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 보니까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어. 주변에 누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마음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걸 여과 없이 느끼는 순간.
이를테면, 나 혼자 산다 기안 84가 뉴욕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모습을 봤을 때, 드라마 인간실격 전도현의 대사를 들었을 때,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눈물 같은 거, 그게 내겐 늘 메말라 있다 생각했는데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게 새삼 당황스럽고 그래, 인간이란 게 참 신기하지.
저거 연출이잖아, 어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지? 몰입을 못하는 건가? 머리만 굴려댔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게 설령 가족이어도.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순식간에 슬픔을 저 깊숙한 곳에 가둬버리고, 없는 척 덤덤한 척 무신경한 척
그러다, 오롯이 혼자 지내며, 의식해야 할 시선이 사라진 공간에서, 마침내 나의 슬픔이는 봉인 해제되어 예능을 보고도 눈물샘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어.
급하게 휴지로 눈물 콧물 닦다 보면 어머, 내가 왜 이러지.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느 날 드라마를 보며 훌쩍이는 스토리가 겹쳐져.
그동안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눌러놓은 줄도 몰랐던 눈물을 새롭게 마주한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