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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Mar 08. 2023

기내식이 언제부터 이렇게 맛있어졌죠?

0. 멕시코로 향하는 에어캐나다 & 기내식 이야기

기내식 먹기 싫어서 라운지에서 저녁 식사

멕시코를 가려면 캐나다나 미국을 경유한다. 다행히 경유시간은 약 4시간 정도, 꽤 넉넉한 시간이라 비행기 연착 등으로 놓칠 일은 없겠다 싶었다. 3월 4일 밤 7시 인천공항에서 착륙한 비행기는 3월 4일 밤 11시 50분, 멕시코에 도착할 예정이다. 경유 시간까지 포함해서 약 20시간의 비행인 셈인데, 새삼 15시간의 시차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저녁 비행 출발이라, 비행기가 뜨면 바로 기내식이 나오리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렸을 때  충격적으로 맛없는 기내식을 먹은 이후로, 비행기 기내식을 잘 먹진 않는다. 보통 시차 적응을 잠을 자면서 하는 편이기 때문에 중간에 억지로 깨서 기내식을 먹고 다시 자는 그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아서, 대개 '깨우지 말라'는 스티커를 좌석 앞에 붙이고 자곤 했다. (물론 시차적응이 필요 없는 나라로 방문할 땐 경우에 따라서 기내식을 먹기도 한다)


마침 이번에 사용하는 카드사 혜택으로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산뜻하게 식사를 하고, 비행기가 뜨자마자 바로 숙면 모드에 들어가야지 하는 게 내 목표였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어떠한 교통수단에서도 잠을 잘 자는 체질이었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라운지에서 구운 채소와 샐러드, 떡볶이 등으로 식사를 하고 하이볼과 맥주를 마셨다. 약간의 취기는 숙면을 취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비행기가 뜨면 조니워커와 토닉 진하게 타먹고 푹 자야지.


인도 카레의 향에 이끌려 기내식을 먹다

인천에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 이상하게도 난 인도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내 우측에 앉은 인도 여자는 핑크색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헤나가 손을 뒤덮고 있었고 손톱이 무서울 정도로 길었다. 저 손톱은 어떻게 관리하지? 나 같으면 금세 부러뜨릴 거 같은데. 여자의 앞엔 인도 시크교도 주황색 터번을 쓴 덩치 큰 남자가 앉아 있다. 이 둘은 일행인 듯했는데, 다소 불편했던 것은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이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 말 없이 좌석을 뒤로 젖혔는데, 얼마나 많이 제쳤냐면 내 쪽에서 그 남자의 옆얼굴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 내가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코 앞에 그 남자의 얼굴이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의 여자와 남자 간의 관계에는 무언의 상하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고, 여자는 되게 불편한 각도로 모니터만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비행기가 뜨고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승무원들은 그녀의 손에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사전 신청한 기내식이라 미리 전달하나 보다. 커리향이 진하게 풍기는 게 없던 입맛을 돋게 만들었다. 인도 6개월 여행을 마치고, 이젠 다신 살면서 커리 먹을 일 없을 거 같다고 다짐했던 게 10년 전이다. 그녀가 든 커리 도시락은 '기내식을 패스해야지'란 내 굳은 결심을 허물었다.


잠시 후 기내식 카트가 돌았고, 비프와 치킨 중 비프를 골랐다. 받아보니 기내식 구성이 꽤 풍성했다. 메인엔 소고기와 웨지감자, 삶은 베이비캐럿과 브로콜리가 있었다. 사이드 메뉴로는 엄청 큰 연근조림과 샐러드가 있었고, 항상 주는 모닝빵과 디저트 파운드케이크가 제공됐다. 나름 스테이크(?)인 만큼, 이건 위스키랑 곁들이고 싶단 생각에 음료수 카트가 돌 때까지 기다렸다. 조니워커와 토닉을 요청하고, 다소 템포 느리게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와 웨지 감자는 의외로 담백했다.

캐나다행 첫 번째 기내식

원래 내 기억 속의 장거리 비행기에서 먹는 비프들은 흔히 짜거나 이상한 느끼한 양념에 절여져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 받은 식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갈비찜 맛이었다. 이상한 콩, 옥수수가 아닌, 베이키캐럿과 브로콜리를 담아 야채 섭취를 할 수 있게 한 것도 좋았다. 사이드 디쉬로 나온 연근 조림은 의외였는데, 거의 내 손바닥 만한 이 연근 조림은 나름 한식 반찬으로 내놓은 걸까 궁금했다. 물론, 평범한 연근 조림이지만 연근의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나는 이 반찬 역시 만족스러웠다.


