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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Feb 24. 2024

뒤늦게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집 지키는 똥강아지로 쭉 버텨보려 했으나 올해도 시집 안 갈 거면 제발 좀 나가라는 레퍼토리를 999번쯤 듣다 지쳐 마침내, 독립을 결심했다.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돈의 힘이 다. 개미 같은 부모님 밑에 얹혀산 베짱이는 마침내, 두둑한 만기적금을 손에 쥐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봄이면 장미넝쿨, 여름이면 수국, 가을이면 모과나무, 겨울이면 눈사람으로 작고 귀여운 나만의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어야지.. 실내 인테리어는 한옥 스타일에 나무색과 하얀색으로 따뜻하고 단정하게, 커다란 창문과 높은 층고로 개방을 더하고 비밀스러운 다락방도 포기할 수 없잖아..'



살고 싶은 집과 살 수 있는 집 사이의 거리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고도 멀게만 느껴다. 솔직히 큰 욕심 없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혜원이네 집 정도면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마당 있는 단독주택욕심이 꽤 많다고 해야 할까?



네이버부동산 매물을 뒤적거린다. 검색 요건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매매? 전세? 월세? 원룸? 투룸? 빌라? 아파트? 오피스텔? 세분화된 선택지 앞에서 나는 그 무엇도 택하지 못한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이제껏 본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120개월간 쌓아 올린 나의 두둑한 만기적금으로는, 매매는커녕 전세를 구하기도 빠듯해 보였다.



엄마는 모로코 어쩌고 하는 이웃 동네 오피스텔을 추천했다.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그곳은 살기에 꽤 괜찮아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맛집과 카페인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외치며 야생인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타고나길 예민하게 생겨먹은 나는 산과 물을 지척에 두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산임수다. 귀농하기 딱 좋은 취향이다. 산과 물, 산책로가 잘 조성된 지금의 동네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이틀 휴가를 내고 동네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 구조가 다른 7평짜리 오피스텔 두어 개를 둘러봤다. 몇 년 안 된 신축에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인덕션 수납장 옷장 선반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단,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전에 신혼부부가 던 곳이라며 2명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강조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도통 불가능해 보였다.



160센티가 채 안 되는 키에 45킬로가 조금 넘는 작고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내 한 몸 뉘 일 곳은 바다만큼 넓고 우주만큼 다채로웠으면 하고 바란다. 맞다, 바라는 게 너무나 많다. 생각이 많고 감정적이며 시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모두 예민 나를 담기에 7평은 너무 작아 보였다.



다음 소형 아파트 전세 투어. 준공연도 2000년대에서 90년대 후반 초반까지 시간이 빠르게 역행다. 이러다 80년대 아파트까지 가면 어쩌나 우려하던 찰나,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올수리, 방 2개, 오래된 아파트답게 베란다 있다.



확장하지 않은 베란다는 한옥의 툇마루 역할과 비슷하다. 안과 밖. 안이면서도 온전히 안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바깥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공간. 나는 그 애매모호한 공간이 생각의 을 내어주고, 쉼을 제공한고 생각한다.



집을 볼 때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던데 하루 만에 결정을 하고 나니 어쩐지 조금 싱겁게 느껴졌다. 아이가 셋이라는 집주인은 혼자 살 꺼라는 세입자가 은근 맘에 드는 눈치다. 몇 번의 서명과 계약금 10프로 이체, 부동산 아주머니의 설명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내 손에는 핫핑크 부동산 비닐 파일이 들려있었다.



이사까지 약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다. 아무리 소형이라지만 이사는 이사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구매해야 할 것이 산적해 있지만 나는 그새 또 잡념에 빠져든다.


베란다에 고구마와 튤립을 심으면 과연 누가 더 빨리 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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