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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 미터 앞 급 커브 구간입니다. 주의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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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찾기 위해 나는, 사주를 봤다. 사십여 분간 휴대폰을 부여잡고 낯선 아저씨와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며 구구절절 인생사를 논했다.
발단은 며칠 전 진로 문제로 너무 답답해 신점을 봤다는 친구가 꽤 용하다며 이래저래 썰을 풀어놨는데, 집에 화재가 발생할 뻔했다는 것과 친척어르신이 돌아가신 것, 그리고 현재 직업이 맞지 않아 고민인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줬다고 했다.
호기심 어리게 듣고 있던 나는 신점은 아무래도 무서워 유튜브에 사주팔자를 검색해 이곳저곳 알고리즘을 타고 끝도 없이 빠져들다 한 채널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고, 거금을 내고 전화 상담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년 전 종로 토익학원 부근 길가 천막에 앉아 사주를 봤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사주에 편관이 있다며 경찰과 군인이 아주 좋다 했다. 이번 아저씨께 그 이야기를 꺼내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 안 봐도 몇 달 안 배운 초짜일 거라고 확신을 했다.
경찰과 군인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나는 이번 아저씨는 또 무슨 말을 해줄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그는 사주팔자 구성 중 월지, 즉 태어난 달을 매우 중요시했다. 11월 7,8일 ~ 12월 7,8일은 '해수' 돼지다.
깜깜한 밤, 추운 겨울, 물의 기운.. 베짱이가 되라고 했다. 예술적이거나 엔터테인먼트, 힐링, 신나고 재밌는 일, 정신적인 분야의 일, 창의력을 쓰는 일,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쓰라고.
대한민국은 다들 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그러기를 강요하기 때문에 자기 성격대로, 사주팔자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신의 대본대로 살기에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 생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거라고 했다.
일정 부분 묘하게 수긍이 갔다. 하지만, 인간의 대본이 태어난 달로 정해진다면 1/12의 확률이라는 건데.
이건 좀 김 빠지잖아.! 아무래도 다음번엔 신점을 볼까봐:D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