 안 할 거면 독립해서 나가 살아라, 엄마가 다해주니 호강에 겨워 저런다며 잔소리 폭격 2탄을 발사했다. 언제부터 딸내미 결혼과 독립이 엄마의 지 소원이 되어버린 걸까? 언제는 결혼 같은 거 안 해도 된다더니. 서른 후반이 다가오고 남차친구와의 연애가 10년에 가까워질수록 엄마의 재촉은 커져만 갔다.



물론 LAT족을 진지하게 생각한 건 아니다. 비혼으로 연애만 해야겠어!라고 다짐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10년간 연애를 한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 4계절을 10번이나 함께 보낸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뭐 하나 진득하니 못하는 내가 10년이나 한 사람을 만난다면 상대방은 얼마나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인 것인가.



문제는 로망이 실현되고 나서부터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나의 로망은 착실히도 실현되었다. 여전히 김밥씨(*남자친구)와의 만남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문제가 있다면 나의 로망이 실현될수록 엄마의 잔소리는 커져만 갔고, 나 스스로도 마음 한구석에 의심과 불안함이 다크서클처럼 짙게 자리 잡았다는 거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연애 10주년, 임용 10주년, 텐텐...?! 삶의 변화를 주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닐까 싶어 미루고 미루던 독립을 현실화하기로 마음먹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그리고 돈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아닌지는 직접 몸으로 겪어보고 판단할 것이다. 다크서클을 몰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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