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속에서 피어나는 배움
고의로 누군가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뜻이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
194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고전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에서 톰 (고양이)이 제리 (생쥐)를 잡으려다, 오히려 제리에게 된통 당한 후, 좌절하며 자조적으로 신음하며 하던 말이다.
이 구역에도 톰이 둘 있다.
첫번째 톰은 초등학교 특수교사인 나, 2번째 톰은 내 학급 전담 보조교사, 수잔이다.
톰 2 마리 역시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등에서 또르륵 흐르는 식은땀,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긴 한숨도 함께.
그렇다면 제리는 누구일까? 바로 내 특수학급 학생들이다.
교사 출근 시간은 아침 8시 45분이지만, 첫번째 톰은 늘 7시 무렵 교실에 도착해서 폭풍전야을 즐긴다. 곧 등교할 제리들이 몰고올 토네이도를 기다리며, 잠깐의 “평온한 학급 날씨”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감사하게도, 어제의 감정폭풍은 하룻밤 사이에 초기화되었다만, 오늘의 감정폭풍은 어디로 불어댈지, 어느 가시덩쿨 산 기슭으로, 90도 가파른 절벽까지 불어댈지 모를 일이다. 우리반 일기예보는 맞은 적이 없기에.
오스카 (자폐 스펙트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청소 강박증을 가진 내 특수학급 학생)가 아침모임 중에 재빠르게 화장실 쪽으로 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액자 뒤에 감춰진 학급 비상벨을 누른다. “양치기 소년”의 만행인줄 알면서도 교감이 의무적으로 달려왔고, 이를 보고 오스카는 깔깔깔 웃는다.
킨더가든 5살 “제리” 한테 비상벨은 다른이의 감정을 건드리는 벨 인듯하다. 영어 표현에 "push someone's buttons"라는 말이 있는데, 고의로 누군가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뜻이다. 오스카는 이렇게 매일 우리 학교 "톰"들의 감정 벨을 눌러댔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
소피아가 (자폐 스펙트럼, PICA 증상-섭식장애의 한 유형으로, 소화할 수 없거나 영양소가 없는 물질을 먹는 장애를 가진 내 특수학급 학생) 어김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본인 책상 위에 좋아하는 크래커와 베이컨이 놓여져있음에도, 몸을 낮추고 두 톰들의 동향을 살피다가 교사 캐비넷으로 돌진한다. 물론, 오늘도 캐비닛은 단단히 잠겨 있다.
5학년 "제리"는 꺄악 괴성을 지르고는 내 백팩을 뒤지기 시작한다. 작은 폴더 안에서 종이를 꺼낸 후, 입 속에 구겨넣는다. 이미 수많은 비밀번호가 적힌 포스트잇들이 소피아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엔 또 무슨 기밀이 소화될 차례일까.
급히 위생 장갑을 끼고, 소피아의 입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 커다란 종이를 삼키면 질식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리는 강렬히 저항하다가 톰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다. 그리고 양손으로 본인 머리를 세게 치더니, 크게 운다.
‘네가 종이의 식감을 좋아하는거 아는데… 나도 네가 좋아하는 걸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마음으로, 눈빛으로 제리에게 말한 후, 진정할 때 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제리는 급기야 커다란 의자를 교실 중앙으로 와당탕 던져버렸다. 그리고, 죄 없는 옆 학생의 머리 또한 때리고 만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
캐빈 (자폐 스펙트럼, ADHD, 행동장애를 가진 내 특수학급 학생)과 수십번 다짐의 약속을 했다.
“네가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싶으면, 친구들 또한 너와 있는 시간이 즐거워야해, 그러려면 너는 규칙을 지켜야 해. 그래야만 네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생겨”
영리하고 재치있는 캐빈이 사회성 결핍의 이유로 일반 학급 학생들과 지내는 시간이 줄어드는게 안타까워서 어떻해든 돕고 싶었다. 다짐의 다짐을 하고, 구두 서약을 받고, 이에 따른 보상 합의도 마치고 일반학급 1학년 야외 공놀이 시간에 함께 참여했다.
공이 캐빈 쪽으로 가지 않자, 나는 눈빛으로 1학년 아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공을 캐빈에게도 패스해줘.’ 공이 손에 닿자 캐빈은 활짝 웃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렇게 함께 주고받으며 노는 게 진짜 놀이야.’
그 순간, 1학년 제리가 들고 있던 공을 운동장 끝 울타리 너머의 가정집으로 훅 던져버렸다. 3미터 울타리 안의 개들이 컹컹 짖어대고 1학년 학생들의 원성과 야유가 쏟아진다. 제리가 그 모습을 보고 낄낄대며 웃는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
늘상 집안 전쟁을 치루는 톰과 제리,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괴팍하고 어리숙한 톰이 가해자일까? 재빠르고 영악한 제리가 피해자일까? 언뜻보면 우악스러운 톰이 가해자인듯하지만, 늘상 당하는건 톰이다. 더 엽기적으로 폭력적인 가해를 하는건 오히려 제리이기도 하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톰과 제리는 처음엔 복수와 경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점차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제리가 톰의 머리를 망치로 가격한 후, 톰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고, 제리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수교육 현장에는 실제로 교사가 학생에 의해 크게 다치는 사례가 많다. "교실 전쟁"을 치루는 이 구역의 톰과 제리. 그러나 그 누구도 이들을 단순히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만 규정할 수 없다.
이 구역의 톰과 제리가 만화 톰과 제리와 닮은 점이 있다면, 우리의 에피소드 또한 거의 무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톰과 제리가 시각적인 코미디와 몸짓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듯, 우리 또한 갈등과 번뇌를 무언으로 표현한다. 다만, 단 한 가지, 소리로 표현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톰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
하루에도 수차례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제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끝엔 언제나, 익숙한 한마디가 남는다.
Don't you believe it (믿을 수 없어)!