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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Apr 14. 2024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내려 쌓이면



"머리 밀고 싶어요. 빡빡 시원하게. 아니 한 번도 머리빨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놓지도 못하고 힘들게 감고, 팔 떨어지게 드라이하고 아무 의미 없는 머리카락에 평생을 시달리는 느낌이에요. 깔끔하게 밀면 쓸데없는 것도 없어지고 세상 가벼울 것 같아요."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에서 -



다시 봐도 명작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이 쏟아내는 주옥같은 대사들을 뒤로하고, 그녀의 언니 염기정이 뱉어낸 저 이야기는 유독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아무 의미 없는 머리카락에 평생을 시달리는 느낌.



시작은 아마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부터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숏컷이라니. 가차 없이 잘려나가는 머리카락 앞에서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 미워를 수천번은 외쳤겠지.



물론 지금이야 이해는 간다. 엄마 본인 머리도 귀찮았을 텐데 긴 머리 두 딸들까지 매번 세트로 감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육아의 팔 할은 체력이니까. 그래도 남자머리는 너무너무 다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숏컷. 그 당 사진 속 꼬마에게 커트머리는 꽤 잘 어울려 보인다. 혹시 나의 인생머리는 숏컷이 아닐까? 거울을 쳐다보고 이내 각성한다. 티끌 없이 맑고 하얀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갸름한 얼굴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어깨선의 머리 길이를 유지하며 쫑쫑쫑 머리를 땋고 다녔다. 엄마 머리 묶어줘~ 이쁘게 이쁘게~ 하나로 묶어 땋기, 양갈래로 묶어 땋기, 반묶음해서 땋기, 디스코머리 등등 엄마는 나의 머리를 나는 바비인형의 머리를 부여잡고 늘 지지고 볶았던 기억이 난다.  



새 시대가 열렸다. 귀밑 3cm.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머리땋기와 씨름하시기도 막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중학생 3년만큼 머리카락에 무심했던 시절도 없다. 강제적인 규율 앞에서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 앞머리도 없는 칼단발을 유지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당시의 강압적인 두발규정과 자유로운 학교체벌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진즉에 자유의 붐이 일렁인 곳도 있겠지만 우리 동네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고수했다.   



그러더니 격변의 시기 20세기가 지나 자유가 꽃피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두발자유화가 시행된 것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미용실로 달려가 매직을 했다. 지금 보니 단어가 좀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반곱슬의 머리를 챠르륵 윤기 나게 바꿔주는데 매직 시술 만한 것이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본격적으로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았다. 각종 펌과 염색을 시작했고 간헐적이던 머리색 바꾸기는 20대 후반부터 분기별 행사로 자리 잡았다. 컬러에 대한 나의 선택은 늘 보수적이었다. 갈색머리.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붉은빛이 도는 컬러로 바꿔보지만 1달도 채 못되어 이내 갈색으로 되돌아갔다.



줄기차게 뿌리염색을 해댔으니 잘 알지 못했다.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염색이 지겨워져 미용실 방문이 1분기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DNA에 입력된 인간의 자연수명은 38세라고 하더니 역시 귀신같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사나흘 간 지속되는 피곤함. 금세 푸석푸석해지는 피부. 눈가주름 팔자주름, 그리고 두피 이곳저곳 쉴 틈 없이 발견되흰머리.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내려 쌓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진다. 아이고 나도 늙었네.. 청춘을~ 돌려다오~ 췟! 이왕 검은 머리로 태어난 거 죽을 때까지 그냥 이 머리카락 그대로 쭉 살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렇게 꼭 노화의 티를 내야겠냐고!! 



마음은 어느새 울적함과 서글픔, 대상 없는 분노 사이를 정처 없이 부유한다.



환갑이 넘은 엄마는 3, 4주만 지나면 머리 위로 대설경보급의 폭설이 내려 쌓이고, 아빠는 그마저도 벚꽃비 내리듯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고 있다.



일 년 열두 달 하는 염색에 스트레스받는 엄마는 가끔씩 백발을 언급하고, 사라져 가는 머리카락에 스트레스받는 아빠는 삭발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엄마는 결사반대를 외친다. '당신은 두상이 커서 삭발 안 어울린다니까 그러네'



이쯤 되니 옆집 사는 할머니가 떠오른다. 이사 첫날 현관문을 활짝 열고 쒹쒹 거리며 청소를 할 때였다. 허리가 160도 정 굽었고 나이가 족히 여든은 된듯한 노모는 유독 새까맣고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새로 이사왔슈?' 아.. 할머니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구나.



으로 얼마나 머리카락에 시달리게 될까. 얼마나 더 머리카락과 씨름해야 할까.?



별수 없다. 자연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삶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폭설이 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해두어야겠다. 앞으로 벌어질 머리카락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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