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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Sep 28. 2023

가을 러닝

가을은 달리기의 계절이다.


 

  어렸을 적부터 가을 하면 천고마비니 뭐니 하면서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만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내게 가을은 달리기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가을에 달려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기가 달리기에 얼마나 좋은 계절인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새벽에 달려도 좋고, 저녁에 달려도 좋다. 그 선선함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달리는 동안 금세 몸이 달아올라 온몸은 곧 땀으로 서서히 젖는다. 질척질척한 여름의 땀과 달리, 가을에 흘리는 땀은 달리는 동안 마음에 달고 살았던 고민들과 함께 발산되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번에는 내가 달리며 느낀 달리기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게는 달리면서 하는 습관이 있다. 달리다 보면 길 위에 놓인 낙엽을 밟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그냥 어느 날 문득 달리다 길에 떨어진 낙엽 보고서 한번 밟지 않고 달려 보자는 마음이 생겼고, 그 후로 낙엽을 밟지 않고 달리게 되었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면 좋았지만 아니라서 미안하다.

 달리면서  싫은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추월당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앞질러 가면 그를 따라가기 위해 다시 페이스를 올려 달렸다. 그리곤 그를 추월해 버렸다.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러너 고수를 제치려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쳐 점점 멀어지는 고수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 모를 분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가끔씩 만나는 러너 고수는 내가 따라가는 것을 그도 눈치챘는데 페이스를 서서히 올린다. 그러면  나는 최대 몇 km 못 가서 다시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서 다짐을 했었다. 절대 러너들에게 추월 당하지 않겠다고. 아직 달리기에 대해 잘 몰랐던 시기의 일이다.  

  나를 앞지른 러너가 있으면 다시 곧장 속도를 높여 추월해 달리는 것이 내 달리기 패턴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올린 속도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그 러너에게 다시 추월 당했던 적도 많았고, 나를 앞질러 달렸던 러너를 곧 다시 만나면 (사실 이때만큼 묘하게 신나는 일도 없다.) 절대 내 앞을 지나가게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큰 시련이 나를 찾아왔다. 바로 무리한 달리기를 하다 보면 만나는 부상이란 녀석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달리기만큼은 지기 싫어했던 내가 모두에게 추월당한다. 부상으로 1km를 9~10분대로 페이스를 맞춰 달리기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날 앞질러 간다. 날 추월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미소가 그려진다. 달릴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해하며 즐거운 러닝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색깔 옷을 입는 시기이다. 나는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러너라는 옷을 입고서 다시 달릴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의 실패(부상)로 인해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소비했다. 이제는 즐거운 달리기로 제 2 막의 인생을 달려볼 때가 왔다. 

그런 나에게 가을은 이제 달리기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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