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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Mar 28. 2022

변칙적인 업계의 변칙 밖에 없던 그 해 봄

8회 말_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혼란의 리그 개막

NO JAPAN의 영향으로 회사는 한국을 대상으로 하던 프로모션을 모두 중지하고 또 하나의 타깃 마켓인 대만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마침 시즌이 끝날 무렵이라 다음 시즌의 프로모션을 이야기할 타이밍이었고 무엇보다 전사의 자원을 쏟아부은 신빌딩의 오픈이 다음 해 봄에 예정되어 있어 여행 준비기간을 고려해 겨울 즈음의 대만 현지 이벤트까지 구체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 준비단계로 현지 미디어와의 미팅과 콜라보 기획으로 함께 프로모션을 진행할 일본 기업의 대만지사 관계자 미팅을 겸해 가을 끝 무렵에 실장님과 타이베이로 향했다. 퇴근 후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온 타이베이도 반가웠고 새로운 부서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설레어 가지고 간 팸플릿이며 회의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이번 출장에 동행할 에이전시와 함께 대만에서 만날 미디어와의 미팅 내용과 프로모션 기획안을 다시 한번 점검했고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대 여섯 곳과의 미팅과 식사로 호텔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씻고 자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다행히도 대만 관계사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팀에서도 대만 야구계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수면하에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런 이야기도 함께하며 연초에 계획된 타이베이 현지 이벤트에서의 재회를 약속하고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이벤트가 구정 연휴와 겹쳐 사자춤도 볼 수 있었다.

다음 시즌 준비에 연초의 타이베이 현지 이벤트 준비까지 시간은 순식간이었고 타이베이로 향하는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중국발 바이러스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과 함께 후쿠오카 시내의 드럭스토어와 백엔샵에서 마스크가 이상할 정도로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바이러스는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무시무시한 뉴스들과 함께 중국을 넘어 한국과 일본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타이베이에서의 이벤트는 구정 설 명절 기간에 맞춰 준비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중국과 가깝기도 하고 교류가 적지 않은 곳이라 회사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대만의 철저한 방역태세로 중국에 비해 타이베이는 안정적인 상황이었고 국지적이고 단발적인 전염병일 테니 준비한 이벤트는 진행하기로 결정되어 실장님과 나는 다시 타이베이로 향했다. 평소에도 화분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본에서 마스크는 연중 판매되고 있었기에 구하기 힘든 건 아니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뉴스를 보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우리는 일본에서 마스크까지 챙겨 출국길에 올랐다. 다행히도 우리 이벤트는 무사히 시작할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시간을 두고 타이중에서 개최될 이벤트가 무사히 시작될 수 있을지 걱정을 가득하며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승무원들이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고 승객들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이 보였다. 출장 가기 전에 총무과 선배가 대만에서 돌아오면 격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두 달 정도 뒤에는 상황이 악화되어 원칙적으로 해외출장 자체가 금지가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출국을 금하는 통보가 사내에 내려졌다. 아직 일본 정부 혹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의 입출국이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의 일원으로 일하는 이상 나는 맘대로 한국의 집에 다녀올 수 없었는데 타이베이 출장 다음 주에 2박 3일로 잠깐 다녀왔던 서울 출장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렇게 잠깐 힘들 것 같던 상황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쓸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해외마케팅을 주 업무로 하는 우리 부서는 순식간에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외국사람들과 일을 하는 우리 부서만의 걱정이었는데 순식간에 코로나19는 일본 열도를 덮쳤고 벚꽃이 만개할 무렵 회사는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근무 방침을 정하고 부랴부랴 시스템이며 재택근무 환경을 만드는데 고생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이야기되던 재택근무 중에 도장을 찍으러 출근하는 일본의 회사원이 나였고 모두가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도장을 찍으러 출근해 서류를 제출하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덕분에(?) 전혀 안 될 것 같았던 전자서명이 회사 내에 도입되었고 국가번호 82의 나라에서 온 내 눈에는 답답했던 장면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마 했지만 비상사태를 선언한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무관중 오픈전도 모자라 정규리그의 개막도 연기가 확정되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장기간 연기였다. 그 사이 초기에 성공적으로 확산을 막은 대만과 한국의 프로야구가 관중 입장의 제약이 있었지만 개막을 맞이했고 여전히 일본의 NPB와 미국의 MLB는 개막이 미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의 초기 방역이 허둥지둥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NPB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을 주저하는 움직임이 보였고 우리 팀은 손 놓고만 볼 수 없어 기존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만과 한국의 각 팀 그리고 리그 사정에 대해 정보를 수소문하여 나름의 대책안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이었던지라 나도 한국에서 받은 가이드라인을 빠르게 번역하며 조금이나마 상황이 좋아지기를 하는 마음으로 도왔고 올림픽이 있어 안 그래도 빠듯했던 일정은 사상 초유의 올림픽 연기라는 결정과 함께 재조정된 일정으로 무관중 개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규리그 홈경기 약 70경기를 준비했던 직원들의 모든 준비는 대부분 보류 혹은 전면 중지가 되었고 납품일에 맞춰 발주했던 대표적인 응원도구인 제트풍선은 1년간 사용될 일이 없었다. NPB 각 팀이 거래하는 제트풍선을 만드는 회사가 두 군데 정도 있는데, 한 곳은 NPB에서 사용되는 각 팀의 주문만으로도 회사가 돌아갈 만큼 의존도가 높았던 곳이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 회사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선수들 또한 지난 시즌이 끝난 이후 개막만을 생각하며 몸상태며 모든 준비를 해왔지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계획했던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이 된 우리 부서는 가시방석 같은 상황에서 같은 본부의 다른 업무를 돕거나 해외리그와 팀과의 연결고리를 대신하며 나름 자리를 지켜나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주연으로 임할 수 없음에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회사의 큰 기대 속에 준비를 마친 신빌딩이 드디어 정식 개업일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로 바빠진 옆 부서의 일을 나도 정식으로 하게 되면서 어느새 본부의 모든 일을 다 담당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새로운 포지션과 함께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시즌이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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