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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Dec 17. 2024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그가, 결국 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곁을 떠났다.



https://brunch.co.kr/@msbae24/9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거나 감성적인 글로 추모하기에 그의 뒷모습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고, 그렇게 만든 건 12만 원을 지불할 의향이 추호도 없었던 나의 탓이다.



쿵쿵 두들기면 깨어나던 그가, 어느 날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대형폐기물로 분류되는 그를 온전한 모습으로 떠나보내려면, 김밥씨와 협심해 평상시 꽁꽁 숨겨둔 슈퍼울트라파워를 꺼내야만 했다.



허나, 김밥씨는 늦더위를 이유 삼아 폐기 수순을 계속해서 미뤘고 선선한 바람에 발이 시려 수면양말을 챙겨 신던 어느 날 밤,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히마가리 하나 없는 여자가 혼자서 대형폐기물을 버리기 위해서는 다음의 2가지 방법이 있다.

1. 내려드림 서비스를 이용한다.

2. 분해해서 버린다.



건장한 남성분이 내 집안에 들어와 물건을 번쩍 들고 폐기물 배출장소로 이동하는 내려드림 서비스는 12만 원. 나는 돈을 지불하는 대신 나의 노동력을 내다 바쳤다.



십여 개의 나사를 풀고 조각조각 분해시켜 가장 무거운 거대 조각에 망치질을 해 가며 다이소에서 2천 원에 사 온 고급형 캐스터 바퀴를 달아주었다.



총 다섯 번에 걸쳐 이고지고 요란법석을 떨며 폐기물 배출장소로 대이동을 했다. 상처투성이 분해된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의 끝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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