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사무실에서 일이 가장 몰리는 계절, 숨이 턱까지 차 헉헉거린다. a를 하고 있는데 b가 징징거리고, 그 와중에 c가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어이, 담당자? 빨리 좀 처리해 줘. 일들이 서로 경쟁하듯 책상 앞으로 밀려든다.
이럴 때면 주변 모든 게 거슬린다. 사무실 의자도 불편하고, 잉잉거리는 컴퓨터 프린터 에어컨 소리도 거슬리고, 차가운 형광등 조명도 마음에 안 든다.
사람은 어떤가? 못마땅해하는 얼굴, 히죽히죽 거리는 얼굴, 지루해하는 표정, 잔뜩 긴장한 표정, 권위 있는 척하는 얼굴, 억지로 웃는 얼굴, 거짓을 말하는 얼굴까지
게다가 야근이 확정된 날. 멍하니 회의에 참석해 있는데, 회원 한 분이 온 지 얼마 안 되어 서둘러 나가셨다. "친구 놈이 죽었대, 출석은 한 걸로 해줘, 먼저 갈게."
그분은 80이 다 되셨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애써 담담할 수 있는 나이가 있을까 싶다마는 그분은 무척 담담해 보였다. 문뜩 낯선 감정이 스쳤다.
아장아장 걷고 밥을 먹고 학생이었다가 선생이었다가 자식이었다가 부모였다가 젊은이였다가 어르신이 되었겠구나. 그러다 어느 날 가겠구나. 당신도 나도 그렇겠구나.
아무 말 대잔치를 쏟아내는 회의장에서 입도 뻥긋할 일이 없어, 하릴없이 손목에 있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일이 제 발로 몰려드는 상상을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일을 짊어지고 오는 인간도, 내가 컨펌받아야 하는 상사들도 모두 미워했다.
분노를 품고 열기를 쏟아내다 지친 나는 이내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냉기로 가득했다. 몸속이 차갑다.
고만고만한 인간이 참 속 시끄럽게도 산다 싶다. 냉기만 가득 품고 사니까 매일이 그렇게 힘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