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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n 26. 2020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기

아침 루틴

 여름에 맞이하는 아침은 대부분 쾌적하지도 개운하지도 않다. 더위와 습기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몸과 정신이 찌뿌둥하다. 나의 아침 루틴은 그다지 상쾌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악취에서 시작된다. 

 6시에 일어난다.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이 상태는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악취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악취는 어제의 내가 죽어서 나는 시체 썩는 냄새다. 유쾌한 사실은 아니지만, 자연의 섭리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모호한 존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얼른 유튜브에 들어가 스트레칭 영상을 튼다. 10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이어서 5분간 명상을 한다. 눕고 싶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명상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다. 명상이 끝나면 어제의 나의 흔적을 없앨 시간이다. 여기저기 눌러져 있어 울퉁불퉁한 치약 튜브를 눌러 치약을 칫솔 위에 짠다. 그리고 열심히 이를 닦는다. 물로 입을 가글 하니 밤새 입을 벌리고 자서 아팠던 목이 좀 나아진다. 어제의 흔적을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살아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기에 오늘의 나를 불러 모으기 위해 빈껍데기인 상태로 샤워기에 물을 튼다. 더운물로 시작해 점점 물을 차갑게 한다. 물이 거의 냉수가 되었을 때 내면은 오늘의 나로 가득 채워지고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되는데 그 증거는 바로 입냄새이다. / 나도 저 오른쪽에 계신 분처럼 명상을 잘하고 싶다...

 내면이 오늘의 나로 가득 찼다면 이제 오늘의 나를 채워야 할 시간이다. 먼저 내가 사랑하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필사한다. 소설을 베끼는 동안 철저하게 싱클레어의 경험에 동반하고 몰입한다. 그와 함께 공포와 긴장에 떨기도 하고 또 안도하며 소설 한 장을 함께 한다. 내일의 동행이 궁금해 다음 이야기를 훔쳐본 뒤에 책과 공책을 덮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최근엔 프랑스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속초에서의 겨울’을 읽었다. 평소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내용도 부담 없이 잘 읽혔기에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요즘엔 정여울 작가의 ‘내성적인 여행자’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 좋은 문장을 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그들의 문장에 감탄하고 나도 언젠간 이런 글을 써보겠다는 욕구를 느끼며 독서를 한다. 

요즘 쓰고 보고 있는 책들! 다른 책들은 밀리의 서재에서 보고 있다. 얼른 더 다양한 책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ㅎㅎ

 이렇게 머리와 가슴에 무언 갈 채워 넣고 있으면 배가 고파진다. 다행히 가족들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기에 함께 건강한 집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식탁을 정리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책을 마저 읽은 뒤, 책상에 앉아 한글 파일을 연다.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 뭐 쓰지?’ 일상을 뒤적인다. 대개 읽은 책의 한 부분과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 그리고 일상이 무의식에 새긴 그 무언가가 합쳐져서 소재가 떠오른다. 그렇다고 엄청난 영감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침에 느낄 수 있는 ‘입 냄새’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입 냄새를 시체 썩는 냄새에 비유하며 혹시라도 글을 읽는 분들이 내 입 냄새가 심하다고 큰 오해를 하시진 않을까 생각하고, 난 그냥 평범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필요 이상의 설명을 곁들이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끝나면 조금 쉬고, 저녁 10시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공포의 프랑스어 받아쓰기 시간..... 너무 안 들려...... 프랑스어 공부하면서 가장 힘든 시간.... 말하지 않은 게 들리고 말한 건 안 들리는 이상한 체험을 한다....

 나의 아침 루틴은 하루를 조금 더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려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일상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변한 일상에서 많은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것이기에 오래 유지하고 싶다.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열심히 살며 언젠간 많이 성장해 있는 자신을 느끼고 싶다. 내일도 무사히 제시간에 어제의 나의 흔적을 지우고 오늘의 나로 내면을 가득 채우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들 /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자유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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