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볼케이노 보딩과 집밥
화산의 나라, 니카라과
과테말라 활화산 트레킹을 한 이후, 나는 화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다양한 식생이 공존하는 푸른 산과 달리 뜨거운 기운을 꾹꾹 눌러 담으며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그 뜨거움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에서 니카라과 국경을 넘어가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역시 '니카라과는 화산국'이라는 사실이다. 엘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를 가는 여정으로 하루 만에 2개의 국경을 넘어야 했다.
약 10시간 넘는 여정 끝에 도착한 니카라과 첫 도시는 '레온(Leon)'이었다. 바로크 및 네오클래식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 도시로도 불리는 곳이다. 여전히 자갈길 위로 말이 끌고 가는 수레바퀴 소리가 정겨운 곳이기도 하다. 레온은 도시 자체로도 반일 정도 돌아다니기 좋은 소도시이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가 고대하던 액티비티가 있다. 바로 화산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볼케이노 보딩(Volcano Boarding)'이다.
가장 젊고 위험한 활화산에서 썰매 타기
니카라과 레온 근교에는 '쎄로 네그로(Cerro Negro)'라는 화산이 있다. 쎄로 네그로를 직역하자면 '검은 언덕'이란 뜻인데 그 뜻처럼 사실 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돌아가는 경로로 올라가는 일반 등산과 달리, 현무암 자갈들로만 삼각형으로 높이 솟은 언덕. 올라갈 때도 거의 산의 경사를 그대로 바라보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쎄로네그로는 1999년에 생성된 가장 젊은 화산이다. 1999년에 니카라과 서쪽에선 커다란 지진이 연일 진행되었는데 그 지진의 여파로 728m 높이의 쎄로 네그로가 생성되었다. 당시 쎄로 네그로는 이틀 내내 마그마와 화산재를 뿜어대며 인근 마을을 파괴했다. 지금도 활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매주 20년 주기로 폭발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물론 2023년인 오늘날까지 폭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볼케이노 보딩 가이드는 사실 오늘내일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산이라고 강조하며 자기네들도 폭발하면 마을이고 뭐고 다 도망가야 한다는 사실을 마치 농담처럼 말했다. 바닥을 발로 슥슥 조금만 파도 땅의 열감이 제대로 느껴지는 화산이다.
볼케이노 보딩은 각자 방진복(썰매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모래를 엄청 먹을 예정이므로)과 썰매를 들고 쎄로 네그로 정상까지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진복과 두건 마스크를 착용한 후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썰매는 볼케이노 보딩 목적으로 특수 제작되어 있는데 두꺼운 나무 판 밑에 납작한 썰매용 날을 바닥에 설치했다. 무게는 약 서핑 보드 수준으로 이걸 들고 약 40분 넘게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화산을 올라야 한다.
썰매를 타고 내려올 때 무게 중심을 잘못 조절하면 화산에서 데굴데굴 구를 수 있지만, 나무 등 부딪칠만한 언덕 없이 오직 현무암 자갈만 있기 때문에 크게 다칠 염려는 없다. 나름 썰매는 꽤 과학적으로 제작되어, 몸을 뒤로 젖히면 빠르게 나아가고 앞으로 숙이고 발뒤꿈치 세워 브레이크까지 걸 수 있다.
썰매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타고 내려가는 화산의 경사가 꽤 되기 때문에 겁이 많거나 고소공포증이 많은 분들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한 사람은 시속 172킬로 미터로 주파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그 여파로 상처와 뼈가 부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대체 활화산 썰매는 누가 개발했을까?
볼케이노 보딩은 니카라과 레온(Leon)의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이 되었다. 레온이란 작은 마을에서도 약 3~4개 업체가 볼케이노 보딩만 전문으로 매일 투어를 진행하는데 매 투어마다 약 20~40명이 조인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런데 대체 어느 작자가 휴화산도 아니고 활화산에서 썰매탈 생각을 했을까? 때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레온에서 볼케이노 보딩으로 유명한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는 호주인 Darryn Webb은 쎄로 네그로에서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이 활화산을 스노 보딩처럼 타고 내려오면 어떨까?라는 발상으로 매트리스부터 미니 냉장고 도어, 피크닉 테이블 등을 들고 가 내려오는 일명 '미친' 시도를 하게 된다. 서른 번 넘게 테스트하다가 그는 오늘날 볼케이노 보딩에 쓰이는 썰매의 원형을 착안하게 된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결국 레온 관광 핵심 비즈니스가 되었고, 지금은 수많은 액티비티 애호가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볼케이노 보딩과 점심식사
볼케이노 보딩은 한 호스텔에서 출발해 다 같이 뻥 뚫린 파티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커다란 스피커에 블루투스 연결해 흥이 넘치는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린 각자 어깨와 머리를 들썩였고, 종종 모두가 아는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떼창을 하곤 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지나가면 마치 놀이공원 타바타(탬버린) 기구를 타는 것처럼 등 뒤의 바를 잡고 들썩이는 엉덩이를 최대한 자리에 고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쎄로 네그로. 어쩜 식물 하나 없이 저렇게 까맣게 솟아있을까? 산이라기 보단 거대한 사막 같은데, 막상 올라가면 나름 분화구까지 있는 엄밀한 화산이다. 꽤 무거운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혹은 머리에 이고를 반복하며 올라갔다. 일부 관광객은 가이드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보드를 그들에게 맡겼다(등산 시 쉐르파 개념)
정상에서 주변 화산 지형을 둘러보고 우리는 방진복을 갈아입고 두건을 입에 둘렀다. 우리가 내려가는 경로 중간에는 사진 찍어주는 팀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들은 타고 내려가야 할 타이밍을 수신호로 주고받으며 우리를 1명씩 썰매에 태워 내려 보냈다.
약 45분간 올라간 화산을 약 2~3분 이내로 70도가 넘는 경사로를 따라 바로 하강하는데 처음부터 일부러 몸을 최대한 뒤로 젖혀 최고 속도로 내려갔다. 평소 겁이 별로 없는 나조차도 살짝 졸았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여기에서 날아가면 저 화산 아래로 수직으로 꽂히지 않을까 살짝 두려워졌다. 결국 살짝 발뒤꿈치를 세우게 됐는데 그 여파로 인해 썰매가 옆으로 돌아가며 썰매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다칠 정도는 아니어서 썰매를 툭툭 털고 재정비 후 내려갔는데, 가이드는 나에게 처음에 너무 빠른 속도로 가서 놀랐다며, 그대로 정말 잘 탔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볼케이노 보딩을 끝내고 우린 동일한 교통수단을 타고 볼케이노 보딩을 진행하는 호스텔로 귀가했다. 도착하니 니카라과 병맥주 1병과 카레향이 가미된 볶음밥+아보카도가 담긴 점심식사가 세팅되어 있었다. (투어에 점심 포함)
썰매를 들고 등산까지 하고 온 마당에, 점심은 간에 기별이 안가 살짝 아쉬웠지만, 뜨거운 화산에서 썰매 타고 내려온 우리에게 차가운 맥주와 갓 지은 따뜻한 식사는 식도에 들어가 살짝 꺼끌꺼끌함이 느껴지는 모래를 제거하는데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