2번의 기내식과 샌드위치

비행기 탑승할 때부터 기내 방송으로 '이번 비행에선 2번의 기내식과 도중에 간식 샌드위치가 제공된다'라고 알렸다.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가장 먼저 급식 식단표 보는 그런 심리로, 나 역시 괜히 궁금해져서 모니터에 있는 '메뉴' 버튼을 클릭해 오늘의 메뉴를 확인했다.


인천에서 캐나다까지 우선 9시간 비행인데, 그렇다면 뜨자마자 기내식 1번, 한 3~4시간 후에 간식 1번, 착륙하기 직전에 아침(?)으로 1번 나갈 예정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의 생체 시간을 거스르고, 철저히 비행시간과 현지시간에 맞춰 식사 메뉴가 구성되는 것은 항상 묘하다. 예를 들어 나의 생체 시간은 이제 저녁 시간 먹고 자야 되는데 샌드위치 간식이 제공되는 격이고, 여전히 한밤 중인데도 불구하고 도착지가 아침 시간대이기 때문에 아침 메뉴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라운지에서 1번, 방금 먹은 저녁 기내식으로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중간에 샌드위치 간식은 패스하고 쭉 자고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국 시간대로도 아직 자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 걸까. 영화를 보면 잠이 오겠지 싶어서 드웨인 존슨이 나온 <블랙 아담>을 틀었는데 한 30분 지나니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살짝 선잠이었는지, 누군가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내 왼쪽(난 ABC석 중 최악의 B석에 앉아 있었다)에 있는 중국 여자였는데 "혹시 화장실 갈 때 알려주세요."라고 귓속말을 하는데 순간 무슨 말인가 했다. 그녀는 창가석에 있고, 나는 가운데, 내 옆의 인도 여자가 통로석이다. 내가 왜 화장실 갈 때 알려줘야 하는 거지? 그래서 이 친구가 영어로 잘 못 말했나 싶어서, 다리를 좌석에 바짝 붙여 지나가게 만들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옆에 여자분이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미안하니, 혹시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저랑 같이 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인도 여자가 아빠다리.. 를 하고 너무나 편하게 자고 있었다. 아, 깨우기가 미안하긴 하다. 그럼에도, 뭔가 이 중국 여자한테 내가 화장실 마려울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마침 그 인도 여자가 눈을 떴고, 우린 미안하다는 눈짓을 하며 화장실로 갔다.

간식으로 나온 샌드위치. 의외로 구성이 알차다

한 번 잠을 깨니 좀처럼 잠에 다시 들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좀 영화를 보면 졸릴까 했는데 선택한 영화가 생각보다 재밌어서 2시간 내내 다 봤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손엔 샌드위치가 쥐어져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이걸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것도 그래서 그냥 먹었다. 햄치즈 샌드위치였는데 조금 짭짤했지만 먹을 만한 정도였다. 내 옆에 앉은 인도여자의 샌드위치엔 과연 뭐가 들어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는데,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곤히 잠들었다. 비행기 좌석에서 아빠다리를 하고 잘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아침식사는 김치볶음밥으로

라운지에서 하이볼에 맥주를 마시고, 비행기에서 조니워커에 토닉을 말아먹었는데도 잠이 안 오다니. 취기가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술을 먹으면 잠을 자야 한다는 나의 지론에 따라 계속 잠자려고 했으나, 어느새 난 영화 3편을 다 본 상태였다. <에밀리 더 크리미널> <티켓 투 파라다이스> <블랙펜서>.. 그리고 아까 보다가 잔 <블랙 아담>을 셈한다면 3.5편 정도.

양이 혜자였던 김치볶음밥

결국 뜬 눈으로 아침식사까지 맞이하게 됐다. 입맛이 있고 없고 간에 캐나다 공항에서 4시간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건 먹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에그 오믈렛과 김치볶음밥 옵션이었다. 사실, 평소 같았더라면 에그 오믈렛을 시켰을 거 같은데, 이게 진짜 마지막 한식이다 싶어서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김치볶음밥에 불고기까지 가득 채워져 나왔는데 아침 식사 메뉴치곤 좀 과하단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꽤 맛있는 김치볶음밥에 의아해하며 남김없이 비웠다.


9시간의 비행기를 타면서 2번의 기내식과 1번의 간식으로 사육을 당한 느낌이었다.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엔 어떤 기내식이 나올까?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다음 모바일픽으로 발행 하루만에 1만뷰를 넘겼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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