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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Aug 05. 2019

살면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1인 1악기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에는 

자녀들을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게 꽤 유행이었다. (1998년~2002년도) 

우리 어머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8살, 나는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아파트 단지 앞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엔 오선지 노트 같은 거에다가 음표를 열심히 따라 그리며 음계를 익혔다. 그리고 이후 피아노를 조금씩 치는 것을 배워나갔는데 처음은 항상 재밌다. 

하지만 자발적 의지가 아닌, 타발적으로 배우게 된 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금새 잃었다. 무엇보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무서웠다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나는 당시 매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치다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선생님이 손등을 들고있던 볼펜으로 때렸다. 혹시나 틀리진 않을까 무한 눈치를 보다보니, 적극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게 되고 점점 피아노가 싫어졌다. 

별의별 장조니, 단조니 이론적인 것을 오랫동안 배웠지만 왜 저걸 배워야하는지 어떻게 써먹는지도 몰랐다. 

당시 선생님은 노처녀 히스테리 (왜 꽤 많은 확률로 음악선생님, 피아노 선생님은 노처녀 히스테리가 있는 걸까.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들도 다 결혼을 하지 않으신 독신 40대 여성들이셨다)를 부리는 양, 내가 말귀를 잘 못알아들으면 소리를 빽 지르곤 하셨다. 내가 피아노를 6년이나 배웠고 소나타 40번까지 쳤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피아노를 못치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나는 피아노 오른손만 연주할 수 있고 왼손 주법은 어떻게 연주했는지 까먹었을 정도다. 당시 거의 돈 주면 주는 듯한 피아노 급수증도 땄지만 결국 피아노 연주는 내 것이 되지 못한 셈이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전까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미술과 함께 음악이었다. 

잘 못하겠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싫어졌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난 후 

주변 몇몇 친구들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타는 20대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인기 있는 악기 중 하나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악기 배우는 것에 덜컥 겁이 나있었다. 

피아노 배웠을 적의 악몽이 생각나서 선뜻 시작을 못하는 것이다. 

우연히 한 영화를 보았다. 

꽤 유명한 고전 명작이었는데 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담배를 문 채로 바이올린을 켜면서 말한다. 

"살면서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없다면, 껍데기 같은 삶에 불과하지"


정확히 이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저 대사의 여운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셜록 홈즈 역시 바이올린을 취미로 하지 않나. 갑자기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퍽 우울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무슨 악기를 할까 고민을 했었다. 기타나 피아노처럼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걸리고 어려울 거 같은 것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비교적 쉬우면서도 소리가 예뻤으면 좋겠고 독학이 가능해야 한다 라는 것이 내 조건이었다. 

2010년초, 그렇게 찾은 것은 '우쿨렐레'라는 귀여운 악기였다. 

기타보다 비교적 쉽고, 어쿠스틱한 사운드, 미니미 예쁜 사이즈 이 세박자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 

우쿨렐레 동호회 카페도 가입하고 영상도 찾아보면서 무슨 우쿨렐레를 살까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우쿨렐레 종류도 너무 많고 그 악기 사는 과정(?)이 너무 귀찮아서 몇달간 고민만 하고 악기를 지르지 않았던 거 같다. 만약 그 때 지금처럼 유튜브 등이 활발해 다양한 우쿨렐레 연주 영상을 접했더라면 뽐뿌질이 가능했을 거 같은데 당시엔 안타깝게도 카페에 올라오는 몇몇 영상에 의존해야 했다. 

여튼, 악기 사는 것에 대한 귀차니즘으로 인해 우클렐레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물론 당시엔 대학생 저학년때이니 악기 배우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바쁜 것도 있었다) 

올초 2019년 상반기. 

거의 투잡, 쓰리잡에 가까운 일을 소화하느라 지난 2개월간 정신없이 나를 혹사시켰다. 자기 전에 갑자기 우울해졌다. 원래 음악을 자주 듣지 않는데 갑자기 가사 없는 연주 음악들이 너무 듣고 싶었다. 나는 원래 오르골 소리를 되게 좋아하는데 투명하고 맑은 소리, 그리고 익숙한 반주 음악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몇몇 오르골 소리 영상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은 '칼림바(Kalimba)'라는 아프리카 악기다. 

최근엔 TV프로그램 '취존생활'에서 배우 이시영이 연주하는 악기로 핫해진 악기이며 인스타그램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혹은 내 관심사가 칼림바이다보니 관련 게시글이 자주 뜨는 걸지도 모른다) 

직사각형 목재에 실로폰처럼 건반이 붙어있다. 마치 엄지손가락으로 치는 피아노같다고 해서 엄지손가락 피아노라고도 불린다. 장난감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고 소리도 목재, 재질에 따라 다 다르다. 우쿨렐레의 타악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프리카 악기지만 중국에서 유명한 왕홍(인플루엔서)의 연주 영상이 전세계 히트를 치면서 칼림바라는 것을 알렸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보면 전세계의 유명한 곡부터 중국 가요 명곡까지 다양한 연주영상을 들을 수 있는데 이따금 잠이 안올때 들으면 꽤 꿀잠잘 수 있는 ASMR 역할까지 한다. 


여튼 칼림바란 악기는 배우기가 쉬운 악기이란 것에 확 끌렸다. 

찾아보니 가격대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예전에 우클렐레 악기 사다가 귀찮아서 다 포기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빨리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 다 사는 평범한 원형보다는, 뭔가 예쁜 걸 사고 싶었다. (항상 마이너리티를 추구하는 편) 그러다가 투명한 곰돌이 모양의 칼림바를 사게 되었는데 너무나 만족스럽다. 

최근 날씨가 너무 습하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을 때 

집 앞 한강변 공원에 가서 투명한 곰돌이 모양 칼림바를 들고 연주를 했다. 악기치라서 그리 잘 치진 못하지만 칼림바는 그런 사람도 뭔가 있어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투명 칼림바는 야외에서 그 매력을 비로소 발휘하는데 바로 햇빛이 투영되는 그 자태를 고스란히 감상하며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날씨도 너무 좋고 행복한 감성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더욱 낭만적으로 그려진 것도 있으리라.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도 안됐는데 이 작은 악기가 나에게 주는 영향력은 꽤 크다. 

사용법부터 시작해 악보 보는 법 등 하나하나 무언가를 배워가는 성취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악기로 재해석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 악기를 연주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독립감 등. 

바쁜 와중에도 자기전에 잠시 여유를 부리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만한 악기가 없다. 


악기 배우기는 인기 있는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여유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바쁜 현대인들은 계속해서 뒤로 미루게 된다. 지금 드는 생각은,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악기 배우는 것을 미루게 된다면 마치 무성영화와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흑백과 자막으로 채워진 그 무성영화와 같은 삶에서, 악기와 음악은 곧 다채로운 컬러의 유성영화로 만들어줄 것이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을 위해, 

지금 당장 배우고 싶은 악기 하나를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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